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이후 ‘호적’을 대신할 새로운 신분제도가 대체입법으로 추진되고 있다.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실은 ‘개인기준 목적별 편제방식’을 주 내용으로 하는 ‘출생·혼인·사망 등의 신고와 증명에 관한 법률안(아래 법안)’ 입법발의 기자회견을 21일 국회 기자실에서 개최했다. 호주제 폐지의 실질적 성과가 호적을 대신할 새로운 신분등록제로 구체화된 것. 노회찬 의원 외에도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 등 12명이 공동발의에 서명을 한 이번 법안은 23일 국회 의안과에 제출되어 해당상임위인 법제사법위로 넘겨진 후 법안심사 소위에서 심사일정을 잡을 예정이다.
호적으로 인한 인권침해 현재진행형
지난 3월 2일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주 골자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호주를 기준으로 가(家)별 편제방식을 취하고 있는 호적법은 폐지되고 대체입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의 호적법에 따르면 ‘호적부’라는 하나의 공부(公俯)에 개인의 이력은 물론 가족의 이력사항이 함께 기록된다. 이러한 호주제는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남성 우선적 호주승계 규정 등이 가족 내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규정해 양성평등에 어긋나며,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를 소위 ‘정상가족’으로 규범화시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차별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그동안 공동행동은 호적피해사례증언대회 개최, 30대 대기업 입사지원 시 불필요한 가족정보 수집에 관한 모니터링 발표 등을 통해 호적제의 인권침해를 알려왔다.
새로운 법안의 주요 내용 이번 기자회견에서 눈에 띄는 점은 법안의 명칭 변화. 지난 8월 22일 입법공청회에서는 ‘목적별 공부에 관한 법’으로 제출되었으나 ‘목적별 공부’라는 용어가 어렵게 느껴진다고 지적되었고 동시에 법률의 내용이 무엇인지 명칭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출생.혼인.사망 등의 신고와 증명에 관한 법률’로 명칭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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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분변동부와 혼인변동부 © 인권운동사랑방 제공 |
이번 법안에는 공동행동이 양성평등, 개인정보 보호, 다양한 형태의 가족차별 금지를 일관되게 주장하며 대안으로 제시한 ‘개인기준 목적별 편제방식’이 구체화 됐다. 모든 증명원은 본인을 기준으로 작성되고 필요한 경우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가족 등 관계자의 인적사항을 최소한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목적별 증명원은 크게 △출생부, 사망부, 혼인부 등 현재의 상태를 보여주는 증명원 △신분변동에 관한 증명원 △가족증명원이 존재한다. 현재의 상태를 보여주는 증명원의 기재사항으로, [출생부]의 경우 ‘본인 성명, 출생지, 출생년월일, 신고지, 신고일자, 신고인, 기타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사항’으로, [혼인부]의 경우 ‘본인 성명, 배우자 성명, 신고일자, 신고인, 기타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사항’으로, [사망부]의 경우 ‘본인 성명, 사망지, 사망일자, 신고지, 신고일자, 신고인, 기타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청회에서 제시되었던 원안에는 [출생부]에 부모성명을 기입하도록 했으나 한부모 자녀나 이혼 등 기타사유로 부모의 성과 다른 경우 신분관계가 드러나는 것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어 기재사항에서 삭제했다. 즉 증명원에 기입하는 정보를 최소화한 것.
입양.파양.친양자.이혼 신분관계의 변동사항에 관한 증명원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재판을 위해 법원이 허가한 경우 △수사 또는 공소유지를 위해 수사기관이 적법절차를 거쳐 요청하는 경우 △다른 법령에 특별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열람 및 교부를 할 수 없게 했다.
가족관계는 ‘가족증명원’으로
인권사회단체 간담회를 거치면서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은 ‘개인기준 목적별 편제방식’의 취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가족관계 확인절차를 ‘가족증명원’을 통해 해소하고 있다. 가족증명원은 증명원을 필요로 하는 민원이 발생한 경우에만 신청자가 가족관계에 관한 사항을 담당 공무원에게 제출하면 증명원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신청서의 내용과 전산정보를 바탕으로 가족증명원의 양식에 해당 정보를 기입하여 교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족증명원의 기재사항은 ‘본인과의 관계, 성명, 생년월일, 동거여부,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는 사항’이다. 가족증명원을 발급하는 경우는 △세제감면, 연금 등 복지수급에 필요한 경우 △소득공제, 가족수당 등의 수급을 위해 필요한 경우 △취학에 관한 증명을 위해 필요한 경우 △상속, 유증 기타 소송을 위해 필요한 경우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김원정 정책연구원은 “이번 입법발의를 통해 호주제 폐지 운동이 호주제를 둘러싼 제도?인식 면에서 개선할 지점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며 “법안이 빨리 심사되도록 압력을 넣고 사회적으로 알려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2008년부터 호주제 대체입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이번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야할 상황임에도 또 다른 대체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법무부와 대법원은 아직까지 법안을 완성하지 못했거나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최은아]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인권운동사랑방(
http://www.sarangbang.or.kr)의 [인권하루소식] 9월 22일자(28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본문의 제목은 일부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