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 <무한도전> ‘자리분양’ 특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재석의 자리가 맨 끝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유재석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게 됐다. 유재석은 작은 마이크와 확성기를 준비했다.
정준하가 ‘가이드 아냐 가이드’라고 하는 등 상황이 우스꽝스럽다는 식으로 멤버들은 반응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정형돈의 망언이 터져 나왔다.
‘아니 우리가 무슨 중국인이에요?’
도대체 이 대목에서 중국인이 왜 나오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확성기 들고 말하면 중국인인가? 한 국가의 국민 전체에 딱지를 붙이는, 국제화 시대에 있을 수 없는 망언이다.
정형돈은 얼마 전 <단비>에서도 비슷한 망언을 했었다. 미인이 김현철을 따라간다는 상황극에서 미인을 보고 불쌍하다는 듯이 ‘중국인을 만나는구나’라고 했던 것이다. 거침없는 망언의 행진이다.
정형돈이 왜 자꾸 중국인을 입에 담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다. 유명 예능프로그램에서 자꾸 이렇게 중국인을 걸고넘어지면, 결국 그것은 그들의 분노를 부추기게 되고, 혐한류를 조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일본의 예능프로그램에서 우스꽝스런 상황이 됐을 때 출연자가 ‘아니 우리가 무슨 한국인이냐’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감정이 될까? 기분이 안 나쁘면 바보다. 중국인은 바보가 아니므로, 당연히 불쾌할 것이다.
국가 간에 불쾌감, 혐오감을 조장하는 일을 방송인이 해선 안 된다. 대내적 차별 발언(여성, 소수자, 약자 등)과 함께 대외적 차별 발언(국가, 인종 등)은 절대적 금기인 것이다. 정형돈이 너무 쉽게 위험발언을 하고 있다.
이렇다 할 교육 없이 어렸을 때부터 춤연습만 한 아이돌들이 방송활동하는 것을 보며 움직이는 시한폭탄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언제 말실수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태연이나 한승연도 위험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이돌의 예능 진출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그렇다면 전문 방송인들이 안전판 역할을 해줘야 한다. 해서는 안 될 발언이 안 나오도록 분위기를 잡아줘야 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말이 많아지는 요즘 예능의 세태에서, 그럴수록 더욱 전문MC들의 책임이 막중해진다.
정형돈은 전문MC임에도 불구하고 망언을 주도하는 형국이니 막막하기만 하다. 말을 재밌게 잘 하는 것만이 MC의 자질이 아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한국의 방송프로그램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시대엔 국제 감각이 필수적이다. 정형돈에게 보다 사려 깊을 것을 요청한다.
- 무한도전마저 무개념방송 되나 -
프로그램도 문제다. 설령 출연자가 문제발언을 했다 해도 편집에서 걸러야 한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정형돈의 중국 발언을 자막까지 곁들여가며 방송했다. 이러면 안 된다.
<무한도전>은 단순히 재밌는 오락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 ‘존경받는’ 방송이다. 평소 <무한도전>이 여러 가지 사회적 배려, 인간존중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과거에 시청자들의 반발로 무산된 어린이날 청와대 특집에서도, 사실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당당함을 전해주려 했다는 기획의도가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줬었다.
그런 <무한도전>이 왜 중국 발언으로 옥의 티를 남기는지 모르겠다. 무개념 방송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최근에 <단비>도 김현철의 캐릭터를 희화화하며 ‘광동성 갑부’라는 표현을 내보낸 바 있다. 이 또한 망언이었다. <단비>는 위에 언급한 정형돈이 중국인 운운하는 상황에서 이어진 김용만의 ‘중국 갑부를 만나는구나 .... 아유 불쌍해라’라는 망언도 그대로 방송한 바 있다.
한국방송에선 중국이 동네북인가? 우리끼리만 보는 한국방송이 아니다. 설령 우리끼리 본다 해도 나와선 안 될 내용이, 동아시아 모두가 함께 보는 시대에 펑펑 터지니 섬뜩섬뜩하다. 동아시아인들이 한국을 향해 칼을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남의 나라에서 한국에 대해 조금만 이상한 말이 나와도 온 네티즌이 떨쳐 일어나 분노하는, 딱 그 마음을 남의 입장에도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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