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후, 대법원과 정부가 발안한 새 신분등록부 내용을 보면, 여기가 북한 같은 독재체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한국의 거의 모든 법이 유럽법 체계를 따른 만큼 신분등록법도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서 유럽 법체계의 흉내라도 내야 한다. 헌법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선언했으면, 신분등록법도 그 선에서 개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민주주의이면서 신분등록법만 국가의 주민감시체제로 정비한다는 것, 국가보안법만큼이나 국민통제 수단용으로 보인다.
형제자매, 배우자 부모까지 신분사항에 기입해 놓고, 개인이 태어나 지금까지 모든 신분변동 사항을 빠짐없이 기재한 다음, 그것을 발급할 수 있는 자격은 본인과 국가라고 한다. 그 국가의 주체가 누구인가 궁금한다. 정보부인가 동사무소 같은 일반 공무원인가 국가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심각한 문제이다. 공무원에게 돈을 주고 정보를 사는 기업이나 개인이 생길 수 있다. 있을 수 있는 국가의 권력 남용에 대해 인권위의 의견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악법을 보는 것 같다.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세상이다. 개인은 국가기관 종사자들의 밀실 거래에 대해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권력이 막강한 언론이나 정치인이나 국가 기관이나 기업은 아무런 힘이 없는 흩어져 있는 개인정보를 충분히 남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민의 인권 향상을 위해 호주제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국민 정서를 핑계삼아 북한과 상응하는 독재국가로 남겠다는 뜻이다.
신분등록법을 유럽처럼 개정해도 정보부가 개인 정보를 관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개인정보를 남용할 수 있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와 개인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정보가 남용되어 국민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 더 큰 이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국민정서라는 것이 낱낱이 흩어진 국민에게 상처주기 위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국민 정서인가? 툭하면 국민정서, 국민정서하는데, 그건 핑계이다. 우리 법이 대륙법 체계를 따른 것은 국민정서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신분등록법만 국민 정서를 들먹이면서 국가에 의한 개인감독체제, 독재 국가임을 선언해 왔던 대한민국이었다. 호주제 폐지해서 여성의 권리가 얼마큼 향상되었는가? 신분변동사항을 빠짐없이 기록해서 상처받는 측은 남자가 아니다. 가부장제 문화가 고대로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여성과 그들의 자식들만 피해자로 남는다. 이런 차별문화는 악인데 악을 고대로 살리는 것이 국민정서인가 라고 묻고 싶다. 어머니를 차별하는 가부장제 문화는 어머니의 자식인 딸, 아들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한을 남긴다. 남자 가수들이 한에 서려 있는 노래를 부를 때면, 어머니들의 한을 고대로 감지하고 자기의 감성으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가 있다. 남자에게도 한을 남기는 가부장제 문화는 '자유민주주의의 행복 추구권'와 조화될 리가 없다. 헌법에 자유민주주의를 택했으면 신분등록부도 그에 부응해 탄생해야 한다. 포주들이 성노예의 개인정보를 노예문서로서 관리해왔던 것과, 국가가 신분등록법으로 국민을 노예처럼 관리하는 것의 차이점을 설명하길 바란다. 새로운 신분등록법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가장 먼저 우선시되어야 하며, 인권이 국민정서라는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형체도 알 수 없는 국민정서라는 것이 지금까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해 왔던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선언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되는 것인지? 개인정보가 사회에 통용되는 범위는 현재 동거하는 가족 정도로 최소한이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죽이기 위한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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