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는 호주제가 처의 부에 대한 수동적? 종속적 관계를 정착시키므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여성을 남성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는 호주제를 더 이상 존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3월 2일 국회는 호주제를 규정한 민법을 폐지했다. 물론 바뀐 신분등록으로 전산화 작업이 모두 끝나는 2008년에야 비로소 실감이 나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브라보! 호주제가 폐지되면 대체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림할아버지들이 주장하시듯 콩가루 집안이 되고 근친상간이 일어날까? 이혼이 조장되고 아이들이 버려질까? 헌법재판소가 옳지 않다고 지적한 것을 두 가지로 꼭 집어 말하면 부가입적(夫家入籍)과 부가입적(父家入籍)이다. 아내가 결혼하면서 남편, 혹은 시아버지에게 입적하는 것은 잘못 되었으며,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버지에게만 입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호주제 폐지 이후의 신분등록에는 어떻게 기록이 되나? 현재 대법원, 법무부, 여성부가 합의를 본 것은 개인을 중심으로 하고 부모, 배우자, 자녀를 추가로 기록하는 방식이므로 출생부터 사망까지 한 장의 기록으로 해결된다. 지금의 호적처럼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본인의 결혼, 배우자의 사망이나 이혼, 자녀의 출가 등에 따라 호적에 입적하고 출적하여 새로 만드는 번거로운 과정이 생략되며 다른 가족의 신분행위(결혼, 이혼, 사망 등)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게된다.
부계 모계를 통털어 8촌까지 관계가 전산으로 걸러지게 될 것이므로 부계혈통만 따져왔던 현재의 어설픈 근친상간 금지보다 훨씬 실질적인 근친결혼이 예방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를 기록할 뿐 아버지 호적에 소속시킬 필요도 없고, 결혼을 하면 배우자를 기록할 뿐 남편이나 시아버지의 호적에 끌어다 넣어 남자집안의 일원이라고 우길 이유가 없다. 물론 서류상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서류상의 변화는 실제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현재의 남성중심의 전통문화(혈연, 가문, 종중)는 엄청난 가속도로 양성평등의 새로운 전통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유림할아버지들이 제일 우려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을 터인데, 이것은 그간 여성을 남성을 위한 이등인간으로 못 박아 놓고서야 누릴 수 있었던 권력(?)이었으므로 이제는 새롭게 진화되는 세상을 위해 그만 마음을 비우시기를 부탁드린다. 한편으로는 혼인하면 ‘남의 식구’가 된다고 서운해 했던 딸이 ‘남의 식구’가 될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신세대의 엄마아빠들이라면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에 아들, 며느리를 모두 불러들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우리나라처럼 일사 분란하게 남자집안 중심으로 가족의 대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외국처럼 합의해서 자연스러운 선택을 하면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면서 부부간에 신경전을 벌일 이유가 없다. 상호존중과 상호배려의 미덕이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 잡는다면 왜 호주제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이혼율이 증가하고 아이들이 버려지고 콩가루 집안이 되랴. 새로운 신분등기로 인해 아내가 결혼 후 남편집안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며느리의 노동을 강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치렀던 집안의 대소사는 대폭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될 것이다. 죽은 자보다 살아있는 자의 행복을 위하여 알토란같이 진화된 문화를 먼저 만들어내는 사람이 생명을 가진 동안 더 많은 환희를 맛보게 되지 않을까? 명절연휴 하루 전날, 한의원에는 유난히 많은 며느리들이 침을 맞으러 찾아왔다. 손목이 아픈 며느리, 어깨가 아프다는 며느리, 여행후 설사 복통을 얻었다는 며느리... 그들은 모두 '일 해야 하는데 큰 일 났다'며 공통적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어떤 남편은 아내에게 일 하기 싫어 자해한 것이 아니냐고 웃으며 묻더란다.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일 하기 싫어 자해할거면 손목을 부러뜨리지 이 정도로 하겠어?" 그러나 정작 명절이 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강도 높은 육체노동 때문만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남자 집안'이 일차적 중심이 되는 지독한 남자중심의 차례, 친인척 관계 속에서 잠시라도 '복무'하도록 강제하는 문화가 여성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남자들만 먼저 식사를 마치고, 우루루 다 떠나버린 그 자리에 여자들이 앉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여자들 또한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밥을 먹지 않았던가...라고 생각했던 남성들이라면 올 추석엔 가만히 관찰해보라. 남자들이 떠난 지저분한 밥상에 여자들이 모여 떠들썩하게 웃으며 밥을 먹는 것 같아도, 그들 속에는 이미 그런 문화를 참을 수 없어 속에 분노를 삭히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실감이 안 난다고? 그게 뭐 기분나쁜 일이냐고? 그렇다면 상황을 바꾸어 생각해 보라. 명절에는 여자 집으로 먼저 모여, 여자의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린 뒤, 여자들이 음식을 먼저 먹고 떠난 자리에 남자들끼리 앉아서 먹으라고 한다면? 그러면 비로소 음식 먹는 순서 하나에도 '권력'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그러한 권력의 주종관계가 일방적으로,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드러나는 문화 속에서 일방적으로 열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느냐고?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끝에 얻어낼 것은 당신의 몫이다. ^^ 10월 3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인사동문화거리에서 새 하늘, 새 땅을 여는 제3회 대한민국여성축제가 펼쳐진다. ‘광복60년 여성해방 원년’을 기념하는 이번 축제에서 해방된 남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 필자는 양성평등에 힘쓰는 한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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