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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피해자, 김근태는 돌아와야 한다
[정문순 칼럼] 한국사회가 빚진 김근태, 아직 다 못 갚아 안타까움 더해
 
정문순   기사입력  2011/12/13 [22:23]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이 많이 아프다고 한다. 상임고문이라고 하니까 현실 정치에서 물러나 뒷방 노인으로 늙어가는 줄 알았는데 투병 중이었던 것이다. 김근태라고 하면, ‘그 유명한 고문 사건’이라는 타이틀이 자동적으로 붙는 인물이지만 지금 젊은 세대가 그 이름을 얼마나 알까. 모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고문’이니 ‘민주화’니 하는 이름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산다면 다행이겠다.

그 실력이나 자질을 생각할 때 기대에 못 미쳐서 안타까운 사람을 꼽는다면, 김근태가 그에 속한다고 본다. 한나라당 이름을 달고 선거에 나오더라도 미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는지 헤아린 적도 있는데, 김근태가 그랬다. 불의와 죽음의 시대를 한 몸으로 감당한 인물이라면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고 실력을 발휘해야 할 것 같은데, 그는 둘 다 아쉬운 느낌을 준다.

80년대를 거리와 감옥에서 보낸 그는 90년대 중반 민주개혁 세력의 대표자로서 제도권 정치에 입성했고 늘 일정한 지분을 누리기는 했다. 그러나 어떤 결정적인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2년 대통령 경선 후보에 나왔지만 일찌감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는 경쟁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부류에게서 보이는 개성적이고 강렬한 면모가 부족했다. 어딘지 의기소침하고 유약해 보인다는 건 정치인에게 마이너스였다. 참여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을 때는 차기 대선 주자에서 라이벌로 일컬어지며 통일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하던 정동영 의원보다 뒤처지는 모습이었다. 정 의원보다 덜 개혁적이거나 뭔가를 잘못해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계파를 만드는 데 골몰하지도 않았고 적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현실 정치라는 게 비정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참여정부 말기 부동산 정책으로 갈팡질팡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맞붙어 보자.”라며 호기롭게 맞서던 장면은 정치인 김근태가 그답지 않게 내뿜은 마지막 포스로 기억된다. 그리고 총선이 있었고, 상대도 안되는 ‘듣보잡’으로 봤던 ‘음주 방송’ 신지호 의원에게 졌다. 뉴라이트 출신에게도 못 이길 정도로 민주 투사의 상징은 초라해졌다. 그가 잃은 것은 국회의원 뱃지만이 아니었다. 고문으로 망가진 건강은 시간이 지난다고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수년 전부터 뇌혈관 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한 인간을 처절히 능욕한 고문 가해자들은 악마였을까. 김근태는 자신에게 고문을 가했던 자들이 돌아서서 저들끼리 가족 걱정하고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나누더라고 했다. 현기영 소설가도 4.3항쟁을 조명한 소설을 쓴 후 공안기관에 잡혀가 고문을 당할 때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문 기술자들은 악마가 아니고 평범한 가장이었는지 모른다. 고문을 가한 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사람 같지도 않은 ‘빨갱이’ 잡는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자신들은 악한 것이 아니라 악역을 담당할 뿐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런 자들이라면 반성하고 살기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김근태의 관절을 뽑고 전기고문을 가하고 익사 직전으로 몰아간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그 악마의 손으로 십자가와 성경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는 옥중에서 죗값을 치르던 시절 면회 온 김근태로부터 용서를 받기까지 했다. 이근안은 김근태를 ‘칠성판’에 눕히면서 민주화가 되면 자신이 대신 누울 테니 똑같이 복수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약속은 못 지킬망정 그가 목회자로서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거나 교회에서 헛것을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병석을 찾아가 손을 잡고 참회의 기도라도 올리기 바란다.

많은 도전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집권자를 별로 안 예쁜 동물에 비유하며 욕이라도 할 수 있는 정도의 자유가 누구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인지 깨닫는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에게 갚을 빚이 있고 그 자신도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 유공자가 영화를 누리기는커녕 병마에 시달려 딸의 결혼식도 보지 못할 정도라면 너무 공평치 못하다.
 
* 본문은 12.13 <경남도민일보>에도 게재했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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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13 [22: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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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봉산 2011/12/18 [19:42] 수정 | 삭제
  • 오래만에 너무 좋은 글을 보네요. 매번 박근혜나 손학규 등 정치공학적인 글만 보는데 민주화의 기수였던 김근태 의장님의 기사를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이야...
    김근태는 미완입니다. 김근태 자체도 그렇고 대한민국도 그렇고..
    김근태 의장이 다시 일어나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는데 역할을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에 감사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