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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자'를 향한 전여옥의 적개심
[논단] 학벌사회를 받치는 극우민중주의와 지적 콤플렉스
 
숨인씨   기사입력  2005/06/10 [14:08]

"탐탁치 않은" “거친 언행"은 전여옥 의원에게 어울리는 평가다. "지도자는 포용력과 따뜻함과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전여옥은 정말이지 “증오와 갈등이 굉장히 심한 분”인 것 같다. 하기야 서푼어치 반일주의와 사이비 여성주의로 논객반열에 오른 전여옥이 한나라당으로 들어갔을 때, 이미 그의 자폭은 예견된 사건이었다.
 
그는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두 정부 인사의 호텔 회동에 ‘불륜’ 어쩌구하는 지저분한 언사를 선보였다. 요사이 그는 자신이 ‘유신공주’라고 폄하했던 박근혜 대포를 추앙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전여옥을 비난하는 것이 정적인 유시민 의원이나 ‘노빠 누리꾼’들만은 아니다. 그의 옷차림까지도 패션 칼럼니스트의 표적이 된다(김경, ‘전여옥을 위한 패션제안’, <한겨레21> 502호).

"대학 졸업자가 60%이기 때문에 대학을 다닌 경험이 있는 분이 대통령으로 적절하지 않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간층에 해당하는 나의 집안 식구 넷 중에도 대학졸업자는 하나도 없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0년 당시 한국의 총인구는 약 4600만명이었고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740만명쯤이었다. 아무리 대충 셈하여도 ‘740/4600 X 100'은 60이 아니다. 입으로 내뱉었으니 ‘오타’라고 우길 수도 없다(전여옥은 <조선일보>에 쓴 칼럼에서 조지 루카스가 영화 ‘반지의 제왕’의 감독이라고 적고 독자들의 항의를 받았을 때 뻔뻔하게도 ‘오타’를 가지고 왜 그러냐는 투로 받아쳤다).

어차피 실재적 잠재적 차기 대선주자들은 모두 대학을 다녔으며, 국민들이 2007년 말에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정규교육이 끝난 대통령 당선자를 볼 가망은 거의 없다. 전여옥의 발언은 현직 대통령의 고졸학력을 약점으로 삼은 인신공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그 발언의 가장 구린 구석은 따로 있다. 그는 스스로를 ‘엘리트주의자’라고 소개하였다. 거짓말이다.

나는 노무현이야말로 엘리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이 마지막으로 나온 학교인 부산상고는 당시만해도 전국적인 명문고등학교였다. 게다가 그는 사법시험을 통과하였고 연수원을 거쳐 판사로 임용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뒤늦은 운동참여를 독서와 토론으로 만회한 자가 노무현이다.
노무현의 주요 지지층도 ‘대졸-화이트컬러-30대 -남자’다. 그의 기반이나 원동력은 민중주의보다는 훨씬 엘리트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반면 한나라당은 민중선동에 의존하는 ‘극우 민중주의자’들이며, ‘고졸-블루컬러’가 주요 지지층의 상당 부분을 점할 것이다. 전여옥도 부르조아적 외양을 지닌 우중, "배운 자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찬" 인간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학벌사회다. 그러나 한국에 과연 엘리트주의든 아니면 좋은 뜻에서의 지성주의든 존재하긴 하는가. 도무지 이 땅에서는 ‘배운 자’에 대한 존중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이를테면 고등학교에서 거둔 성적으로 인문학전공자가 된 젊은이, 시민운동에 종사하는 인권변호사, 학력은 보잘것없지만 굉장한 지식을 품은 독학도는 “그래 너 잘 났다”, “배워 쳐먹은 놈들이 문제야”라는 소리나 듣는 골칫덩어리들이다. 오로지 힘만이 고개를 숙이게 한다. 누군가 전여옥의 ‘똑똑함’을 칭찬한다면, 그것은 전여옥의 지적인 모습이 아닌 경력에 혹한 탓일 것이다.

학벌구조를 온존하는 수단으로써 곧잘 쓰이는 “대학평준화의 프랑스에도 명문대가 있다”는 변명은 조금도 옳지 않다. 유소년기 내내 공부 열심히 하여 일류대학교를 졸업해도 좌우는커녕 똥오줌도 못 가리는 문제아들이 수두룩한 ‘반지성적’인 사회에서 말이다. 그런 주제에 ‘가방끈 짧은’ 이들까지 학벌에 목을 매다니.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망하지 않은 걸까.

우리는 늘 소수 지성인들의 헌신으로 발전한 사회에 무임승차한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비열한 쟁투를 벌인다. 참여를 내건 보수적 실용주의자는 합리와 기만이 뒤섞인 상황을 만든다. 그런가 하면 저속한 선동자가 엘리트의 이름으로 날뛰는 순간 우리는 아예 역사의 반동을 맞이한다. 전자는 노무현을 가리키는 것이고, 후자는 '명문대 출신'으로서 퇴출 0순위에 오른 어느 여성정치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 위 기사는 유뉴스(http://unews.co.kr)에도 송고하였습니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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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6/10 [14: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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