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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철이가 하고자 했던일들 남은 우리가 가꿔야 "
"당시 민주주의를 짓밟은 세력들이 아직 정치와 관료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CBS뉴스레이다   기사입력  2007/01/15 [10:39]
바로 어제가 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고 박종철 열사의 20주기였습니다.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 연결해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 김규완 노컷뉴스 부장 진행 : 박정기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 박정기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 네, 안녕하십니까.

◇ 김규완 : 어제 부산 그리고 서울 등지에서 박종철 군의 추모행사가 열렸는데 어제 어디서 어떤 행사에 참석하셨나요?

◆ 박정기 : 어제 오전에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한 묘지 참배가 있었고, 오후 2시부터는 남영동 구 대공분실 말입니다. 그곳에서 추모행사가 있었습니다.

◇ 김규완 : 그렇군요. 실례지만 아버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 박정기 : 29년생입니다.

◇ 김규완 : 그러시면 이른여덟, 팔순이 조금 못되셨군요. 건강은 어떠세요?

◆ 박정기 : 건강은 겨우겨우 견뎌냅니다.

◇ 김규완 : 고 박종철 군의 희생이 민주화를 일궈냈고.. 박종철 군과 시대를 같이했던 사람들이.. 이른바 386세대라고 불리면서 지금 사회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요즘 386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거든요?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박정기 : 정치적인 질문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몹시 인색한 대답밖에 할 수가 없는데요. 386세대가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우 곤혹스럽습니다.

◇ 김규완 : 박종철 군 희생 당시 사건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이후에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박정기 : 없습니다.

◇ 김규완 : 그들을 이제는 용서할 수 있으세요?

◆ 박정기 : 아. 그들.. 사람은 용서는 할런지 모르지만 그 죄는 용서가 될 수 없죠. 진실이 호도되고 있는데 용서가 어떻게 뒤따릅니까?

◇ 김규완 : 그 당시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세력들이 아직도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박정기 : 그렇죠. 정치세력 그리고 관료세력도 다분히 있다고 봅니다.

◇ 김규완 :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만큼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남긴 역사적 의미가 좀 흐려지는 것 같기도 한데.. 이 부분이 좀 아쉽지 않으세요?

◆ 박정기 : 네, 그러나 그가, 그들이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우리가 되짚어 볼 때는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하고파했던 그 일들을 남은 우리들이 가꿔 내야 된다고,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김규완 : 고 박종철 군에 대해서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해 주길 바라십니까?

◆ 박정기 : 몹시 의로웠다. 당시의 순간적인 상황을 모면할 수 이는 기회도 없지는 않았을텐데.. 끝내 그들에게 굴복은 없다, 그렇게 생각을 할 겁니다.

◇ 김규완 : 6·10항쟁이 가진 역사적 의미로 볼 때, '4·19'나 '5·18'과 같은 국가기념일 지정에 대한 찬성여론도 높습니다. 이미 여야 국회의원 125명이 지난해 12월 6·10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도 채택했는데요. 6·10 항쟁의 국가기념일 지정의 당위성, 필요성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또 여론이나 국회차원에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만큼 지정되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 박정기 : 6·10 항쟁이란 어느 시대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6·10의 항쟁이 국민의 항쟁으로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역사를 흘러내려오면서 독재아성에 찌들린 국민들의 심경이 종철이가 1월 14일날, 그 죽음으로 인해서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준 것이 권력자가 은폐나 조장으로서의 정철돼가는 문제들을 온 민중들이 함성으로서 그 모순을 모아 낸 것입니다.

◇ 김규완 : 오는 3월에 '박종철 기념관' 건립이 완공되죠?

◆ 박정기 : 그것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 김규완 : 박종철 기념관이 추진되고 있는데.. 20년간의 아버님의 고통이 이번 기념관 완공으로 다 위로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큰 힘이 되실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박정기 :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는 현재의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다음 세대나 다음 후대들이 알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것을 불행이건 간에 당시의 상황, 당시의 사료, 당시의 증거물들을 보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김규완 : 그런 의미에서 박종철 기념관이 필요하겠죠. 박종철 군 희생 이후에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비로소 개헌이라는 성과물을 얻어내지 않았습니까? 이후 20년이 지났는데... 요즘에 와서.. 다시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어요. 아버님께서 요즘 개헌논의를 보시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 박정기 : 힘든 답변을 해야겠습니다마는 우리들은 정치판도에서는 멀리 있는 사람들이기때문에.. 그러나 직감적으로 다 생각은 가지죠. 당시의 87년 개헌문제는 집권자가 호헌을 장담했거든요. 그래서 국민들의 함성은 몹시 높아 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호헌을 개헌으로서 뽑아내고 했던 것은 당시의 개헌문제가 20년 후인 지금에도 개헌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해야 된다고 하는 쪽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쪽과 여러 가지 길이 엇갈려 있는데 판단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개헌은 난항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기회를 충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지혜로운 국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규완 : 6·10 항쟁의 현장에 현재 노무현 대통령도 계셨고 그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집권도 한 것 아니겠습니까? 최근에 와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어요. 이런 모습을 보면 조금 안타까우실텐데.. 어떤 심정이 드세요?

◆ 박정기 : 좀 안타깝습니다. 허나 대통령의 집권에 대한 문제들을 논의하기는 매우 힘든 입장입니다마는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6·10 항쟁의 주역입니다. 거리를 뛰고 밤을 새우고 했던 것을 나는 직접 봤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판단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김규완 :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CBS 뉴스레이다 
 
 
"박종철 씨가 누구죠?" 무심한 20년 

  
박종철 열사 20주기를 맞은 14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부근 '박종철 열사 추모기념비'는 찾는 사람 한명 없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주변에는 시들어 말라버린 장미꽃 두송이, 먹다 버린 음료수 깡통, 신문지 조각만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박종철 열사와 20년 가까운 터울을 가진 후배들은 이 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추모비 근처를 지나는 학생들조차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박종철씨가 누군가요"라며 되물었고 또 다른 학생은 "박종철 열사 기념비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찾아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구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박종철열사 20주기 추모식에는 이해인 수녀, 가수 안치환 씨 등 각계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재학 중인 후배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인자격으로 5명만이 참석했을 뿐 학생회 단위의 참가는 없었다.

추모식에서 만난 서울대 경제학부 3학년 최기원 씨(22)는 "추모행사 관련 대자보를 붙이고 학생회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참가를 권유했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최 씨는 "민주화항쟁은 당연히 해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며 "더 이상 20년전 같은 인권유린이 존재하지 않아서인지 박종철 열사의 이름이 학생들의 관심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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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1/15 [10: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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