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님, 농업을 살려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에게. 늦었지만,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대선이 치러지던 날이 불과 얼마 전인데,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이 느껴집니다. 새 정부의 국정을 구상할 틈도 없이 곧바로 대통령 업무를 시작하셨으니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후보 시절 공약을 실행에 옮겨야 하고 국정 과제도 산적해 있으니 누군가는 대통령을 ‘극한 직업’이라고도 말하더군요. 임기 초반인데다 산더미 같은 국정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처지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대통령님에게 한시라도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할 과제가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다름 아닌 식생활 정책입니다.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대통령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대통령님은 후보 시절 10대 공약의 하나로 ‘안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국민들의 밥상 환경은 나날이 나빠지고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가정이든 식당이든 식탁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입 식품이 장악한 지 오래이고, 툭하면 먹거리 안전 사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님의 안전과 건강 관련 공약 안에 식품 문제가 들어가 있을 것으로 짐작했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청년, 어린이, 노인, 소상공인 등이 포함된 대통령님의 집중 공약 대상에서 국민의 먹거리를 최 일선에서 생산하고 있는 농어민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즈음에 대통령님은 식품 안전과 농어민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너무 늦게 나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식품 안전 분야를 별개의 독립된 공약으로 제시한 이는 주요 대선 후보들 중 대통령님이 유일했습니다. 대통령님은 식품 안전 공약에서 먹거리 안전의 국가적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식품 안전관리를 시장이 아닌 국가의 공적 관리 아래 두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학교와 공공급식을 전면 확대하고 GMO 식품 표시제를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습니다. 공약대로만 한다면 조만간 우리 아이들의 학교급식에서 GMO를 추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뒤이어 나온 농어민 정책 공약에서도 대통령 님은 공공성을 강조했습니다. “국가의 뒷받침 속에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과 수산업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농어업이 “시장경제의 희생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특별기구 제정, 쌀 농사에서 직불제 비중 높이기, 쌀 목표가격의 물가상승률 반영, 수산물 직불제 확대 등도 농어민들의 숙원을 상당 부분 반영한 공약이었습니다. 이는, 쌀 생산 조정제나 쌀 외의 작물 경작 전환 시에도 보조금 지급 등의 공약 등을 통해 주식인 쌀을 국민 건강의 보루나 식량안보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쌀을 남아도는 잉여 작물쯤으로 취급하는 보수적 대선 후보들의 생각과 분명히 대비가 됩니다. 심지어 한 극보수 후보는 정부가 쌀 경작 농민에게 직불금을 남발하고 있다고 불평하더군요. 그러나 대통령님의 농어업 정책이 전혀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농어업을 국가가 살리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빠진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FTA(자유무역협정)나 시장개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2004년 칠레와의 FTA를 시발점으로 우리 정부는 속속 세계 각국과 FTA를 타결하거나 발효했습니다. FTA가 우리 농업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 2014년 농업농민정책연구소라는 단체가 내놓은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FTA 발효국으로부터의 농산물 수입은 2004년 1억1백만 달러에서 2013년 153억 1천4백만 달러로 9년 동안 100배 이상 높아졌습니다. FTA 발효국과의 무역적자도 2004년 1억1천만 달러에서 2013년 133억 3억 4백만 달러로 역시 100배 넘게 커졌습니다. 시장 점유율에서도 2003년 16.3%이던 수입 과일은 2013년 23%로 높아졌습니다. 특히 칠레산 포도는 2003년 1%에서 2013년 6%로 6배 증가했으며, 수입 포도로 인한 국내 농가의 기대 손실액은 연간 20억 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포도가 수입되지 않았다면 국내 포도 농가가 해마다 20억 원의 수익을 얻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칠레산 포도는 이제 사철 내내 어디서든 볼 수 있고, 과일뿐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돼지고기·유제품도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와 유제품은 광우병 위험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후 1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유명 빵집에서도조차 치즈나 버터를 미국산으로 쓰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농촌의 피폐화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는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로서, 도시에 대비한 농촌 소득은 1990년 97.4에서 2012년 57.5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FTA 체결 이전과 이후의 농민 현실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FTA 발효 이후 농업 부문 직접 피해 영향을 도표로 나타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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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
피해 영향 |
1 |
농산물 수입 증가, 무역 적자의 확대 |
FTA 발효국으로부터의 농산물 수입 합계 ‘04년 1억1백만 달러 → ’13년 153억 1천4백만 달러 FTA 발효국과의 무역적자 ‘04년 1억1천만 달러 →‘13년 133억 3억 4백만 달러 |
2 |
국내 농산물 시장점유율 하락 |
수입과일 비중의 확대 ‘03년 16.3% → ’13년 23% 칠레산 포도 시장점유율 ‘03년 1% → ’13년 6% 미국산 과일 시장점유율 ‘11년 32.2% →’13년 36.4% 수입산 돼지고기 시장 점유율 ‘03년 7.4% → ’13년 17.8% 수입 유제품 시장 점유율 ‘03년 5.5% → ’13년 9.2% |
3 |
관세감축 확대에 따른 피해 가시화 |
한우 가격 ‘09년 610만원(600kg) → ’12년 530만원 송아지 가격 ‘09년 228만원 →‘12년 144만원 포도 생산액 ‘03년 6,360억원 → ’12년 5,056억원 |
4 |
농가기대소득의 손실 |
FTA로 관세감축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농가 기대 소득의 손실 예) 포도: 연간 20억 원의 기대 손실 |
5 |
FTA 체결 후 농가 수익구조의 악화 |
농가교역 조건의 악화 ‘03년 107 → ‘12년 94 ※지수가 100을 넘으면 채산성이 좋아지고, 100 이하면 나빠짐 도시 대비 농가 소득 ‘90년 97.4→ ‘12년 57.5 |
출전: 이호중, 「FTA 발효 이후 국내 농업분야의 피해 영향」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제162호보고서를 편집한 것임. 대통령님의 공약대로 국가가 농업을 보호하겠다면 농업에 치명적인 FTA나 시장개방을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FTA나 시장개방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피해를 사후 지원한 것이 역대 정부의 농업 정책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국고에서 돈은 돈대로 나가면서도 농민들에게 실제로 효과는 없는 이중고의 악순환일 뿐이었습니다. 60대 노인이 젊은이로 취급받아 경로당에도 못 가는 것이 농촌의 오늘날입니다. FTA로 관세 없이 들어오는 외국 농산물과의 경쟁에 그대로 노출되는 한, 우리 농산물은 대통령 님 말대로 “시장경제의 희생의 대상”일 뿐입니다. 세계라는 글로벌 시장의 희생양 말입니다. 대통령님은 농민 공약에서 ‘신농업6차산업화’도 강조하셨지만, 농업과 농민을 일단 살려놓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살고 농민이 있어야 6차산업이든 무엇이든 가능한 일입니다. 소득이 도시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 농촌이 과연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요. 농촌이 사라지고 농민이 농사를 포기하면 국민의 밥상 건강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판을 갈아엎는 과감한 도전 없이는 그 어떤 농업 정책이라도 땜질 처방이나 사후약방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님은 취임 직후, 대선 공약인 공공 분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들 못지않게 대통령님이 손잡아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농민들을 만나는 일도 일정에 꼭 넣으시기 바랍니다. 농민들을 만나서 그들이 정부에 무엇을 바라는지 부디 귀 기울여주십시오. 벼랑 끝 농업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사자인 농민들과 논의해 주십시오. iCOOP활동연합회 소비자기자단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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