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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참여정부의 실패’ 아직도 모르나?
[공희준의 직격탄] 반성과 성찰없는 야당은 국민들에게 외면받는다
 
공희준   기사입력  2014/09/15 [16:38]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에서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협력해 국가를 배반한 부역자들을 처단하려는 대대적인 숙청의 물결이 일었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와 결탁한 덕분에 호의호식했던 친일파들을 척결하는 데 실패한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프랑스의 성공적인 과거 청산이 매우 부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독일에 부역한 자들만큼의 혹독한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한때 세계 최강의 육군국가로 칭송받던 프랑스를 독일군의 본격적 공세가 시작된 지 겨우 6주 만에 패전으로 이끈 프랑스군 수뇌부 역시도 인민의 심판과 지탄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를 망국으로 몰아간 일등공신이라고 일커어야만 마땅할 민씨 척족의 수장인 명성황후가 안중근 의사나 김구 선생에 뒤지지 않는 대중적 찬사의 대상이 된 한국의 엽기적인 현실을 생각해볼 때 프랑스의 정치사회적 분위기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셈이다.


전후에 의회 청문회에 끌려나가 패전의 책임을 신랄하게 추궁당하는 수모와 굴욕을 겪은 모리스 가믈랭(1872~1958) 원수와 같은 프랑스군 총참모부의 지휘관들의 대부분은 1차 세계대전의 영웅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과거에 성공을 가져온 낡은 전략과 교리에 집착하다가 독일군이 개발한 신개념의 전격전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었다. 한마디로 어제의 공이 오늘의 과를 덮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가 범국가적 차원에서 엄청난 인력과 자재를 투입해 건설했으나, 정작 전쟁이 터지자 아무런 구실도 못하고 전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돼버린 마지노선은 프랑스 군부의 무능을 드러내는 거대한 상징물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프랑스의 패전은 당대의 세계인들을 그야말로 멘붕시킨 엄청난 대사건이었다. 자신의 군대가 오랫동안 철벽으로 여겨져온 프랑스군의 방어선을 손쉽게 돌파했다는 소식을 듣고 히틀러조차도 처음에는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고 한다. 그러니 당사자인 프랑스인들에게는 자국의 무기력한 참패가 하늘이 무너진 것과 진배없는 크나큰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으리라. 마음만 먹으면 베를린은 기본이고, 스탈린이 지배해온 소비에트 러시아의 심장부인 모스크바까지도 단숨에 너끈히 밀고 들어갈 수 있다고 프랑스군의 고위층은 수시로 떠벌려왔던 터였다.


“The Fall of France”, 우리말로는 ‘프랑스 함락’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문구를 구글 홈페이지의 검색창에 입력하고 컴퓨터의 실행단추를 누르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관련자료와 연관문서들이 나타난다. 심지어 그 주제만을 다룬 단행본들도 수두룩하게 존재함을 인지할 수가 있다.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승리보다는 패배에서 더 많은 교훈과 가르침을 얻어낸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공통의 보편적 지혜여서일 게다. 단지, 1940년 봄에 있었던 프랑스의 참패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미드웨이 해전의 대패를 조명하는 연구와 분석들이, 미국에서는 월남전에서 망신을 당한 까닭을 규명 하려는 수고와 노력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진행돼왔다.


한국은 지구촌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와 정보화 전부를 최단기간에 이룩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자화자찬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음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국권을 빼앗기는 경술국치를 당했고, 개전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당하는 치욕을 겪었고, 경제주권을 상실하기에 이른 IMF 사태의 창피를 경험했다. 휴전선 너머의 북한도 만만치 않다.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국군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정권을 보존하고, 자식들에게 권력을 대물림해줘야만 안심이 되고, 수백만 명의 인민이 굶어죽는 사태 등으로 말미암아 국가로서의 품격과 위신은 이미 오래전에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다.


북한에서는 그 어떤 실패에 대한 반성은 물론, 기억마저도 체계적으로 철두철미하게 금압되어왔다. 은폐된 실패는 언제나 더 심각하고 치명적인 실패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남한이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 것도 결국은 북한보다는 국가와 사회 지도층의 실패에 대한 회고와 성찰이 더욱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풍토인 것에 적잖이 힘입었으리라.


진도 앞바다를 항해하던 대형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수백 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 날,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관한 의문과 궁금증이 점점 더 크게 증폭되고 있다. 해경과 해군이 왜 구조에 실패했는지를 면밀하고 샅샅이 파악하려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그날 어떤 결정과 지시를 내렸는지를 가감 없이 확인하는 일이 결코 건너뛰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절차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와 견줬을 때 단연코 훨씬 유리한 여건과 환경에서 출범한 참여정부가 어떤 사정과 연유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넘겨줬는지를 정확하고 소상하게 기록해나가는 일 또한 지금의 야당 내지 야권이 세 번 연속으로 대선에서 미역국을 마시지 않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제일 것이다. 프랑스가 적군의 군홧발이 다시는 파리의 거리를 짓밟지 못하도록 1940년의 패전이 왜 초래됐는지를 철저히 까발렸듯이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 등장 초기에 민주주의의 위기, 민생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를 우리나라가 당면한 3대 위기로 규정하고 너무 늦기 전에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해야만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DJ가 지적한 총체적 위기들이 한나라당의 집권에서, 그리고 좀 더 근본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참여정부의 실패와 몰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으며, 이는 상식적 사고에 부합하는 판단일 것이다. 문제는 참여정부가 실패한 원인과 그 몰락의 전개과정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연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방적 미화나, 악의에 가득 찬 폄하만이 지겹도록 반복해 횡행해오고 있을 뿐이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저술한 ‘로마제국 쇠망사’에 필적할 대작이 굳이 아니어도 좋다. 참여정부 인사들의 주장처럼 조중동과 거기에 부화뇌동한 미개한 국민들 탓이든, 다수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지적대로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거듭하면서 민중을 배신한 대가이든, 또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진단과 같이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하고 민주당 분당을 강행한 원죄의 필연적 결과이든 참여정부가 의무사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권재창출 노력을 거의 포기한 채로 이명박 정권의 출현을 어째서 그토록 거의 방관자적 자세로 용인했는지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하루빨리 착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지난 경기의 패인도 모르면서 다음번 경기를 이기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으니 국민들로부터 야당이 반성도, 책임감도 완벽히 실종된 단으로후안무치한 집 연일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프랑스에서는 독일군 못잖은 병력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6주 만에 패전한 이유를 남김없이 밝혀내려는 작업이 현재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가 독일과 함께 유럽통합을 주도해온 것은 독일의 진정성 있는 참회와 더불어 프랑스의 부단한 혁신과 변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차 대전 초기, 프랑스를 어이없는 패전으로 치닫게 한 프랑스군의 수뇌부 중 주요한 책임자들은 그 누구도 다시는 군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참여정부 사람들이 여전히 기세등등한 우리나라의 야당과는 천양지차의 모습일 것이다.


- ‘21세기경제학연구소(www.taeri.org)’ 9월호 소식지에 기고한 글임.

글쓴이는 시사평론가, <이수만 평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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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9/15 [16: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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