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웹진 서프라이즈(
www.seoprise.com)의 대문에 실린 다음 글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왜 민주노총을 미워하시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제목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아햏햏하다. 글의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대통령의 노동 조직에 대한 태도를 <싫어하다, 좋아하다>라고 표현하는, 그 정치적 마인드 자체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글을 적은 사람은, 이러한 제목이, 당신들의 소중한 대통령을 욕 먹이는 짓인지를 모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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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친노웹진으로 알려진 서프라이즈 메인 홈페이지 ©서프라이즈 홈페이지 |
[관련기사] 피투성이, '대통령은 왜 민주노총을 미워하시나?'(서프라이즈, 2004. 11. 17)
하긴 이런 태도는 그쪽 진영에서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싫어하는 것 같긴 하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한나라당, 조중동 모두를 다만 싫어하는 것 같다. 어떻게 정치와 시민 사회의 영역에 대해서, 그것도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적은 글에서, 어떤 시민단체(혹은 노동자 대표 단체)를 싫어한다 좋아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할 수 있는가 말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동의한다, 혹은 동의하지 못한다>가 옳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노총과 전국공무원 노조의 행동과 그들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가 올바른 것이다. <싫어한다, 좋아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 즉 감정적 기초에서 상대를 대한다는 것이, 바로 현재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는 한나라당의 기본 입장이다. 그런데 스스로 이런 전제를 노대통령의 지지자라는 사람, 그것도 제법 그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논객의 입에서 흘러나오다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싫어한다, 좋아한다>는 주관적인 감정의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 출발하는 이상, 그는 논거를 객관적인 수준에서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입장에서 잡아낸다. 즉 그들의 요구가 지닌 합리성에서 비판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이 지닌 몇몇 꼴불견의 형태가 비판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꼴불견도 거의 글을 적은 사람의 주관적 호불호의 격앙 속에서 선택된 것이다.
정확하게 이 필자는 논의의 출발을 그곳에 잡고 있다.
<작업복 입었다고 다같이 한 많은 노동자가 아니다. 나는 가끔 일과시간에 버젓이 술을 마시는 대기업 노동자들을 자주 본다. 또 무슨 노동자의 부인들이 사장 사모님들 같이 편안한가? 근무 마치고 아무 부담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술을 마시러 간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걱정이 전혀 없어 보인다. 자기 회사 마크 달린 옷입고 은근히 잘난척 하면서... -서프 대문에서>
노동자들의 부인이 사장님 사모님처럼 편안하면 안되는 모양이다. 노동자 부인을 사장님 사모님에 비유한다는 발상 자체도 웃기지만, 이젠 노동자가 아니라 그 부인의 노는 형태까지도 못마땅한 모양이다.
아...천만 노동자여~~ 부인을 단속하라...... 항상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얼굴에는 근심을 가득하게 만들어라... 항상 여러분 옆에는 여러분의 행동을 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글의 결론은 천만 노동자여 대동단결하여,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는 것이다.
<대기업노조는 이기적인 파업을 즉각 중단하고 일이나 열심히 하라!
노동자 전체의 삶을 개선하는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맡겨라. - 서프 대문에서...>
쉽게 말해서 묵묵하게 일만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노동자의 삶의 질은 노무현 대통령이 책임을 지신다는 것이다. 정말 황당한 논거에서 출발하여, 황당한 결론을 적은 사람과 그리고 이 글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 유명한 자유와 민주를 위한 개혁의 전사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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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노동가인 '님을 위한 행진곡'이 청와대 만찬장에서 감격스럽게 울려 퍼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임'은 누구를 위한 '임'이었던가? '임'은 여전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 인터넷 이미지 |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 노래는 청와대의 만찬장에서 자주 울려퍼졌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정말로 저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천만 노동자의 삶을 책임지시면서, 거대한 민주노총이라는 노동운동의 악으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를 구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불굴에 찬 의지를 머리 속에 상상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이번에 시행되는 기업도시 특별법도, 공무원 노조의 탄압도, 그리고 파견근로자 확대법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련한 삶을 위해, 노대통령이 노동자를 위해 선물한 친노동자 입법이라고, 그는 주장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세계의 가치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그에 반대하는, 그의 진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그에 저항하는 모든 단체나 개인은 악이 되는 모양이다.
감정에서 감정으로 전이되는 이 이상한 감성적이고 주술적인 내선일체적인 동일화 속에서, 정치 지도자의 호불호는, 지지자에게로 감정적인 선을 타고 흐르는 모양이다. 대통령이 ****을 미워하신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주장하고, 이를 다시 상대를 비판하는 출발점으로 사용하면서, 결론은 당신들도 그를 믿고 모든 것을 의탁하라고 한다.
구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야훼는 질투의 신이다. 다른 신을 섬겨, 그의 미움을 받지마라. 이 글을 보니, 왜 건전한 개혁 세력들이, 광노빠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게 개혁 후퇴의 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그의 지지율을 하락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 아주 분명히 이해가 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합리적 전제에서 출발하지 않으면서, 대화와 타협의 전제 조건으로, 자신의 믿음으로 강요하려는 광노빠의 목소리가 자제되지 않는다면, 아마 현정권 아래에서 민주주의도 개혁은 한갖 사치스러운 장식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p.s) 이 글은 서프라이즈의 대문에 걸린 피투성이님의 <대통령은 왜 민주노총을 미워하시나?>를 보고 적었습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
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필자는 필명 ‘꿈꾸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