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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농촌 살리는 도시전문직과 언론들
[김영호 칼럼] 신농민들이 영국농촌 살찌워, 한국 위정자들은 농업포기
 
김영호   기사입력  2005/08/12 [04:05]

 서유럽 농촌이 급속히 황폐화하고 있다. 산업화-도시화-기계화로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났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외국의 값싼 농산물이 이농을 더욱 촉진한다. 젊은이들이 떠나니 학교 다닐 어린이들이 없어 폐교가 잇따른다. 늙은이만 외로이 농촌을 지키는 꼴이다. 이태리의 경우 농촌인구가 260만명인데 그 중에 60%는 65세 이상의 고령자이다.

 폐농의 삭풍이 몰아친 유럽의 농촌은 그 옛날 자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과수원과 목초지에는 잡초-잡목만 우거지고 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야생동물들이 돌아온다. 오스트리아에는 곰이 오랜만에 나타났고 독일에서는 늑대의 출몰이 늘어난단다. 간데 없던 온갖 날짐승, 길짐승이 되찾아 온다는 이야기다.

 스페인 내륙지방의 마을들은 ‘인구감소대책협회’를 만들어 농업이민 유치에 나섰다. 5년 전에는 항공권과 주택까지 제공하면서 말이다. 한 마을에는 주로 아르헨티나와 루마니아에서 온 130여명의 외국가족이 정착했다. 오랜만에 어린이의 웃음소리가 꽃피자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지도에서 사라질 뻔했던 마을이 되살아난 셈이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는 다르다. 특히 영국은 전원생활의 꿈을 안고 농촌을 찾는 도시민들이 많다. 해마다 10만명 꼴로 늘어난다. 농지의 40% 가량을 이들이 사들여 땅값도 크게 올랐다. 주로 중산층인 이들은 농촌에 집을 마련하고 별장처럼 쓴다. 상당수는 성공한 전문직업인 출신으로 농업을 아예 본업으로 삼는 ‘신농민’이다. 도시에서 터득한 상업적 기술을 발휘하여 품질고급화와 시장개척에도 수완을 발휘한다.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농민시장이 지난 5년 동안 500개로 2배나 늘었다.

 일찍이 공업화에 성공한 영국은 19세기 중엽 중농정책을 포기했다. 공산품을 수출해서 번 돈으로 농산물은 수입해서 먹는 게 싸다는 비교우위론에 빠졌던 것이다. 그후 영국은 그 실책을 통감하고 농업의 소중한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11년부터 농촌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2차 대전 때는 나치의 대륙봉쇄령으로 식량난을 겪으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더욱 깊게 깨달았다. 
 
▲  세계 각국과의 FTA 체결로 우리쌀의 입지는 날로 약화되고 있다. 우리쌀을 지키겠다고, 농업사수를 외치는 농민들의 외침은 점점 사회와 언론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서태영

 
 농촌에 대한 향수와 동경을 자아내는 데는 언론도 큰 몫을 한다. ‘강가의 오두막집’이란 TV연속극은 지난 몇 년 새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런던에 살던 어느 요리사가 농촌에 정착하는 이야기다. ‘신농민’의 돈벌이는 물론 도시의 그것보다 못하다고 한다. 그래도 땅이 주는 헤아릴 수 없는 보상을 달게 받는단다. 소비자도 대량생산을 거친 균질화된 가공식품보다는 농촌의 향기를 담은 맛을 찾는다.

 영국은 가장 먼저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이다. 그 영국이 다시 가장 먼저 땅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국가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미래를 보는 혜안이 없는 위정자들이 농업을 포기하는 쪽으로 몰고 가니 안타깝기만 하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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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8/12 [04:0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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