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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음악, 네팔음악의 감성
[김형효시인의 네팔기행] 은둔자의 힘으로 우주의 무게를 들어올리는 듯
 
김형효   기사입력  2004/11/10 [10:29]

코이카 단원의 안내를 받고 자리를 잡은 나는 행사 취지와 목적 등 여러 가지로 궁금한 점이 있어 대사관 직원을 만나기로 하고 안내가 진행되는 안내데스크로 나갔다. 나는 코이카 직원의 안내로 대사관 직원을 면담하고 간단한 행사 취지와 주요 관객들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적극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안내에 바빴다. 나는 하는 수없이 대사 부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도 될까를 묻고 그래도 된다는 말에 안내에 열중인 대사부부의 모습과 초대받은 귀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박상훈 주 네팔 주재대사님 부부가 내빈을 맞이하고 있다.     © 김형효

 

아무튼 인간에게 소속감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제공한다. 그것은 살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면서도 또 자주 심리적 갈등요소가 되기도 하고 아무튼 묘한 에너지가 되는 그런 기분을 느꼈다. 이날 행사에는 1,000명 정도가 초대되었는데 행사장 전체 객석수는 1,200석이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대사관 직원이 말했다. 객석에 앉았는데 행사가 시작될 때는 거의 모든 객석에 빈 자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 행사 시작 전 네팔주재 외교사절과 네팔의 주요귀빈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네팔의 전통 음악이 경쾌한 리듬감을 타고 흘러 장내를 차분하게 했다. 그 중에는 이미 내 귀에 익숙해져버린 레쌈 삐리리(Resham firiri)도 포함되어 있었다. 


레쌈 삐리리(Resham firiri), 나는 기억하고 있다. 2년 전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한국에 서울 종로구민회관 대강당에서 네팔인 이주노동자 1,500~2,000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붓다페스티벌에서의 모습이다. 그들이 그 경쾌하고 활기에 넘치는 레쌈 삐리리(Resham firiri)를 열창하며 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그리고 어렵사리 그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나는 그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고 몇몇이서 신당동 떢볶이를 먹으며 그런 감회를 나누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과 같은 의미의 노래일지도 모르겠다. 또 그런 노래를 통해 그들도 새로운 힘을 받는 것이리라. 나는 그 후로  더 많은 네팔인 친구들과 만났고, 그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기회도 생겼다.

 

내 기억에 의하면 아마도 그날이 내가 네팔음식 난과 버터난, 그리고 지아를 접한 최초의 날이었던 듯하다. 쁘러단 수버드라와 밀런의 초대를 받고 숭인동에 있는 네팔레스토랑 히말라야에 갔던 것이다. 그날 행상에서 네팔인 가수 쿤띠 목단에게 내가 쓴 시가 전달되었다. 외국어로 번역된 그것도 내 시가 네팔어로 번역된 최초의 순간이었다. 내가 쓴 시를 즉석에서 쁘러단 수버드라는 네팔어로 번역했고 밀런은 행사 주최측에 알려 뜻하지 않게 시를 전달하는 식을 치르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쿤띠 목단의 노래를 자주 듣게 되었으며 그런 과정은 네팔음악의 감성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듯하다. 그리고 그 후부터 여러 차례 그곳을 찾았고 자리를 옮겨 뿌자에도 자주 찾게 되었으며 지아와 난은 나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곧 행사가 시작되었다. 유창한 영어 솜씨를 자랑하는 네팔인 여성이 “Redy in jentleman”으로 시작하는 인사말로 행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곧이어 주최측인 한국대사관에서 네팔주재 한국대사인 박성훈 대사의 굿이브닝!으로 시작하는 인사말이 이어졌다. 박대사의 인사말은 유창한 영어로 5분 정도 진행되었다. 인사말이 끝나고 장내 아나운서가 곧 진행될 손경순 댄스단의 제1공연 내용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하였다.

 

장내는 어둠 속에 잠겼고 일순간 적막감이 감돌았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고요를 절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Chun-Ang-Jeon:(Court Dance)로 소개된 춤이 시작되었다. 은둔자의 힘으로 우주의 무게를 들어올리는 듯한 사뿐사뿐한 걸음을 옮겨가는 그들을 보면서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동화되는 듯했다. 절명의 마디마디를 느끼게 하는 퍼포먼스의 주인공들이 숨통을 조였다 폈다 하는 듯도 하고 우주를 들어올렸다가 흩뿌리는 듯도 하는 그들의 고운 자태는 모두를 긴장시켰다. 특히 아쟁과 타악의 선율은 그들의 자태에 무게감을 더해주었고 긴장의 끈을 놓치 못하게 했다. 붉은빛, 노란빛, 연분홍빛, 형형색색의 치마, 저고리에 화려함은 우주를 관통하는 화가의 드로잉을 보는 듯 했고, 손끝으로 쳐올려지는 세상은 파산지경이 되었다. 7명의 댄서들이 15분여 동안 보여준 무아지경 속에 모두는 입을 다물고 있었고 춤이 끝났지만 박수를 칠 타임을 놓치고 있었다. 이어서 입춤에 대한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이어 입춤이 시작되었다. 사실 필자는 우리의 문화의 우월감을 홀로 충분히 만끽하며 공연을 보아나갔다.


입춤은 손 끝에서 시작해 손 끝으로 끝나는 듯했다. 봄 맞이 춤이라는 제목에 소고를 이용한 춤이었는데 춤이 시작되자 홀로 무대를 제압한 춤꾼은 손끝으로 관람객의 오금을 조였다 펴듯이 강약을 보여주었다. 특히 사운드를 통해 제공된 창과 어우러지고 있었는데 무대 중앙에서 좌,우를 오가며 누군가를 관능적 유혹의 세계로 흡입해내듯 깊은 어둠 속의 섬광같은 선율을 보여주었다. 무대를 휘어 잡으며 혼절하게 하던 춤꾼은 소고를 집어든 순간부터 무대를 뒤집어 흔들 듯 경쾌한 리듬을 만들며 개구쟁이 동자처럼 경쾌한 리듬으로 춤을 추다가 어느 틈엔가 고요롭게 마무리했다.  잠시 후 설장고 춤이 이어진다는 장내 아나운서 멘트가 이어지고 한국의 농악에 대한 부연 설명도 이루어졌다.

 

슬금슬금 장고를 쳐대던 장단에 사운드로 제공된 꽹과리 소리에 맞춰 부챗살 모양으로 대형을 이루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더니 이제 공격적인 자세로 대형을 이루며 좌,우로 무리를 이루기도 하고 다시 합쳐 한 무리가 되기도 하면서 힘찬 리듬감을 선보여 관객의 호흡을 끊을 기세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관객들은 “멈춤”의 리듬에 당황하며 공연의 중간 마디에 공연이 끝난 줄 착각하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장고를 치는 춤꾼들의 치맛자락이 형형색색으로 꽃처럼 피어오르며 아름다움을 과시하기도 한 공연의 대형이 바뀔 때마다 강줄기가 갈라지고 합수를 이루기를 반복하는 기이한 장면은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쉼없는 박수 갈채를 보내도록 했다.

  

▲행사가 시작되기전 코이카 직원에게 부탁하여 왼쪽에 밀런, 가운데 헤므라저, 필자가 함께 참관 기념 사진을 찍었다.     ©김형효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있을 샤머니즘적 리듬감, 아니 정감 그것도 아니라면 정적 긴장감이 있을 것이다. 하얀 소복을 한 여인의 등장, 흰 정점! 나는 일순간 이곳이 네팔이라면 아마도 저 소복한 여인은 네팔의 산맥들에 눈의 상징쯤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 눈들이 응고된 흰 정점이 바로 저 살풀이 춤을 추기 위해 무대에 등장한 여인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다소 엉뚱한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감상은 가파르게 세계최고봉의 산맥을 오르듯 사뿐사뿐 걸음걸이로 옮겨지기도 하고 손끝에 매달린 영혼의 춤사위로 살아 불타오르기도 한다. 이 절명의 리듬은 에베레스트를 오르다간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넋의 저편에서 살아날 것만 같다. 애간장을 태우는 가슴을 후비고 드는 리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빛마저 집어 삼키는가?

 

금방 끝난 장고춤의 리듬에 경쾌함에서 벗어나 관객들은 무아지경에 살풀이 춤에 젖어든 긴장한 눈빛을 느끼게 하듯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다. 또한 조명에 비춰지는 춤꾼의 뒷그림자를 따라 자신의 혼령의 끝이라도 따라가듯 눈길을 떼지 못한다. 세상의 그 어떤 아티스트가 응고됨 없이 무형 무색으로 살아 춤추는 저 춤꾼의 엑티브하고 아티컬한 몸짓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저 천연색의 그림을 보며 어떤 아티스트의 아름다운 작품을 말할 수 있겠는가? 현재하면서 시시때때 움직이며 우주적 선율을 잡아먹는 아티컬한 광경으로 줄을 잡아 당기듯 발걸음을 떼어놓는 저 무아의 창조물! 나는 끝내 춤꾼의 리듬과 혼령 앞에 무릎을 꿇는다.

 

▲촬영금지령에도 교양없이 한 컷 담았다. 헤므라저는 부채춤의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김형효

이날 행사에 화려함에 대명사로 불려지기에 충분한 부채춤, 익살과 힘이 넘치는 재치가 돋보였다. 한 사람의 춤꾼이 부채를 접은 채 무대 중앙에 나타났다. 부채살을 펴며 꽃처럼 피어났다. 춤꾼의 얼굴은 꽃술이 되었다. 2명, 3명, 9명까지..., 정신없이 꽃이 핀 무대를 보며 관객은 또 다시 입을 다물린다. 화관을 쓴 9명의 춤꾼들의 재치와 익살과 화려함에 넋을 잃고 있는 관객이 애처롭기까지하다. 부채살에 숨어들었다가 얼굴을 드러내는 동작이 반복될 때, 희롱당한 얼굴로 즐거워하는 관객을 보면 황당하기도 하다.

 

춤꾼들의 자태는 그 어떤 아름다운 여인도 시샘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자태다. 줄지어 선 춤꾼들이 리듬처럼 파도를 태우다가 무리를 지어 한 송이 커다란 무궁화 꽃을 피우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격정의 몸부림을 치는 여인의 가는 허리가 느껴지기도 하고, 반복되어 꽃들이 핀다. 큰 꽃, 작은 꽃이 수없이 피었다지고 인생의 희로애락의 절정에 대해 학습하며 능욕(?)당하는 관객은 그것도 모르고 즐거운 미소를 띠고 있는 듯하다. 그때 춤은 끝났다. 헤므라저는 베리나이스!로 능욕(?)당한 것에 대한 답례를 한다. 


태극무에 대해서 소개가 이어진다. 샤먼리듬이 강조된다. 전통혼례복을 차려입은 춤꾼이 가야금 선율에 맞춰 무대를 휘어잡기 위해 아장아장 사뿐사뿐 무대 중앙으로 걸어온다. 절정의 끝에 오는 외로움이 느껴진다. 화려하고 익살스럽고 재롱이 넘치던 춤 뒤에 이어지는 스산함 같은 것이다. 붉고 휘황하던 칼라와 블루칼라의 치마, 저고리와 완만한 리듬에 섞인 선율만이 관객을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격정의 무대 뒤에 오는 휴식으로 보면 괜찮을 법한 그런 기분이다. 관객은 함께 휴식을 취하듯 차분히 가라앉았다. 어쩌면 손명순 춤패의 고도의 기획에 다시 헛갈리고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사운드로 제공되는 북의 리듬이 섞여들며 관객들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술렁거리는 관객들, 그때 2명의 춤꾼이 합세하며 무대는 다시 정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때 네팔에 와서 처음 접한 에어콘 바람을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은 여유를 찾았다.

 

 나는 그때 손경순 춤패의 바깥구경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모른다. 이어지는 춤수무는 처음 본 춤이다. 의상을 입은 춤꾼들의 모습은 익숙했으나, 화려하다는 것, 장엄한 느낌이 있다는 것이 내 느낌의 전부였다. 또한 꽹과리 춤은 벅차고 리듬감있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를 했으나, 그것은 무리였다. 그것은 남성 춤꾼들의 힘을 연상한 나의 계산착오였다.

 

여성 춤패에서 처음보는 낯설음이 있었다. 춤꾼들의 리듬과 몸놀림이 우아한 춤으로 전투대형을 연상할 만큼 잘 조직된 팀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쇳소리가 주는 쾌감은 그 리듬의 맥을 이어주기에 충분했다. 춤꾼들의 신속하며 빠른 몸놀림은 남성 춤꾼들의 파워와 또 다른 느낌을 주었고 치맛자락의 드레싱한 모습은 한복에서 주는 멋과 다름없음을 보여주며 마치 한복페스티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커튼콜을 기대했으나, 격식이 차려진 행사에서 그 기대는 무리였나보다. 곧 바로 퇴장이 시작되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정문을 향해 걸었다.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곧 집으로 돌아왔다. 헤므라저는 차 안에서 다시 부채춤은 대단하였다고 말했다. 데레이 람부럿처! very nice!를 외쳤다.


편집위원,시인,www.sisarang.com,www.nepa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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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1/10 [10: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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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원(우물가) 2004/11/15 [10:44] 수정 | 삭제
  • 어제 만나뵈어서 반가웠습니다. 다음 소식 기다려 집니다.
  • 울보 2004/11/13 [21:27] 수정 | 삭제
  • 신들린 세계군요.
    네팔,,,바로 세계최고봉을 곁에 둔
    네팔에서
    우리의 예술은 신과
    대화하고도 남음이 있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