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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마당집’ 관람객 첫 번째가 되다
[현장]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를 ‘마당집’ 순우리말로 고쳐 문열어
 
리대로   기사입력  2024/05/04 [15:33]

지난 5월 1일 늦은 1시에 “백기완 마당집”을 열었다. 살림집이었던 옛 통일연구소를 기념관으로 꾸몄기에 크고 넓지는 않았지만 기념관 이름부터 ‘마당집’이라고 우리말로 짓고 1층 전시실 설명문이 한자나 영문이 아닌 토박이말을 살려서 한글로 써 있어서 남다르고 좋았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있던 화장실을 ‘뒷간’, 백기완 선생이 계시던 방을 ‘옛살라비(옛방)’라고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서 방 이름을 써 놓은 것이 백기완 선생의 뜻과 삶을 살리려고 애써 보여서 고맙고 기뻤다. 한 삶을 이 나라 민주, 자주 통일, 민중해방, 겨레말 사랑 실천에  바친 참사람, 참 한겨레인 백기완님 뜻과 꿈과 삶이 담긴 한국 역사 기념관이다. 대학로 학림다방 옆 골목으로 70미터 들어가면 있으니 많은 사람이 가보면 좋겠다.

 

▲ 1충 상설 전시실에는 백 선생이 “이야기꾼, 통일과 예술꾼, 우리말사랑꾼, 노동해방꾼”으로 활동한 찍그림(사진)과 원고, 아끼던 물건과 유품, 사람들 만나고 생활하던 옛방을 살려 꾸몄다.  © 리대로


내가 백기완 선생을 좋아한 것도 우리 겨레말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한 것이었는데 1층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방명록이 있고 그 앞 벽에 백 선생이 어릴 때 황해도 고향에서 들은 토박이말과 새로 만든 우리말을 적은 쪽지 “불쌍꾼(혁명가), 새내기(신입생), 새뜸(뉴스)“들이 걸려있어 흐뭇했다. 관람객이 토박이말을 하나라도 보고 배우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백 선생이 지은 노랫말에 곡을 단 ”님을 위한 행진곡“ 원고 액자가 걸려있고 정면에 백 선생이 그 노래를 부르는 얼굴 모습 그림과 활동한 찍그림들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설명문에 다른 곳처럼 한자나 영문을 섞어 쓰지 않고 한글로 깔끔하게 적혀있어서 백기완 선생을 보는 듯 고맙고 잘 꾸몄다는 생각이 들었다. 

 

▲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방명록을 쓰는 곳 앞 벽에 백기완 선생이 만든 토박이말 쪽지(오를쪽)가 있고 그 옆에 있는 백기완 선생이 노랫말을 쓴 ”님을 위한 행진곡(왼쪽)”글판.  © 대자보


그리고 전시실 가운데 상자에는 백기완 선생이 쓴 원고, 손때가 묻은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왼쪽에 백 선생이 책을 보고 글을 쓰며 손님을 만나던 방에는 ‘옛살라비’라는 방 이름을 붙었는데 평소에 입던 두루마기와 건강을 위해 운동하던 아령, 옥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옷이 있었다. 그 방을 보니 처음 내가 백기완 선생을 뵐 때 생각이 나서 가슴이 뭉클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외치면서 한자와 영어조기교육을 하겠다며 우리말을 못살게 하고, 조선일보가 일본 한자말을 일본처럼 한자로 쓰자고 그 신문 1면에 연재를 하고 있어서 우리 말글이 바람 앞 촛불처럼 위기였다. 그 못된 짓을 막으려는 강연회에 백기완 선생님을 강사로 모시려고 처음 백 선생님은 만난 방이었었다. 

 

▲ 옛살라비’ 문패(오른쪽)가 붙은 백기완 선생이 쓰던 방에는 자주 입던 두루마기(인쪽)가 걸려있고 건강을 위해 운동하던 아령과 유품, 책들이 있었다. 내가 처음 백 선생을 만난 방이다.  © 이대로


1990년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고 언론과 일본식 한자혼용단체와 함께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못하게 하고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일본처럼 한자로 쓰게 하려고 나섰을 때 한글단체 힘만으로는 그 못된 짓을 못하게 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이 그 대책회의를 할 때에 나는 백기완 선생과 김동길 교수를 모시고 그들 잘못을 꾸짖는 강연회를 열자고 제안했더니 백기완 선생이 나서주겠느냐고 걱정하는 분이 있었다. 그래서 국어운동대학생회 후배들로부터 그 분이 대학에서 시국 강연을 할 때에 미국말과 어려운 한자말을 쓰지 말자며 “영어 ‘써클’은 ‘동아리’, 한자말 ‘신입생’은 ‘새내기’, ‘엠티’는 ‘모꼬지’”처럼 우리말로 바꿔서 쓰라고 한다는 것을 들었기에 내가 후배들과 책임지고 모시겠다고 말하고 찾아갔었다.

 

▲ 5월 1일 “백기완 마당집” 개관 1호 관람객으로 다음에 오는 손님을 맞아해 해설사로 봉사활동도 했다. 하늘에서 백기완 선생이 나를 1호 관람객으로 이끌어주신 거 같았다.  © 리대로


그렇게 처음 뵙고 “저는 1967년에 국어운동대학생회들 만들고 26년 째 대학생 후배들을 이끌고 국어독립운을 하는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 리대로입니다. 후배들로부터 선생님께서 우리말을 남달리 사랑하는 분이라고 해서 뵙고 싶었는데 마침 김영삼 정부와 조선일보가 함께  우리 말글을 못살게 굴어서 그 잘못을 막을 경연회 연사로 모시려고 왰습니다.”라고 말하니 “지난날 국어운동학생회 활동을 언론보도에서 보았고 리대로 회장이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에 쓴 글도 보았다. 찾아와서 반갑다.”라며 한글학회 사람들이 나와 엮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터인데 뜻밖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꼭 모시고 싶어 한다고 하니 앞으로 함께 그들과 싸우겠다면 나서겠다고 하셨다.

 

▲ 1층 전시실 들머리 오른쪽에 있는 뒷간(오른쪽) 옆 벽에 백기완 선생이 찾은 토박이말과 새로 만든 우리말 글쪽지(왼쪽)를 방문객이 보고 배우리라고 붙여 놓았다.   © 리대로


그때 백 선생님이 나보고 요즘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서 “공병우 박사를 모시고 한글기계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니 백 선생은 “공병우 박사가 통일운동 후원도 해주셨는데 요즘 뵙지 못했다. 잘 계시냐?”라고 안부를 물기에 “미국에서 귀국해 한글문화원을 꾸리고 우리 젊은이들과 함께 한글운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니 반가워하셨다. 아마 공병우 박사도 이북 출신이라 백 선생이 하는 통일운동을 후원하신 거 같았다. 그리고 백 선생은 “박정의 정부가 남산에 땅굴을 파면서 터널이라기에 내가 ‘맞뚜레’라는 우리말을 쓰라고 했다가 경호실에 끌려가 빨갱이라고 두들겨 맞기도 했다. 나는 쌍 도끼다. 우리말을 못살게 구는 자들은 쌍 도끼로 찍어내야 한다. ‘파이팅’이라고 하지 말고 ‘아리 아리!”라고 하라.“고도 하셨다.

 

▲ ”백기완 마당집“ 앞에 있는 그 집 발자취(왼쪽)와 그 집 대문에 걸린 문패 ’해방세상‘  © 리대로


나는 그날 뒤로 30여 년 가끔 뵙고 우리말 살리는 일을 의논하고 함께 걱정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백 선생을 거리 투사로만 생각하는데 권력이나 재벌에 짓밟혀 고통 받는 사람을 보면 가슴 아파하며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는 참사람이었고 말로만 겨레사랑, 나라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참 애국자임을 알고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래서 2002년 한글날에는 이오덕 선생과 내가 함께 만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아 발표했다. 그때 백 선생은 생견 처음 상을 받아봤다며 기뻐하셨다. 여러 단체에서 주는 상도 싫다고 한 분이 상장도 상품도 주지 않은 우리말 지킴이로 뽑힌 것을 그렇게 좋아한 것은  그만큼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것이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자주독립국이 되고, 자주통일을 하려면 우리말부터 독립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걸 알지 못하고 당신 뜻을 따라주지 않아 외로웠는데 그 뜻을 알아주니 고마워한 것이다. 이번에 문을 연 ”백기완 마당집“이 큰 기념관은 아니지만 사람과 우리겨레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온 몸으로 보여준 참사람, 참한겨레의 삶과 뜻과 꿈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전시장을 천천히 살펴보고 백기완 선생 삶과 뜻과 꿈을 되새겨서 모두 이 나라를 일으키는 일꾼이 되고 그곳이 자주독립국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길 바라고 빈다. 아울러 그 마당집이 백기완 선생을 닮은 남북통일 일꾼, 우리말 이야기꾼, 겨레말 사랑꾼, 자주독립꾼들이 만나고 뭉쳐서 백기완 선생 꿈인 자주평화통일을 이루게 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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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5/04 [15: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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