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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수매제 폐기, 400만 농민 버리겠다는 것인가
DDA 협상 기본골격 합의, '농업개방'·'무역자유화' 강제
 
인권하루소식   기사입력  2004/08/04 [16:11]
세계무역기구(WTO) 147개국으로 구성된 일반이사회가 지난달 31일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의 기본골격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는 어두운 소식이 전해졌다. 도하개발의제 협상의 세부원칙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가 마련된 셈이다.
 
이는 지난해 칸쿤에서 열린 WTO 5차 각료회의가 전세계 민중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무산되면서, 위기에 처해있던 WTO의 향후 협상에 가속도를 붙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관세 높은 개도국 농업, 타격 커
 
도하개발의제 협상에서 가장 논쟁이 됐던 농업협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과 최빈국들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에 결정된 기본골격은 △국내보조금 총액 20% 감축 △관세에 따라 구간을 나눠 관세가 높은 구간일수록 더 많은 비율로 관세를 감축해야 하는 '구간별 방식' 채택 △수출보조금 폐지 △특별 품목에 대해 저율관세 의무수입물량을 면제받을 수 있던 혜택 삭제 등을 회원국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이는 관세 100% 이상 품목이 142개, 300% 이상 품목이 94개에 달하는 우리 농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개도국에 대한 우대 조항이 명문화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개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다.
 
"추곡수매제 폐지는 농업 포기"
 
이 합의문이 나온 지 이틀 만인 3일 한국 정부는 추곡수매제를 내년부터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추곡수매제가 국내보조금으로 해석될 수 있음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이었다. 이에 전국농민회총연맹(아래 전농)은 "전체 농가의 75%가 농사를 짓고 있는데 추곡수매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농업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쌀농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곧 농업 포기"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자유무역협정·WTO 반대 국민행동(아래 국민행동) 류미경 정책기획국장은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정부의 산업체제 개편에서 농업은 항상 배제되어 왔다"며 "정부의 추곡수매제 폐지 결정은 기본적으로 농업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농은 정부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철회하고,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법제화하는 등 식량자급 계획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공업·서비스업 협상도 선진국 입장 관철
 
비농산물시장접근(NAMA), 즉 공산품과 관련한 이번 합의문은 개발도상국들의 반발로 5차 각료회의에서 합의에 실패한 '데르베즈안'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4개의 '싱가포르 이슈' 중 투자, 경쟁정책, 정부조달 투명성은 개도국들의 반발로 유보된 상황이고, 수출입 세관절차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무역원활화'에 대해서만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또 서비스협상에서 의료, 교육, 기간산업, 문화, 물 등의 개방과 사유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공공재에 대한 접근과 권리도 심각하게 침해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 정부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을 통한 농업 부문의 심각한 훼손에 대한 언급없이 '공산품 수출 증가'만을 협상의 성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칠레 FTA의 경우,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농산품에 대해 일정 정도 양보하더라도 공산품에 있어서는 수출의 증가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무역적자가 더 심각해지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드러난 '밀실협상'의 문제는 WTO 협상 절차에 있어서 비민주성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요 농업수출국인 미국, 유럽연합, 브라질, 호주, 인도 등 소위 'G5'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다른 자리를 통해서 협상안을 마련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켰고, 5차 각료회의에서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진 케냐에 대해 유럽연합이 7월 21일 6천만 달러 상당의 원조를 철회함으로써 개도국들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번 도하개발의제 협상 합의 후 WTO 협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민중들의 반발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행동은 "전세계  민중들은 이번 합의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대응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경해 열사 1주년인 9월 10일, 국내에서는 노동자·농민의 대규모 시위가 예고되어 있고, 국제 농민들의 연대체인 비아깜페시나는 이 날을 '국제공동행동의 날'로 선포했다. 자본의 세계화와 더불어 빈곤의 세계화를 강요하는 WTO 협상의 진전과 함께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민중들의 저항에 전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석진]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인권운동사랑방(http://www.sarangbang.or.kr)의 [인권하루소식] 8월 4일자(26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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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8/04 [16: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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