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노무현 지지, 그 낭만적 사랑과 전도(顚倒)현상
노무현의 등장은 시대정신의 총화, 인물중심주의는 시대정신 볼모로 잡아
 
꿈꾸는 사람   기사입력  2004/11/18 [20:00]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그녀는 항상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 특별한 관계는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그/그녀와의 사이에서만 통용일 될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그/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저 평범한 한 여자이고 남자일 따름이다.
 
가끔 열렬한 노무현 지지자들에게서 나는 낭만적인 사랑의 한 형태를 본다. 사랑의 대상을 아주 숭고한 높이에 세운다. 물론 애초 그들이 사랑했던 것은 그 사람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가 대표한 어떤 시대적 이념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 시대적 이념의 한 상징을 담지했고, 그래서 그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관계는 전도되기 시작한다. 바로 시대적 이념의 매개체였던 한 존재가, 시대적 이념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즉, 시대적 이념에 의해 그가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통해 시대적 이념이 평가되는 희안한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일부 <광노빠>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현상이다. 물론 나는 많은 건전한 개혁 세력들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수가 많건 적건 간에, 인터넷에서 개혁 담론을 이끌어가는 목소리는 이들 <광노빠>들이다.
 
시대 이념 그 자체가 되어버린 존재는, 더이상 비판의 영역이 아니다. 이제 이 사람이 걷는 모든 행동는 시대의 이념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시대 이념과 이 존재 자체 사이에서 생기는 괴리는, 진정성과 고뇌에 찬 결단과 상황적 조건과 혜안이라는 말에 의해 메워지게 된다. 물론 이는 증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견고한 하나의 믿음과 사랑의 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 하나 이 괴리-시대 이념과 그 구현자 사이의 괴리를 메우는 한 방법은 희생자와 적대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현재 그 희생자의 하나가, 열린우리당과 안개모이다. 그리고 현 정부의 무능한 관료 조직과 그 행태가 또 하나의 희생자이다. 이렇게 나아가면 어느 순간 시민사회 전체와 대한민국의 무식하고 열등한 수준 자체가 하나의 희생자가 된다. 아마도 마지막 희생자는 그를 잘 보호하지 못한 그들 자신이 될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희생되고 난 다음의 최종심급, 누구의 말대로 결코 적용이 되지 않을 최종 심급의 그가 남게 된다.
 
한 정치가는 공적인 인간이다. 그렇다면 그 정치가는 공적인 행위를 통해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가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 전쟁을 일으켰다고, 그가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사적으로 그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는 있다. 이건 사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공적인 영역에서는 그의 진정성이나 결단에 찬 고뇌 등은 증명될 수 없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일으킨 전쟁의 행위이다.
 
▲자이툰부대 본진 파병에 항의하는 시민단체가 노무현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대자보
 
현재의 정치담론들에서 자주 보이는 것들 중의 하나가 사적인 담론을 공공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 파병이 반평화적인 행동이라면 반평화적인 행동이라고 말하면 된다. 아니 그것이 한미동맹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면 된다. 아마 그 중간의 어느 영역에 불가피론도 들어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공적인 판단과 가치를 중심으로 판단하면 된다.
 
그런데 그의 고뇌에 찬 결단을 믿기에,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지만 파병을 추진한 그의 정책에 찬성한다는 말도 안되는 합리화가 횡행하고 있다. 천성산 공사의 폐지까지를 고려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이를 사과 한마디 없이 번복한 것조차, 대통령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용서를 한다. 아니 생까기를 한다.
 
그리고 15년전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으로서, 한 파업 지지와 공무원들의 노동3권 부여에 대해 찬성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그의 행동이 모여서 그는 대통령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공무원들이 노동 3권을 인정하라고 하면서, 대통령의 이전 행위와 발언들을 들이대니, 어느 분은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와 지금의 공무원은 다르다, 그 당시의 노조와 지금의 노조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바뀐 것은 오직 주변일 뿐, 노무현 대통령은 전혀 바뀌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문정현 신부와 부안군민 일부가 대로변에 드러누워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고 나섰다.     ©대자보
 
검사와의 대화는 노무현의 참여정치의 표본이고, 부안의 폭력은 시민들의 무식과 이기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또한 탄핵은 민주주의에 대한 쿠테타였기에 분노하면서 거리를 메운 사람들이, 노동자와 장애인의 외침이 경찰의 폭력적 진압 속에서 억눌려가는 것에는 눈을 감는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바로 시대정신으로서의 총화인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시대정신이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그의 반대편의 외침과 그를 둘러싼 외침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포지션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시대정신은 볼모가 되어 끌려다니는 꼴이다.
 
나는 공론의 장이라면 분명한 정치적 입장과 세계관 아래서 말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것은 이분법과는 관련이 없다. <올바른 정책이 아닌데, 이해는 한다.> <그의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그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만해 한용운의 역설 미학도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나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론적 판단은 그의 정책이 올바르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이해하고 불쌍하고 안쓰럽고는 개인적 영역에서 간직할 담론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섞여서 나오니, 역설이 되고. 신앙간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보수나 수구의 논리더라도, 그것이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면, 인정을 한다. 자신의 정당한 이해관계를 밝히고 그의 정치적 가치관에 의해 일관되게 내뱉어진 말들은, 분명히 존재할 가치가 있고, 토론될 사회적 이유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물을 중심으로, 그것도 정치인으로서의 공적인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사적인 개성까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 중심주의는 공론의 담화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끼리 서로 유대와 동질성을 느끼기 위해서 사용하면 된다. 공론의 영역에서는 보다 분명한 정치적 입장에서 내려진 판단을 말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 진정성이니 고뇌니 하는 단어들로 정치적 언어와 사회적 언어들을 오염시키는 것은,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자가 공론의 장에서 내뱉을 단어들은 아니다.
 
나는 한 인물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그 인물의 담설로 세상을 재단하는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자는 가짜라고 본다. 물론 사적인 영역에 이 말이 머물때는 다르다. 그러나 그 말로 공론의 대화 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분명 문제가 있다. 당신의 그 언어는 개인적 사랑의 언어이고 믿음의 언어일 뿐이다.
 
따라서 정책은 보수적임에도 변명은 진보적인 이중성과 정책의 실패를 인간성을 통해서 무마하는 이상한 합리화는 공적인 담론에는 어울이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노무현 지지자들은 말한다. 다양한 입장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있다고. 즉, 학자에서 노점상까지 아주 다양한 노무현 지지자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노무현 지지자들을 일반화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노무현 지지자들은 일반화되고 가끔 단순화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 모든 노무현 지지자들의 다양한 욕구와 희망이 몇몇 광노빠들의 언어에 의해 갇두어지고 강제로 합병되어, 일정한 방향으로 조정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를 따라서 정치적 동원을 위해 조절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깥에서 오해를 한다느니, 과도한 단순화를 행한다느니 하면서 억울해하기보다는, 그 오해(?)를 만들어내는 당신들의 내부의 문제부터 살피는 것이 본질이라고 본다.
 
과연 현재의 지지율이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이간계 때문이라고 보는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하는 현 정부와 여당으로부터의 일정한 노무현 지지자들이 이탈하고 있다고 본다. 바깥의 오해를 무서워하면서, 다양성으로 변명하려고 하지 말길 바란다. 다양성을 조절하고 획일화하는 일부 광노빠와 정치적 논객들의 폭력적 여론몰이부터 비판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진정 당신들이 현 정부가 개혁에 성공하고 성공한 대통령을 바란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시대의 이념을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의 행보에 끼워맞추지 말고, 시대적 이념의 높이에서 당신들의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잘한 것도 잘못된 것도 모두 그의 몫이다. 잘한 것만 그의 몫이고 잘못한 것은 적들과 환경의 몫이라는 그 변명과 회피의 언어부터 바꾸길 진심으로 바란다.
 
물론 이상의 말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일부(?) 광노빠들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의 말들이 개혁 담론들을 뒤덮어 오염시키면서, 많은 개혁지지자들의 요구와 희망을 희석화시키고 있다. 개혁 지지자들의 다양성을 단순화하는 원인은, 사실 바깥에만 있는 것이 있지 않고, 바로 당신들의 내부에 더욱 많이 있을 지도 모른다. 정치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과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은 전혀 관련이 없다.
 
단점을 감싸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서로 간에 단점을 고치면서 더욱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쩜 더 좋은 사랑의 방식이 아닐까?
 
p.s1) 제가 진보누리와 폴리티즌 두 군데 글을 올립니다. 근데 폴리티즌과 대자보 사이에 기사 제휴가 있는 모양입니다. 저의 본의와는 상관없이, 대자보에서 논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 논쟁의 내용을 보고 적은 그저 생각나는대로 적은 감상문입니다.
 
p.s2) 판은 제 글로 벌어졌지만, 논쟁은 참가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봅니다. 좋은 내용들이 오고가는 것 같습니다. 서로가 반성하고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글이 평소보다 길어졌습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필자는 필명 '꿈꾸는 사람'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11/18 [20:0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캥거루 2004/11/20 [12:09] 수정 | 삭제
  • 당연히 정책은 '결과를 놓고 따져'야죠.
    그 과정에 노무현이 무슨 생각을 했건 무슨 고민을 했든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으니.
    (그것이 내 삶에 아무 영향도 없는데...)

    노무현의 파병은 내 삶에 영향을 주었지요.
    날 전범국가의 국민으로 만들어버렸지요.

    노무현의 전공노 탄압은 내 삶에 영향을 주었지요.
    노동3권을 이름만 남은 쪼가리로 만들어 버렸지요.

    노무현의 천성산 개발은 내 삶에 영향을 주었지요.
    내가 사는 환경을 파괴했으니.

    그 와중에 노무현의 고민 이해하자는 노빠의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네요...
    (꿈꾸는 사람이 글에서 길게 썼듯이)
  • 몬발켜 2004/11/19 [18:23] 수정 | 삭제
  • 몬발켜에게는 '견제와 균형' 얘기가 전혀 먹혀들지 않습니다.
    설득력이 있는 얘기가 별로 아니기 때문입니다. ...흥
    콧방귀 한 번 뀌었습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놓고 따지자는 뭐죠? 님의 주장 또한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몬발켜가 멍청해서 똑 부러지게 왜 그런지 설명해 줄 재간은 없습니다만,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 ^
    만약 그것이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생각이라면, 콧방귀 한 번 더 뀌겠습니다.
  • 뭐죠? 2004/11/19 [11:54] 수정 | 삭제
  •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10년 쯤 전에 중소규모의 집회에 자주 나오시던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생업에 바빠서 확인할 길이 없는데....)
    A4 크기에 인쇄(복사?) 한 유인물을 열심히 뿌리던 50대 초중반 정도의 아저씨였는데, 유인물의 내용이 좀 재미있었습니다.
    대강 기억나는 바로는..
    신라 : 김씨, 석씨, 박씨 ...명?
    고려 : 왕씨 ... 명?
    조선 : 이씨... 명?
    이렇게 왕을 해먹었고, 해방 후에는 이씨, 박씨, 전씨(전씨는 왕씨라고 함), 노씨(무슨 무슨 관계가 있다고 하던데), 김씨 이렇게 왕을 해먹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나라의 왕통이 '전쟁 영웅'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굉장히 비분 강개조로 권력을 찬탈당했다고 말하던데..) 제가 그 유인물을 몇 차례 받을 때마다 유심히 읽어봤지만 아쉽게도 전쟁 영웅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만... ^^

    몬발켜님 글을 읽으면서 그 유인물 아저씨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요? 그 아저씨는 이 경제난에 밥은 안굶고 사시는지..
  • 뭐죠? 2004/11/19 [11:26] 수정 | 삭제
  • 혹시 정치의 원리로 많이 거론되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것 아시나요?
    각자 입장이 다르고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상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님들처럼 사랑으로 극복하는 경우 말고요)
    이를테면 자본가와 노동자는 아무리 선량하고 진보적인 자본가이고, 아무리 보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노동자일지라도 최종적인 입장은 서로 적대적(감정적 적대가 아니라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예로, 사회의 유지를 위해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행정부와, 질서의 골격이 되는 법질서를 수호하는 법원의 입장이 종종 다를 수 있습니다. 법에 따라 정해진 형벌을 받고 있는 범법자들을 정치적 이유로 사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조화를 이루기 위한 대표적인 사례이죠. 그런데 이 경우, 당장 다시 사면해주는 일이 있더라도, 일단 사법부에서는 법에 근거해서 잡아 넣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됩니다. 사법부가 법질서 유지의 본분이 아니라 정치적 형평과 고려를 위주로 하면 그걸 가리켜 사법부가 썩었다고 하는 것이죠.

    국가 기관과 국민들의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뜻이 국정에 반영되고 있는가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강요하는 것이 본분이고, 국가 기관은 국민들 사이의 의견을 취합, 절충하고 여러가지 정세를 고려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본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가지를 고려하고 고민 끝에 결정했다.'고 했지요? 그게 당연한 것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아무 고민없이 냅다 결정을 지르면 그게 문제이지요.
    국민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결정 사항에 대해 가부를 따져 반대하거나 찬성함으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면 될 일입니다. 이것은 대통령의 고민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국민들이 다 한량들도 아니고, 자기 고민이 많은데 대통령 고민까지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몬발켜님은 파병 찬성론자라는 것입니다. 그 이면에 어떠한 고뇌와 고민과 결단이 있었든 파병 찬성론자입니다.

    얘기가 잠깐 샛는데, 국민들 중에 - 사상의 자유가 있으니까 - 몬발켜님 처럼 대통령의 고충을 이해하자.. 라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무너뜨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정확한 표현은 권력과 국민은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라는 것이 되겠지요. 즉, 권력의 입장을 고려하자.. 라는 일방통행을 허용하면서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한 셈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별로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권리를 포기하고 정신적 행복을 얻는 것도 무방하니까요. 그런데 그 주장을 정치적 구호로써 들고 나오니까 - 다시말해서 국민들은 국민의 권리를 포기하고 대통령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행복해지자라는 구호를 들고 나오니까, 사람들이 노빠들을 욕하는 겁니다.
  • 몬발켜 2004/11/19 [11:15] 수정 | 삭제
  • 꿈꾸는 사람 님이 파병찬성자들을 비판하건 그건 몬발켜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 ^
    몬발켜가 이 글에서 설명하는 것은 파병찬성론이 아니거든요.
    단지, 왜 노빠들이 파병을 반대하면서도 대통령노짱의 결정을 복종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한 것 뿐이지요.
    사랑이 지나쳐서가 아니라, 그렇게 결정할 뭔가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이겁니다.

    파병에 대해서 받을 비판은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몬발켜는 콧방귀만 뀌고 상대하지 않을 테지만... ^ ^
    반대론자의 비판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 ^

    국민들이 조중동의 이간질에 속아 넘어가는 이유를 몬발켜도 잘 모르겠습니다.
    멍청해서 그런 모양이지요.
    그리고 노무현한테 불리한 것에만 속아넘어가는 것이 아니죠.
    김대중한테 불리한 것도 속아넘어갔고,
    민주화운동가에 불리한 것도 속아넘어갔었으니까.
    더 멀리 따지자면 친일부역기사까지 올라가야 할 판국이라 이만 줄입니다...
  • 뭐죠? 2004/11/19 [11:04] 수정 | 삭제
  • 어쨋든 조중동 얘기 나왔으니까 저번에 못다한 얘기를 하죠.
    국민들은 왜 어떤 때는 조중동에 안속고
    꼭 노무현한테 불리한 것에만 조중동에 속아넘어갈까요?
  • 뭐죠? 2004/11/19 [11:01] 수정 | 삭제
  • 객관적인 증거나 사실 제시 없이 인물에 대한 '확신', '믿음' 만으로 정치적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태도가 노빠들을 비판하는 첫 번째 요인임을 아직도 못알아들으셨네요.

    꿈꾸는 사람님은 '노사모나 친노지지자들'이 파병 결정을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이라크에 파병해서는 안되고, 노사모건 무엇이건 이라크 파병하는 사람들은 모두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해왔습니다.

    노사모와 친노지지자들은 유시민이나 임종석의 극적인 태도 변화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한 때의 파병 반대에서, "노통에겐 무언가 있을 것이다."라는 심증과 "노통의 고뇌를 이해하자"라는 감성에 기대어 파병론으로 선회했지요.

    노빠 논쟁을 하면서 여러번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지만, 님이 노무현을 사랑하건 쪔을 쪄먹건 저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대통령이 - 그것이 이회창이건 김대중이건 노무현이건, 혹은 부시에게 떠밀려서건 석유가 탐나서건 - 전쟁을 결정하고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나에게는 몬발켜 당신이 노무현을 얼마나 사랑하건 대통령 자리를 이해하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침략 전쟁에 - 어떠한 이유로든 - 찬성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 몬발켜 2004/11/19 [10:57] 수정 | 삭제
  • 조중동이 문제가 아니라 조중동에 쉽게 동조되는 수많은 국민이 문제란 말입니다.....
    그들을 무시하면 '개혁독재다'라는 레벨이 붙게 됩니다....

    몬발켜가 사용한 복종이라는 말은 결정에 대한 외부적인 반응입니다.
    승복이라는 말은 결정에 대한 심리적인 반응입니다.

    불복종하겠다는 말은 그 결정을 어기겠다는 얘기가 됩니다.
    악법도 법이라고 우리가 복종하지요? 그 얘깁니다.
  • 호호호 2004/11/19 [10:48] 수정 | 삭제
  • 노사모와 노빠 우리는 분명히 파병반대론에 더 심정적으로 이끌린다.
    "그럼에도 노무현대통령의 결정에 승복하고 복종한다.
    노무현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무언가 중대한 이유(다른 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말이다."

    노빠들에게 그런 사정이 있는 줄 짐작도 못했네. 호호홍
    노무현 개혁은 조중동이 봐주느냐 안봐주느냐로 결정되는지도 짐작도 못했네. 호홍

    굳이 '복종'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있는지도 잘 짐작을 못하겠네. ^^
  • 몬발켜 2004/11/19 [10:19] 수정 | 삭제
  • 1. 노사모 노빠 친노는 노무현을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가 하는 말과 그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들의 마음에 합치될 뿐이다.
    노사모는 광신도가 아니다. 여러분이 노빠라고 부르는 친노 지지자들 역시 광신도가 아니다.
    이 점 분명히 하자.

    2. 꿈꾸는 사람 님은 이라크파병문제를 예로 들어서 '파병에는 반대하지만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합리화'라고 말하고 있다.
    솔직히 광신 광노빠라고 말하고 싶었을 테지....
    그런데 이건 명백하게 어리석은 오해다. ^ ^

    어떤 정치적 결정에는 한 가지 요소만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꿈꾸는 사람 님은 놓치고 있다.
    윤리 도덕 헌법정신에 따르자면 파병은 불가하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그런데 윤리 도덕 헌법정신 이런 면만 있는 것인가?
    가령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북핵문제 등에 대해서 비밀스럽게 무언가를 언급했다면....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 이런 면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파병반대론자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설득력이 높은 주장이다.
    노무현대통령은 그런 주장까지 모두 고려해서 결정을 내렸다.

    노사모와 노빠 우리는 분명히 파병반대론에 더 심정적으로 이끌린다.
    그럼에도 노무현대통령의 결정에 승복하고 복종한다.
    노무현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무언가 중대한 이유(다른 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말이다.

    이쯤에서 오랜만에 민주노동당을 한 번 까기로 하자.
    얘네들은 이상을 주장하고 이상을 추구한다.
    그 이상은 좋다. 그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조차도 좋다.
    그런데 그 이상대로 당장 실현하라는 것은 무리다.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의료를 모두 국가가 부담해서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일'을 없애기로 한다고 해 보자.
    좋은 이상이다. 그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도 좋다.
    그런데 그걸 당장 실행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든다.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는 민주노동당지지자들도 더러 있겠지만,
    못 내겠다고 아우성치는 국민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 틀림없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했다고 가정해 보자.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이런 의료정책을 실행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국회의 다수당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게다가 조중동이 매일 반대하는 기사를 올리고 있다면....
    의료보장이라는 이상은 좋지만,
    예산이나 국민의 뜻 등 다른 면도 고려해야 마땅하다.
    민주노동당조차도 권영길의원조차도 집권하면 다른 면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나 권영길의원이 당초의 약속만큼 실행하지 못했다면???
    꿈꾸는 사람 님이 어떻게 반응하실지 정말 궁금하다... ^ ^

    그만 까고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노무현대통령의 결정을 승복하고 복종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수많은 노무현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하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몬발켜는 확신한다.
    아마 외교비밀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꿈꾸는 사람 님은 노사모나 친노지지자들이 노무현의 파병결정을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노사모나 친노지지자들이 노무현의 파병결정을 받아들이니까,
    '오라, 이건 노무현을 사랑해서 이념에 따른 판단보다 노무현을 더 우위에 놓고 판단하는 건가 보다'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낭만적 사랑과 전도현상'이라는 말을 쓴다.
    착각에 불과하다.
    사랑해서 전도현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여러 면을 고려한 결과라는 이유 때문에 승복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3. 꿈꾸는 사람 님이 '광노빠'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노짱의 의중을 가장 빨리 가장 정확하게 캐치해서 퍼뜨리는 사람들일 때도 있고,
    가장 선명하게 가장 효과적인 선동으로 퍼뜨리는 사람일 때도 있다.
    몬발켜와 유시민은 거의 100% 노무현과 일치한다. ^ ^
    그런데 광노빠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것이 지나쳐서 그런 행동 그런 언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는 별개로 삐리리리 하고 텔레파시가 오면 거기에 동조되기 때문에 저절로 작동되는 것이다. ^ ^
    노사모와 노빠는 노무현에 쉽게 동조된다.
    (민주노동당지지자들은 민주노동당에 쉽게 동조될 테고...)

    우리나라에 한나라당 노짱 민주노동당 세 라디오방송국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노사모와 노빠는 노짱방송국이 방송을 시작하면 그 주파수에 동조되어 입에서 음악이 나온다.
    그런데 한나라당방송국이 방송을 시작하면 음악이 아니라 욕이 나오고,
    민주노동당방송국이 방송을 시작하면 피식 피식하는 코웃음소리가 나온다.
    그게 노사모요 노빠다.

    민주노동당방송국에 쉽게 동조되는 국민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런지...
    한나라당방송국에 쉽게 동조되는 국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조중동방송국은 어떤가? ^ ^

    4. 몬발켜가 꿈꾸는 사람 님의 주장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반론할 것이 있다. 중대한 오해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언급한다.

    노무현정부가 잘한 개혁이 있다면 그 부분은 반대파가 극렬하게 반대하지 않았다는 증명이다. 개혁의 결과로 나타나는 성과는 자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노무현정부가 잘못한 개혁이 있다면 그 부분은 무능해서이거나 반대파가 극렬하게 반대하는 탓에 당초의 의지만큼 밀고 나갈 수가 없었다는 증명이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이간질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절박하게 인식해 주셨으면 좋겠다. 민주노동당이야 세력이며 권력이 별 것 없으니 그런 경험이 없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 하하 2004/11/19 [09:23] 수정 | 삭제
  • 노사모는 팬클럽입니다.
    아니면 종교맹신자들이지요.
    그들은 노무현이 등장하게된 시대정신보단 노무현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노무현의 스탠스에 따라 와리가리를 하는것이 정상입니다.
    이걸 논쟁이랍시고 할필요가 없는것 입니다.
    차라리 저들이 설치도록 놔두는것이 났지요. 요즘 국민들의 노빠혐오도가 높아지는걸 보면 정말 흐뭇할지경이거든요.
    그리고 민노당과 개혁진영은 또다시 노빠들이 선거가 다가와 표앵벌이 표협박을 하면 속지나 마십시요. 하기사 또 속기야 하겠읍니까....
  • gg 2004/11/19 [00:52] 수정 | 삭제
  • 어차피 노빠 논쟁은 개혁.진보진영에서 한번은 거쳐야할 통과의례 같다는 생각입니다.
    감출게 아니라 드러 내놓고 이런 공론의 장에서 한번 치열하게 논쟁해야할 과제중의 하나였지요.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생각과 논리를 진지하게 들어보고 자신들을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비온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생기겠지요.

    언론은 그런 장을 자주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그동안 특정 당파성에 편향되지 않고, 정론을 지향해온 대자보에서 이런 자리가 마련된 건 참으로 적절했다 여깁니다.

    앞으로도 우리사회에 적폐된 문제들이 생각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진지한 공론의 장에서 훌륭한 경쟁을 통해 담론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합니다.

    그동안 노빠논쟁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의 의견 잘 읽었으며, 눈팅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합니다.

    대자보 애독자.
  • 독자 2004/11/19 [00:12] 수정 | 삭제
  • 공감합니다. 옳은 지적하셨습니다. 건필하세요.
  • 굿 2004/11/18 [21:03] 수정 | 삭제
  • 어린 노뼈들이 ...............독해는 할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