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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울고 있다. 숲속에 눈물이 가득하다
[김형효시인의 네팔기행] 무나가 번역해준 데뽀코타의 시 <정글>
 
김형효   기사입력  2004/09/23 [21:23]
 6월 16일 몸을 뒤척이다 밀런이 밖에 나갈 채비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일어났다. 어디 가는지 궁금했으나 따로 말이 없어 굳이 묻지 않았다. 편하게 어디든 다녀야 할 텐데 혹여 나 때문에 그렇지 못할까 계속 미안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묻기가 민망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부터 밀린 숙제인 네팔여행기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억이 가물하면 그 동안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둔 사진을 보면서 되새김 하였다. 디지털 카메라의 위력을 다시 실감하였다. 그렇게 두 세 시간 동안 정리하다 답답하여 나의 친구들 동네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해 어스미네 집을 찾았다.

▲어스미네 구멍가게에서 어스미와 그의 어머니, 아버지     © 김형효

 

아바아시가 혼자 길가에서 놀고 있었다. 그는 날 알아보고도 딴전을 부렸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잠을 청했다. 깊은 잠을 자는데 땀에 젖어 깨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다시 네팔 여행기를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제 쁘루의 쌍둥이 동생 겅가조시가 정리해준 시를 무나에게 영어로 번역해줄 것을 청하기 위해 밀런의 큰형님 헤므라저 집을 찾아갔다. 무나는 집에 있었다. 무나에게 번역을 청했다. 번역을 하는 동안 응접실에서 일터에서 돌아오던 헤므라저를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왜, 찾았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식사를 함께 할 것을 청했다. 나는 금방 맛있는 식사를 했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생각에 잠긴 무나! 스냅 사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포즈다. 오늘은 시를 번역해 주었다. 무나는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아리랑 팬이다.     © 김형효

무나는 잠시 번역이 가능할지를 고민하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번역에 들어갔다. 무나의 번역에 의해 네팔을 대표하는 시인 럭스미쁘러싸다 데뽀코타(Laxmi Prasad Devkota)의 시는 내게 다가왔다. 무나는 내가 네팔 시인의 시를 문장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 되었다. 시를 영문으로 번역한 본문은 다음과 같다.


JUNGLE


럭스미쁘러싸다 데뽀코타(Laxmi Prasad Devkota)

D.O.B 1966(B.S) ~ D.O.B 2061(B.S), 서기 1909년~1959년


 

Life was crying in the middle of jungle with full of tears

생명이 울고 있다. 숲 속에 눈물이 가득하다. 

could find no-where in the middle of my heart.

내 마음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지 모른다.

On the broken hopes there were eyes of sorrows

거기 마음에 상처를 간직한 슬픈 눈이 있다.

Don't know where the sadness and sorrows of my heart.

내 마음에 슬픔이 어디 있는 지 알 수 없다.


시의 본문을 해석하고 난 뒤 시인의 생몰연대를 알고 싶은 데 네팔에서 사용되고 있는 력으로 D.O.B 1966(B.S) ~ D.O.B 2061(B.S)를 도저히 우리가 사용하는 A.D력으로 환산이 되지 않아 무나에게 물었다. 그는 한참 후 계산기를 가져와 환산을 하였지만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 그는 답답해하며 지난 번에 에피소드를 소개한 “돌대가리”를 연발했다. 그렇게 계산기를 가지고 헤매고 있는 데 헤므라저가 4층에서 식사를 마치고 3층 응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둘루다이(큰형님)라 부르며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사람좋은 인상으로 곁으로 와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한 번의 착오 후 바로 계산을 해냈다. 그렇게해서 알아낸 시인 럭스미쁘러싸다 데뽀코타(Laxmi Prosad Devkota)의 네팔력은 D.O.B 1966(B.S) ~ D.O.B 2061(B.S), 서기는 1909년~1959년으로 50세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네팔 달력이다. 네팔의 주요 문인들의 얼굴이 달력을 아로새길만큼 주요한 의미를 띤다는 증표는 아닐까? 사진 오른쪽 맨 위의 인물이 럿스미 쁘러싸다 데뽀코타     ©김형효


언어 소통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팔의 한 시인에 생몰연대와 그 시인의 시를 내가 가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읽어볼 기회를 가졌다. 참으로 반갑고 기분좋은 일이었다. 잠시 후 무나는 한 소년을 소개했다. 그가 필리나의 삼촌 비만구릉(16세, 10학년)이다. 그렇게 번역한 시를 받아든 나는 너무나 행복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와 동네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나만 보면 줄을 지어 따른다. 나는 어스미 아버지에게 어린이들은 나에 친구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동의에 뜻을 나타냈다. 러짓따, 레비카, 어스미, 수산트, 새로운 친구 써비나 카르띠(4세) 나는 써비나 카르띠가 어떤 아이인지 알기 위해 러짓따에게 물었다. 그 역시 무나네 집에 세들어 사는 인상 좋은 아저씨의 딸이었다. 마침 나의 궁금증을 해소라도 하려는 듯 그의 아버지가 좋은 인상으로 웃으며 무언가 담겨있는 듯 무게감을 느끼게 하며 수돗가로 가고 있었다. 너마스떼!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웃음을 주고 받았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보면 항상 미래가 희망적으로 보인다. 한국 아이들이나 네팔의 아이들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레비카에게 빠리잣이란 시인의 시 중에 기억하고 있는 시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에 아버지 타쿠르도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는데 그가 알고 있을까 의문이 있었지만, 혹시하는 기대감을 갖고 물었다. 그는 예상대로 알고 있는 시는 없다고 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다 그럼 지금 배우고 있는 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럼 내게 한편 적어주겠느냐고 했더니 조금 몸을 비틀더니 예스!라고 말하며 메모지를 건네달라 했다. 그에게 메모지를 전달했다.


The sun does arise, And make happy the skies, The merry bells ring To welcome the spring, the skylark and thrush, The birds of the bush sing loder around To the bell's cheerful sound While our sports small be seen

On the Echoing Green.


▲똘똘한 아이! 11세의 레비카는 수준급의 영어실력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내게는 dont forget me!라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김형효
레비카가 볼펜을 꾹꾹 눌러 써준 시이다.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때 배웠던 것 같기도 하고 대학국어에서 배웠던 한 부분 같기도 하다. 아무튼 다시 한번 그 기억을 새기며 시를 읽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레비카의 아버지 타쿠르에게 빠리잣의 시집을 빌릴 수 있느냐 물었다. 지난 번에 한 권의 책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한 나는 그에게서 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번 나의 이해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의 시집은 서점에 가면 있다고 그가 말했다. 아직 확인은 안되었지만 아마 빠리잣의 시집이 한 권이라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밀런의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둘루다이와 한국어와 네팔어 공부를 했다.


둘루다이는 자음과 모음 부분을 상세히 읽어가며 내게 옳은 발음인지를 확인했다. 몇 군데 수정할 부분이 있었고 그는 즉시 수정했다. 그리고 그 책을 갖기 원했다. 둘루다이는 아마 다음에 찾아올 때 쯤 한국어의 기초는 배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적극적으로 책을 원하는 53세의 큰형님께서 둘째아들 라케쓰와 함께[The First Two way guide For (Nepali - Korean) (Korean - Nepali)]를 받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내려오려는 데 헤므라저는 큰아들 무케쓰의 침대를 가리키고 잠을 청하라며 Seelpping! Seelpping! 하고 권했다. 나는 정중히 사양하며 자리를 물러났다. 밀런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컴퓨터 강사인 션크르 조시(Shankar Joshi)를 만났다. 그는 개구지거나 장난스런 친구다. 활달해보이긴 하지만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조금은 건방져 보인다. 그의 곁에 일행이 있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는 하리(Hari)라고 했다. 그는 션크르와 달리 점잖은 인상이었다.

 

필리나 구릉의 삼촌인 비만 구릉이 밀런의 집에 와 있었다. 사실 무나에게서 이야기 들었을 때는 필리나의 오빠로 이해했었다. 밀런의 여동생이 컴퓨터 학원을 마친 후, 취직할 회사 “VIEW NEPAL”의 견습을 마치고 돌아왔다. 럭스미가 그를 다시 소개했다. 무나에게서 소개를 받았으나 잘못 이해한 나는 그가 필리나의 삼촌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시 후 여무나(25세)가 들어왔다. 그의 딸 스웨따(7세)와 아들 쓰러스(3세)가 함께왔다. 이미 얼굴은 익숙하나 누군지 상세히 알지 못한 나는 럭스미에게 누군지, 어떤 사이인지 물었다. 여무나는 밀런의 사촌 형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남편 썸 크리스너(27세)는 말레이시아에서 일하고 있고 얼마전 다녀갔다고 한다.  


저녁 7시가 넘어 밀런이 들어왔다. 틈틈이 네팔 여행기를 정리하며 동네 아이들,  주변 이웃들과 시간을 보낸 나는 한국으로 아니면 내 홈페이지에라도 이 여행기의 일부와 사진을 올리고 싶었다. 한국에서 내 소식을 궁금해 할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뜻을 함께한 동지들에게 전하고 싶은 소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런에게 오늘은 인터넷 방에 나의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접속을 시도해보자고 제안했다. 밀런과 나. 비만 구릉은 함께 인터넷방을 찾았다. 시간당 25루피 하는 사용료는 한국돈으로 5~600원 정도다. 사용료는 비싸지 않으나, 너무나 느린 것이 탈이다. 인터넷방에 잠시 머물고 있는데 라즈크마러가 들어왔다. 메일을 확인하고 30분이 경과했다. 홈페이지를 잠시 살필 겨를도 없이 답답하다. 술 생각이 났다.

▲천의 얼굴을 갖고 있으며 끼가 넘치는 아이라서 나는 그의 별명을 코미디언이라고 불렀다.     ©김형효

밀런에게 술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했더니 동생을 시켜 맥주를 두병 사왔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술잔을 따랐다. 모처럼 밀런의 아버지와 밀런이 나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나는 밀런에게 왜, 아버지에게 식사하시라 한번 권하지 않느냐고 나무랐다. 밀런은 잠시 쑥스러운 기색을 나타내며 나는 원래 그래!라고 말하며 웃음을 띠었다. 어머니가 술잔을 가져와 셋에게 서로 한 잔 씩 따라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맥주 한병을 나누어 마시고 가족이 다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였다. 밀런의 아버지는 스스럼없이 나를 대해주었다. 내게 안마를 청했다. 고마운 청이다. 그만큼 편하게 느낀다는 의사표현일테니까? 그렇게 하루 종일 밀런의 집에서 지내던 나는 밀려있던 네팔여행기를 모두 정리해냈다. 편하게 잠을 청했다.

편집위원,시인,www.sisarang.com,www.nepa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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