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일방통행에 급제동, 견제·경쟁 본격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으로 지난 10여일 동안 해외공관 국정감사를 마치고 귀국한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복귀하자마자 손학규 대표의 일방통행식 당 운영에 급제동을 걸고 나섰다.
출국 전 한미FTA 전면 재협상 이슈로 손 대표를 압박했던 정 최고위원이 자신과 박주선 최고위원이 해외 국감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손 대표가 한미FTA 특위를 찬성파 일색으로 구성하고, 주요 당직마저 손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로 기습적으로 임명하는 등 집단지도체제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에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 정동영 최고위원의 '작심 발언'-2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 민주당 | |
정 최고위원은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중국이 최근 5기 지도부를 출범했는데 9명의 집단지도부가 공통의 목표와 정신을 갖고 13억 중국을 세계 양대 강국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면서 "민주당이 정권교체, 재집권의 문을 열려면 집단지도부 9명의 공통의 목표와 정신이 뭔지 하나의 팀웍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지도부 워크숍'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이날도 정 최고의원은 예의 한미FTA 전면 재협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손 대표를 강하게 압박했다.
정 최고위원은 "FTA특위를 만들었는데 신속히 결론내야 한다"며 "사실상 정부는 지금 통상교섭본부장과 미국측 대표가 비공식 접촉을 갖고 또 실질적으로 물밑에서 재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국면인데, 제1야당이, 책임 있는 야당이 (한미FTA와 관련) 입장 하나도 못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미FTA 재협상에 애매모호한 입장인 손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하는 대로) 놔두면 G20 이전에 사실상 미국의 요구를 반영한 FTA 협상의 개악이 이뤄질 텐데, 이를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전면 재협상 입장을 당론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동영, '임종인 복당' 공식 요청‥"한미FTA 특위 참여시켜야" 그러면서 이날 정동영 최고의원은 다소 뜻밖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바로 임종인 전 의원의 복당을 당에 공식 요청한 것이다. 이유는 당내 'FTA 대책 특위'의 위원으로 최재천 전 의원과 함께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정 최고위원은 "원외지만 당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하는 최재천 전 의원이 (FTA 특위에) 포함됐으면 좋겠다"면서 "임종인 전 의원이 FTA와 관련해서 그동안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는데, 현재 당적이 없다. 본인이 원한다면 임종인 의원의 복당 처리를 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다"고 말했다.
임종인 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개혁적 소신파로 노무현 정부 시절 여당 의원임에도 한미FTA 추진을 강력 반대하며 천정배 최고위원, 김근태 상임고문 등과 함께 단식까지 한 바 있다. 최재천 전 의원도 열린우리당 시절 한미FTA와 관련 전문가적 식견을 자랑하며 반대에 앞장선 바 있다. 최근엔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FTA 추진과 협상내용을 비판한 <한미 FTA 청문회>란 책을 내기도 했다. 임종인, 최재천 두 의원은 한미FTA에 관한 한 상당한 실력과 내공이 쌓인 전문가급 인사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임종인 이력, 김영춘과 극명한 대비 '뜨거운 감자' 문제는 임종인 전 의원이다. 최재천 전 의원은 현재 민주당 성동갑 지역위원장이기 때문에 당내 FTA 특위위원으로 참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임종인 전 의원은 현재 당적이 없는 무소속 상태다.
이 때문에 정 최고위원의 임종인 복당 요청은 사실상 '영입해서 특위위원으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김영춘 민주당 지명직 최고위원(왼쪽)과 임종인 전 의원(무소속) ©민주당·대자보 | |
임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 시절 '열린노동당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진보정당과 진보적 시민단체들로부터 진보개혁적 소신과 철학, 일관된 행보로 신뢰가 두터운 정치인이다.
실제로 임 전 의원은 작년 안산 재보궐 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진보 야3당의 단일후보로 추대됐고,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강기갑, 권영길 의원과 진보신당의 조승수 대표,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 등 진보진영의 스타급 정치인들이 총 출동해 임 전 의원을 위해 헌신적으로 선거운동을 해주기도 했다.
임 전 의원의 이런 경력 때문에 실제 민주당 영입이 성사된다면, 당내에 미묘한 파장이 예상된다. 손학규 대표가 최근 영입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까지 임명한 김영춘 전 의원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손 대표가 영입한 김영춘 전 의원은 한나라당 출신인데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캠프에서 기획을 담당했다. 그 해 대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결한 이회창 후보를 지원했다. 또 2007년 대선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캠프에 가담했다. 그리고 또다시 창조한국당을 탈당하고 이번에 손학규 신임 대표의 영입으로 민주당에 입당, 지명직 최고위원까지 오르게 됐다.
이 때문에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 45%를 득표했던 김정길 전 의원은 "손 대표가 취임 후 단행한 첫번째 인사가 영남 지역에서 싸워 온 당원 동지들의 명예를 짓밟고 모욕하는 인사"라며 "영남의 대표성을 일방적으로 지명하는 것도 모자라 '제2의 노무현' 운운하며 영남과 노무현 정신을 능멸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는 '당 정체성' 논란으로 이어졌다. 김 전 의원은 손 대표에게 "점령군처럼 해서는 안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임종인 영입 추진, '김영춘 대항마'? 반면, 임종인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열린우리당을 가장 먼저 탈당한 '탈당 1호'로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임 전 의원은 무소속으로 있으면서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진보개혁적 발언과 소신 행보를 이어 왔다. 개혁적 변호사 단체인 민변 부회장으로 출발해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거쳐 진보정당들과 교감을 이루며 진보개혁 행보를 이어 온 임종인 전 의원과 김영춘 전 의원의 이력은 이처럼 뚜렷하게 대비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 최고의원의 의도와 상관없이 임종인 복당 요청은 다분히 손 대표의 김영춘 지명직 최고위원 영입에 대한 '대항마' 성격이 될 공산이 크다.
정 최고의원으로서는 진보진영으로부터 신망이 두터인 정치인의 영입을 주도하면서 자신이 최근 주창하고 있는 담대한 진보와 연합정치의 진정성까지 과시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카드인 셈이다.
더군다나 지난 10.3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은 중도개혁주의을 삭제하고 보편적 복지 등을 당헌에 못 박는 등 진보적 노선을 천명한데다, 2012년 정권 탈환을 위해선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연대·연합이 지상과제로 떠오른 상황이기 때문에 민주당 입장에선 진보진영과 시민사회로부터 신뢰가 높고 소통이 가능한 정치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최재천-임종인 두 사람은 모두 천정배 최고위원과도 정치적 노선을 함께해 왔으며, 깊은 친분을 맺고 있다. 이 때문에 정동영-천정배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중도 성향의 손학규 대표에 맞서는 '진보블록'이 구축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임종인 '진로 고민중', 진보양당 대표 만날듯 이에 따라 한나라당 출신과 문국현 지지 경력 등으로 당내 반발에 막혀 아직까지 김영춘 최고위원의 복당 절차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손학규 대표가 임종인 전 의원의 영입에 어떤 입장을 보일지 주목된다. 손학규-정동영 양강의 대권후보 고지 선점을 위한 인재 영입 작업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임종인 전 의원은 이날 정 최고위원의 복당 요청 사실에 대해 <대자보>와 전화통화에서 "이번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이 중도개혁주의를 삭제하고 보편적 복지 등 진보적 노선을 천명한데다, 새 지도부의 인사들도 대부분 선명한 진보를 강조하다 보니 저 같이 진보개혁 행보를 해온 정치인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진 것 같다"며 "선의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전 의원은 "지금 저의 최대 관심사는 2012년 야권의 정권교체를 위해 야5당과 시민사회가 한나라당과 뚜렷이 차별화되고 진정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국가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완벽한 야권 연대·연합을 이룰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저의 행보와 진로에 대해 최근 민주당은 물론 진보정당 인사들로부터 조언을 경청하고 있고 또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소 신중한 입장 표명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당 입당도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임 전 의원은 조만간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등 진보양당의 새 지도부와도 만나 자신의 진로와 관련,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정동영, 복지·당원참여민주주의 '실천' 요구 한편,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민주당의 진보화와 당원참여민주주의 확립를 강하게 주문했다.
정 최고위원은 "새 지도부가 출발한 지 보름이 지났는데, 당원과 대의원에 의해 만들어진 당헌과 강령에 대한 후속작업 진척이 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새로운 지도부는 새로운 당헌과 강령으로 당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해 손 대표 측의 실천을 요구했다.
이어 "새로운 당헌 제1조는 당원의 주권을 선언하고 있다. 모든 권력이 당원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 것으로, 공천제도를 포함한 각종 규정과 규칙에 반영하는 제도혁신기구를 즉각 발족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후속 당직 인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당헌 2조는 보편적 복지국가 노선을 천명했는데, 앞으로 민주정책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복지국가 노선을 우리당의 풍부한 정책내용으로 만들고 원내 활동에도 반영하려면 민주정책연구원장부터 복지국가 노선에 부합하는 인물로 임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정책 산실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원장을 보편적 복지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있는 진보적인 인사로 임명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실상 비주류 몫으로 해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향후 손 대표의 당직 인선에 적잖은 진통을 예고했다.
해외 국감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호랑이 없는 굴에서 나홀로 대권행보를 즐겨온 손학규 대표와 작심하고 돌아온 정동영 최고위원의 대권을 향한 경쟁과 줄다리기가 본격화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