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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억울함 풀릴 때까지 20년 달고 다녔다"
군의문사위, 20여년 만에 단순 자살사고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사실 밝혀
 
김명완   기사입력  2006/12/13 [07:43]
군 복무 중 '단순 사망'으로 은폐 처리됐던 군내 의문사 사건이 진정인의 제보와 군의문사위의 조사 결과, 선임자의 상습적인 가혹행위와 구타에 의해 발생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군의문사위, 위원장 이해동)는 12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남창동 군의문사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96년 강원도 00교도소 경비교도대 소속 박정훈(당시 21세) 씨와 1980년 강원도 제1군사령부 소속 00사단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정민우(가명, 당시 20세) 씨가 군내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2일 오전, 군의문사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에서 군에서 발생한 의문사건들이 군내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 대자보

군의문사위 이해동 위원장은 "이번에 밝혀진 사건들은 사망 당시 군수사당국의 부실한 수사와 사망자의 군수사기록과 부검감정서 등이 잘 보존되지 않거나 해당 부대의 내부 종사자들에 의해 축소·은폐 사실이 드러난 전형적인 군의문사 사건들"이라고 평가하면서 "군수사기관의 조사 여건과 조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위원장은 "1980년 강원도 제1야전사령부 구타로 사망한 정민우 하사의 경우 선임이었던 을(乙) 하사의 양심선언을 통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군의문사위는 "1996년 10월 22일 강원도 00교도소 경비교도대로 배치된 지 4일 만에 투신자살한 박정훈 이교(이등병에 해당)를 교도소측은 내성적 성격에 얼굴 피부병으로 인한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경향으로 인해 충동적 자살한 것으로 처리했다"면서 "조사 결과, 사건 당시 취침 점호 뒤 내무반은 거의 날마다 선임대원들의 술판이었고, 후임병에게 폭력과 가혹행위를 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한 군의문사위는 "박 이교는 각종 가혹행위와 폭력에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를 참지 못하고 사망 당일 동기병들과 함께 교정아파트 옆 미루나무 제거작업 도중 선임대원의 지시로 물 심부름을 하러 가는 길에 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말했다.

군의문사위는 "교도소측은 구타 등에 대한 의혹을 밝히는데 소홀했던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지휘관들이나 해당 선임대원들은 부인하지만, 박 이교의 동기들에게 사망사건과 관련 구타나 가혹행위에 대한 진술하지 말라는 강요를 받았다는 증언도 다수 확보했다"고 전했다.

▲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2일 오전, 군의문사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 군의문사위 김호철 상임위원이 박정훈 이교의 자살 경위에 대해 도표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 대자보

군의문사위는 "군내 자살의 경우도 가혹행위 등을 견디지 못해 자살에 이른 경우 대법원도 국가배상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4조에 따라 직무수행 중 사망한 자에 해당하여 법무부장관에게 박 이교의 사망을 '공무상 사망'으로 분류 심사할 것을 요청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 이교의 아버지인 박노상 씨는 "지금이라도 동료대원들의 양심선언을 해줘서 고맙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이나마 풀려 다행스럽다"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이어 군의문사위는 "1980년 강원도 제1군사령부 소속 00사단 직할중대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정민우(가명) 하사의 경우 당시 사건을 '중대원 회식에서 막걸리를 마신 뒤 취침 중 음주 취기로 인해 구토로 구토물이 목에 걸린 질식사'로 조사했던 헌병대가 발표했다"고 말하면서 "조사 결과 정 하사는 사건 당일 오후 8시께 회식 뒤 동료들과 내무반 근처 창고에 불려가 선임인 을 하사에게 주먹으로 가슴을 3∼4차례 맞은 뒤 쓰러져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군의문사위는 "부대 책임 관계자들이 정 하사가 구타로 인해 사망사실을 은폐·조작사실을 부인하지만, 당시 함께 부대에서 근무했던 진정인과 동료 등 일관된 진술에 사망원인을 왜곡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말하며 "가해자인 A하사도 이번 조사과정에서 자신의 구타로 인해 사망 가능성을 인정했으며 그 죄책감으로 20여년을 살아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2일 오전, 군의문사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 군의문사위의 발표에 군의문사 유가족협의회 회원이 울음을 삼키고 있다.     © 대자보

군의문사위는 "부대 인사계 간부인 B 상사가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자. 잘 알아서 처리할테니 함구하고 있어라'는 증언을 확보"했다면서 "당시 군수사기관이 정 하사의 사망에 대해 심도있는 조사를 벌이지는 않았으며 정 하사는 이미 순직처리됐지만 국방장관에게 사망원인에 대한 재심의를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의문사위 김호철 상임위원은 "대부분의 군의문사 사건이 군 내부의 심도있는 조사 과정을 거치지 않거나 부대 관계자들의 암묵적 침묵으로 묻혀져 사망자 유족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면서 "위원회가 범죄혐의를 확인해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할 수 있지만, 모두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라 후속 조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상임위원은 "전역한 복무자에 대한 지휘감독권은 국방부장관에게 없기 때문에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지금까지 282건 진정 접수를 받았고, 이 가운데 164건에 대해 사전 조사를 거쳐 본조사를 진행 중이다. 군의문사 진정 접수는 올해 12월 31일로 마감된다"고 말했다.

한편, 군의문사위가 이번에 밝힌 두 사건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가능하며, 가해자나 사건 관련자에 대한 민사소송 제기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뷰]  아들을 가슴에 뭍은 두 어머니 이옥희 씨, 박순희 씨

▲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2일 오전, 군의문사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 이옥희 씨는 아들 손상규 씨의 사진을 항상 목에 걸고 다닌다고 했다.     © 대자보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는 이야기다. 왜 멀쩡한 애들이 자살을 했겠느냐"

 
00사단 육군 손상규 중위 어머니 이옥희 씨의 말이다. 이옥희 씨는 군에서 아들의 사망처리를 믿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Q : 아들이 자살할 당시 상황은 ?
 
이옥희  : 우리아들은 ROTC 장교다. 장교들은 영외 거주도 한다.  영외 거주를 하다보면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서 출근을 못 할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런데 부대에서는 출근을 제시간에 안했다고 탈영보고를 하고 이미 체포조를 편성, 투입했다.  연락을 받고 우리 애를 같이 찾으려고 우리가 부대에 갔을 때 부대 분위기가 이상했었다. 내가 대대장에게 부대 뒷 산 찾아봤느냐 물어보니까 대대장은 부대 주변은 다 찾아봤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9시 부대 뒷산에서 목을 멘채 발견됐다. 다 찾아봤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그 다음날 그것도 부대 근처에서 찾아내는냐. 더 기가막힌 것은 우리가 아들을 보려고 했지만 군인들이 우리를 에워쌓고, 가지도 못하게 총으로 막았다.

부모가 죽은 아들을 보려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대대장은 계속 무전으로 죽어도 막으라고  했다.

▲ 박순희 씨와 이옥희 씨는 아들의 사망에 대해 진상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 대자보

Q : 아들의 자살한 이유와 부대의 사망처리는 어떻게 했는지..
 
이옥희  : 왜 자살했는지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다. 당시 부대는 부대미복귀로 인한 비관자살로 판명했다. 이 일이 2005년 4월 5일에 발생한 일이다. 이 일을 Y 언론사는 '00사단 손 모 중위 비관자살'로 나왔다. 

우리애가 왜 비관자살이냐 Y 언론사도 확실하게 알아보지 않고 보도한 것에 대해 지금도 그 분이 풀리지 않는다. 멀쩡한 애들 가지고 그렇게 매도했는지....

당시 부모가 자기를 찾기 위해 부대에 와 있는데 장교가 뭐가 아쉬워서 미귀 다음날 부대 뒷산에서 목을 메 자살하겠느냐. 지금은 그 부대도 없어지고 당시 대대장은 해외에 파견나갔다. 그래서 진실을 밝히려고 해도 어려움이 많다.


Q : 지금 아들의 사진을 목에 걸고 다니는데 이유는...

우리 애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했다. 지금도 난 우리아들을 보내지 못해 이렇게 목걸이를 해서 다니고 있다. 우리 애를 국립묘지 보내면 내가 우리아들 딱 잊을 것이다. 우리는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여기 부모들 마음은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진실을 파악하고 말해달라는 것이다.
 
Q : 아들의 자살은 당사자 문제가 아닌 부대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지...

박순희 : 우리 애들을 국가에서 불러서 군에 간 거 아니냐 건강한 애들이 학교 잘 다니다가 자살할 데가 없어서 군대가서 자살하느냐...

나라에서 애들을 데리고 갈 때 정신적으로 또 몸도 건강해야 하고 요즘 군은 학벌도 따져서 가는데 군에서 우리 애들의 죽음에 관한 처리 내용은 전혀 이해가 안간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이미 우리애는 사고가 나서 장례를 치루고 있는데 관할 부대에서 우리 애 친구들한테 전화를 해서 귀대 안해 찾고 있다고 연락을 했었다. 이게 말이 되느냐 이것이 앞뒤가 안맞는 군의 현실이다.

군에서 문제가 생기면 성격문제, 여자문제, 가정문제라고 말하는데 국가인권회에서 조사한 것에 의하면 60%가 군 안에서 일어나서 문제로 사고가 발생한다고 했다. 국가인권위는 60%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100%라고 믿는다.


▲ 박순희 씨는 아들 문두오 일병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오른쪽이 문 일병이다. 사진만으로도 건강해 보인다.     © 대자보

Q : 여기에 있는 부모들의 입장이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박순희 : 사고가 생기면 모든 것을 우리 애들에게 뒤집어씌우는지 건강한 애들이 거기가서 왜 죽겠는냐... 기막한다. 난 우리 애하고 둘이 살고 있었다. 이 애가 죽었으니 내가 어떻게 사냐. 내가 이렇게 설치는 이유는 내가 죽더라도 얘 억울함을 풀어주고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라는 것이 없다. 이곳에서 발표한 내용은 우리 아들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부모입장으로 듣고 싶고 해서 여기에 왔다. 우리 아들들의 죽은 이유, 진실만을 밝혀달라.

언론들도 우리 이야기를 흥미거리로 하지말고 유가족이야기를 유가족 입장에서 관심있게 보고, 보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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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2/13 [07:4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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