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도정 기계(사진=연합뉴스)
쏟아지는 온갖 예측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돈스러운 날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증후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민감할뿐더러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은 '식량'이다. 잠시 그 심각성이 부상했다가 잠잠해졌지만 식량위기는 인류 앞에 지옥으로 가는 문이 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석유 금융 부동산 제조업 등 경제적 위기는 고통을 감내하면 되지만 먹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2020년을 살아가는 시민들은 넘쳐나는 식량을 입맛에 따라 골라 먹는다. 쌀과 밀가루와 육류, 생선, 과일 등 다양하다.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하루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는 1만4477톤이다. 한 사람이 매일 300그램의 음식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역사상 온 국민이 지금처럼 먹거리의 풍요를 누린 적은 없었다.
대한민국의 식량은 지금처럼 풍족하게 유지될 것인가? 단언컨대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식량 해외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다. 곡물 자급률이 23%에 그친다. 곡물 중에 쌀 비축에 여유가 있을 뿐이다. 그 외에 모든 식량은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연간 밀가루 소비량은 180~190만 톤인데 이 중 99%가 수입이다.
밀가루 수입 중단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밥보다 빵을 좋아하게 된 국민들이 빵을 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파스타와 자장면 같은 면류를 먹을 수 없다. 라면 하나를 사는데 만 원 이상의 돈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곡물 수확(사진=연합뉴스)
쌀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지만 여유 부릴만한 것은 아니다. 정부가 공공비축제도를 통해 보관하고 있는 쌀은 연간 쌀 소비량의 17~18% 수준이다. 국민들이 먹는 2개월분의 쌀로 약 80만 톤이다. 여기에 전국 농협 양곡창고에 보관 중인 민간부문의 쌀을 포함해 2019년 기준 약 140만 톤이 비축돼 있다. 이는 국민들이 6개월 간 소비할 수 있는 양이다.
평상시 기준으로 볼 때 쌀은 여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글로벌 위기가 닥치면 사정이 달라진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계산법이 달라져야 한다. 당장 밀가루 수입이 제한될 경우 대체할 수 있는 식량은 쌀 뿐이다. 쌀 소비량이 급증하면 6개월을 소비할 수 있는 양이 3개월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은 이미 곡물비축에 나서고 있다. 최대 밀 생산국인 러시아는 수출제한에 들어갔다. 인구 1억 명의 세계 최대 밀 수입국 이집트는 전략식량 비축 확대에 나섰다.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에서 밀 가격은 이미 3월 중순 이후 10% 올랐고 프랑스산 밀가루 가격도 11%나 올랐다.
그러나 정부가 밀 수입선을 확대하거나 전략비축에 나선다는 소식은 없다. 오히려 쌀 식량비축에 나선 홍콩과 말레이시아에 전북과 전남이 각각 20톤과 90톤의 쌀을 수출하기로 했다. 주요 쌀 생산국인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수출을 금지하고 비축에 들어갔지만 한국은 쌀 수출을 자랑하고 있다.
국민들은 코로나 위기에도 정부를 믿고 사재기를 하지 않았지만, 정부는 국민들을 위해 선의의 사재기를 고민해야 한다. 양곡창고에 밀가루가 떨어져 빵을 만들지도, 사 먹을 수도 없는 날을 예상해야 한다. 비축된 쌀을 보며 상대적인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가능성이 높든 적든 코로나19로 인해 식량위기가 닥칠 것에 대비해야 한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식량 위기가 닥쳐오면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가 굶주림의 지옥문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가능성이 희박하다 해도 '보이지 않는 적' 코로나19는 이미 인류를 무장해제 시키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