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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싸움, 그래도 해야 한다
[컬처뉴스의 눈] 청와대 앞 '스크린쿼터 원상회복' 1인 시위 체험기
 
안효원   기사입력  2007/02/05 [11:18]
2월의 첫날 11시 50분 청와대 앞을 찾았다. '스크린쿼터 원상회복'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서이다. 12시경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조사통계팀에서 일하는 윤형각 활동가를 만났다. "머리 짧게 자르셨네요?". "네, 1인 시위하려고 잘랐어요". "…". 185번째 1인 시위는 이렇게 시덥지 않은 농담으로 시작됐다.

1인 시위에 직접적으로 참가하게 된 계기는 지난 1월 3일 방은진 감독 1인 시위 취재 차 청와대 앞을 방문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은진 감독이 플래시를 받으며,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 현장 한쪽에 있던 윤형각 활동가는 "저 혹시 다음에 1인 시위 주자로 나서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윤 활동가는 시위자를 섭외하는 등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진행해 왔다. 그 제안에 나는 흔쾌히 "네, 다음에 꼭 할께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3번째 연락이 왔을 때에야 참여하게 됐다. 
 
▲ 여름이 지나 가을, 겨울까지 청와대 앞 1인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 컬처뉴스

사실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발표되고, 스타 영화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1년 전 이 즈음에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스크린쿼터 있어도 어차피 스크린 독점은 막을 수 없을텐데'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자가 되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운동 현장에 취재를 다니면서 이 문제가 언론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목격하게 되었고, '그 파급력이 지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날씨는 추웠다. 지난 주말 난데 없이 머리를 짧께 자른 탓에 바람은 더욱 차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차가웠던 것은 청와대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피켓을 앞뒤로 매달고 서있는 나는 그들의 시선을 붙잡지 못했다. 사람들은 외투에 고개를 파묻고 서둘러 지나쳤다. 또 청와대 주변에서 경계를 서는 경찰들과 경호업체 직원(?)들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85일의 1인 시위가 그들에게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 탓일까?

이는 택시를 타고 청와대를 향하는 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경찰들은 지나가는 차를 잡고 "어디 가시나요? 무슨일로 오셨나요?"라고 묻는다. "스크린쿼터 1인 시위하러 갑니다"라고 대답하자 더 묻지 않고 길을 내어준다. 그들은 이미 185번이나 같은 답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일하게 피켓을 유심히 읽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어느 중년부부였다. 먼저 그들은 경북궁 근처의 한 장소를 물었다. 그리고 피켓의 문구를 읽고는 "한미FTA가 우리한테도 필요한 거 아닌가요. 우리 정부가 서두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7월 1일로 시한이 만료되는 신속무역협상권(TPA) 때문입니다. 미 의회의 간섭없이 부시 행정부가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인데요, 거기에 맞추려고 서두르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이것이 이날 지나가는 사람들과 내가 한 말의 전부였다.

하늘은 유난히 파랬고, 눈앞의 청와대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 보였다. '내 가슴과 등에 적혀있는 이 문구들이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보일까' 생각해 봤다. 그러나 이내 부질없다는 생각에 쓸쓸함만이 느껴졌다. 너른 들판에서 홀로 소리를 외치는 느낌이랄까.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흘러갔다. 1시간 동안 많은 관광객들이 청와대 앞을 찾았다. 윤형각 활동가와 얘기를 하다가도 관광객들이 지나갈 때는 대화를 멈추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연출했다. 일본인 관광객들은 "무비, 무비"하며 오랫동안 피켓을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때, 행여 저 사람들이 한국의 영화배우가 참 못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하는 실없는 염려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스크린쿼터가 원상 회복되기를 바라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한 명이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다.
한시간 동안의 시위가 끝나고 참가소감을 적어야 했다. 날도 춥고, 손도 얼고 현장에서 쓸 수 없었다. 우선 윤형각 활동가와 함께 경북궁 역으로 향했다. 참가소감기를 펼치는 순간 무슨 말을 써야할지 한참 고민했다. 쓸쓸하기도 했지만 나의 한 시간이 스크린쿼터 원상회복을 위한 긴 여정을 이어갔다는데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싸움에 '지금',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모두 적을 수 없어 결국 평소 생각하던 것을 적었다. '스크린쿼터 원상회복 노력과 동시에 내부다양성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관객들이 움직일 것입니다'. 나의 첫 번째 1인 시위, 영화인대책위의 185번째 청와대 앞 1인 시위는 그렇게 끝이 났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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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05 [11:1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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