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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 전여옥: 폭력이 된 언어, 역주행의 세계
[최을영의 시사인물 포커스] 전 의원은 민주주의에 대한 폭행 깨달아야
 
최을영   기사입력  2009/04/22 [15:01]
호들갑?!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2009년 2월 27일 낮 12시 45분쯤 전여옥이 국회 본청에서 후문으로 나가는 길에 '5·3 동의대 사건 가족대책위원회'(이하 5·3대책위) 소속 회원들과 만났다. 당시 5·3대책위는 전여옥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낸 것을 두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도움을 받기 위해 국회를 방문 중이었다. 이 중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이정이 공동대표가 전여옥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였다.

여기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진술이 엇갈린다. 피해자는 멱살도 잡히고, 머리채도 잡혔으며 5∼6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집단 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해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이정이 대표 혼자 전여옥을 알아보고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였을 뿐 그 이상의 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여권,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는 '감히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백주에 테러를 일으키다니'라는 반응을 보이며 흥분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오늘 낮 12시 45분경, 전여옥 의원이 국회 본청에서 후문으로 나가려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5∼6명의 여성들이 달려들어 욕설을 해대며, 할퀴고, 머리를 쥐어뜯고, 얼굴을 때리고, 전여옥 의원의 눈에 손가락을 후벼 넣었다. 현재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서울시내 순천향병원에 입원 중에 있다"고 주장했다.1)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이하 매체명 기호 생략)는 가해자의 주장을 배제하고,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한나라당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로 옮겼다.
 

▲ 국회 안에서 민주화실천 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입원 3주 만인 지난 3월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안대를 한 상태로 퇴원했다.     © CBS노컷뉴스

한나라당은 이번 사태를 두고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테러'로 규정하고 책임자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3월 2일 "세상이 이래서 힘들고 괴롭지만 함께 애써서 바로잡자"며 위로전화를 했고, 김형오 국회의장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이번 사건은 헌법기관이자 국민의 대표작인 국회의원에 대한 명백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사건 발생 4시간 만에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경찰서장 이하 50여 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차렸다. 그리고 이정이 대표를 긴급 체포해 구속했고, 그와 함께 연행된 5·3대책위 회원 4명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이를 놓고 과잉대응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과잉대응은 법무부에서도 나왔다. 법무부는 2009년 3월 3일 "입법활동을 이유로 국회의원에게 폭력을 행사할 경우 이를 '의회주의 파괴 사범'으로 보고, 구속수사를 포함한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2) 촛불집회 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경찰에게 뭇매를 맞는 일이 있었어도 침묵했던 그들이, 전여옥이 폭행당했다고 하자 이렇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국회 안에서 전여옥이 멱살을 잡힌 건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사실이다. 칠순에 가까운 할머니가 멱살을 잡은 것도 폭력이다. 폭력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도 안 된 상태에서 이를 테러로 규정하고, 공권력이 과잉대응을 하는 것은 '호들갑'처럼 보인다. 더구나 촛불집회 현장에서, 용산참사 현장에서 국회의원이 경찰에게 폭행당했을 때 침묵하던 이들이, 이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런 심증은 더욱 굳어진다. 2009년 1월 용산참사 진상조사를 갔을 때 국회의원 신분증을 보여주고도 경찰에게 뭇매를 맞았던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의 다음과 같은 항변은, 전여옥 사건에 대한 대응이 호들갑스럽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유원일은 국회의원이 아닌가? 이 정도 사건으로 전 의원이 입원했다면 난 불구의 몸이 돼야 한다."3) 
 
독설의 향연
 
전여옥은 독설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전여옥에 대해 사람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도 바로 그의 독설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의 말을 들으며 시원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의 말이 폭력이라고 말한다. 한겨레의 박찬수 논설위원은 후자 쪽인 듯하다. 그는 전여옥의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동의대 사건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과격한 폭력사건이다. 진압하러 들어간 경찰관 7명이 학생들에 의해 무참하게 불태워져 처참하게 살해된 극악한 사건이다"라는 글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4)

"동아일보사가 펴낸 1990년판 『동아연감』에 실린 법원 판결문을 보면, 학생들이 고의로 불을 지른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발화 원인은 화염병 투척이지만, '경찰이 사용한 소화기의 분사압력에 의해 불길이 화염병 더미로 옮겨 붙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동아연감』은 '경찰의 무리한 작전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막장 드라마가 인기고 독설이 유행인 시대다. 그래도 입법권을 쥔 국회의원의 독설이 일반 시민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전 의원에게 가해진 폭행을 감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때론 말이 주먹보다 더 아프게 누군가의 가슴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은 생각해봤으면 한다."5)

그러나 전여옥이 그동안 내놓은 독설을 보면 박찬수 논설위원의 바람은 실현되지 않을 듯하다. 이쯤해서 전여옥의 독설을 일별해보자.

2003년 5월 23일 전여옥은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지 않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중권은 "가령 누군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위태위태한 발언을 하는 그를 보고 '전여옥 씨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면 본인은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게다가 대통령은 국민이 뽑아주기라도 했지, 그는 누가 뽑아줘서 태어난 것도 아니잖은가"라고 비판했다.6)
 
▲     © CBS노컷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뒤인 2004년 3월 12일 전여옥은 SBS <이것이 여론이다>란 토론프로그램에 나가 '인큐베이터 발언'을 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이 "어떤 분이 '노 대통령은 시대정신이 낳은 미숙아'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바를 체현하고 있는 정치인인데, 좀 미숙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자 전여옥은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뒤 나와야 한다"고 말해 입방아에 올랐다.7) 당시 전여옥은 한나라당으로부터 대변인 자리를 제의받은 상태에서 이 토론에 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말하겠다고 밝혀 구설수에 올랐다. 한국일보의 박은주 기자는 "전씨는 자신의 정치적 정황으로 미뤄 볼 때 방송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고, 나갔다면 '일반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일반 시민인 동시에 한나라당 대변인 제의를 받은 사람'은 '일반 시민'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진실의 반을 말하는 것은 거짓에 더 가깝다"고 비판했다.8)  
 
독설의 또 다른 이름, 언어폭력
 
한나라당 대변인이 된 후 전여옥의 독설은 그 정도를 더해갔다. 2004년 3월 21일 당시 강금실 법무장관이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만난 것에 대해 "불륜 남녀인지, 불순한 관계인지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9) 2004년 11월 12일에는 국외 순방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노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됐을 때, 휴가를 갔을 때, 그리고 해외 순방 때 등 세 가지 상황의 공통점은 '그래도 나라가 조용했을 때'라는 시중의 농담이 있다"며 "노 대통령의 부재는 모처럼 나라가 조용해질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 되도록 오래 머무시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10) 국가의 지도자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나가는 길에 야당의 대변인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참 놀랍다.

때로 전여옥의 독설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2005년 2월 6일 전여옥은 박근혜 대표를 비판한 일부 의원들을 향해 "한나라당이 탄핵 역풍 속에 박 대표의 치마폭을 붙잡고 '살려 달라'며 애걸, 121석을 얻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여권이 거센 과거사 폭풍을 몰고 오니 의원들은 제 몸 피할 생각만 한다"며 "이제 박 대표에게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고 심청이처럼 뛰어내려 달라는 것이냐. ……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뺑덕어미 보듯 할 것"이라고 독설을 날렸다.11)

2005년 6월 2일에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해 "국민의 지식 수준이라든가 또는 학력 형태도 대학 졸업자가 60%이기 때문에 대학은 다닌 경험이 있는 분이 다음 대통령이 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12) 이 발언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여옥은 이 발언의 주요 요지는 학력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언론에 의해 자신의 발언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학력 콤플렉스' 발언은, 여당 일각의 주장처럼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음의 차원에서 지극히 차별적이고 문제적인 발언이다. 이런 식이라면 대졸자라도 전 대변인처럼 '잘난 대학' 출신이 아닌 다음에야 또다시 '명문 대학 콤플렉스' 대통령으로 규정될 게 뻔하다. …… 엘리트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콤플렉스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나만큼 잘나지 않았으므로 콤플렉스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각이다."13)

전여옥의 독설은 끊이지 않았다. 2006년 2월 24일에는 대전 당원교육행사 강연에서 "5억 달러를 개인계좌에 넣어준 뒤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주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치매든 노인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해준 게 6·15선언이 아니냐"고 말해, 때 아닌 치매정국을 불어오기도 했다.14) 김정란 상지대 교수는 "나는 전여옥 의원의 도를 넘는 막말도 결국 우리 사회가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녀의 논평은 논평이 아니라 언어폭력이다. …… 그녀가 믿는 것은 그 폭력을 용인해주는 사회시스템이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그녀는 온갖 막말을 쏟아내고도 특정 계층에서 오히려 인기를 누린다. 그것은 그녀가 뱉어내는 폭력적 언어가 구시대의 구사대 몽둥이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15)

이 밖에도 2009년 1월에 국회에서 농성을 펴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내놓은 '1박 2일' 발언, 한미 FTA 상정 강행을 반대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향한 '사이코패스' 발언 등이 있지만 더 말하자면 끝이 없으니, 지면 관계상 이쯤해서 접자. 
  
『일본은 없다』
 
전여옥은 KBS 기자 출신이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페미니스트라 자임하기도 했다.16) 그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자.

전여옥은 1959년 4월 19일 네 자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의 특별한 대우와 커다란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그는 1981년 KBS에 기자로 입사했다. 전여옥은 "남녀 구별 없이 일단 시험이라도 치를 수 있는 직종이 기자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기자가 되었다고 말한다.17) 그는 KBS에서의 생활을 '투쟁의 역사'라며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투쟁했다고 밝히고 있다.18)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그는 1990년 10월 KBS 역사상 최초의 여성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게 돼 1991년 1월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으로 『일본은 없다』(지식공작소, 1993)를 출간하게 된다.
 
▲     © CBS노컷뉴스

『일본은 없다』는 전여옥이 KBS 도쿄 특파원으로 일본에서 2년 8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보고 느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쓴 글이다.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절대로 객관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주관적인 글"로 이뤄졌다.19)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일본은 배울 것이 없는 나라라고 단정한 책이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한다는 비판과, 쇼비니즘(광적인 애국주의)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더구나 이 책에 대해 표절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2004년 『일본은 없다』에 대해 표절의혹을 제기했다. 전여옥은 곧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2007년 7월 법원은 오마이뉴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평소 친하던 지인이 일본에 관한 책을 내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에게 건네받은 글의 내용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인용해 '일본은 없다'의 일부분을 작성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20)

그러나 이는 나중 일이었다. 전여옥은 『일본은 없다』로 유명 인사가 되었고, 1994년에만 2억 6000만 원 정도의 인세를 받았다. 1994년 KBS를 그만둔 전여옥은 '리마주'라는 독립프로덕션을 차렸다가 심리테스트 전문업체인 (주)인류사회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그 사이 『일본은 없다2』(지식공작소, 1995),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이하 푸른숲, 1995), 『여성이여, 느껴라 탐험하라』(1997), 『간절히 @ 두려움없이』(1999) 등의 책을 내놓았다. 
 
힘을 좇다
 
전여옥은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조선일보에 고정 칼럼을 실으며 이름을 날렸는데 조선일보에 글을 싣는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특별히 조선일보를 사랑하는 건 아니고 전 그 신문이 갖고 있는 영향력, 그거를 사랑하죠. 그래서 거기에 쓰는 거예요."21)

이 말은 영향력, 힘의 논리를 사랑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전여옥의 정치행보를 보면 그가 힘의 논리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여러 차례 배를 갈아탄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전여옥은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며 정치 일선에 뛰어들었다. 2002년 11월 5일 대전에서 열린 국민통합21의 창당대회에서 그는 "정 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며 그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다.22) 그러면서 그는 이회창 대통령 불가론을 폈다. 그런 그가 2004년 3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해 대변인이 되었고,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친박근혜계로 분류되며 '박근혜의 입'으로까지 불리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나라당 입당 전인 2월 24일 조선닷컴에 기고한 글에서 그가 "(최병렬 대표의 후임으로) 박근혜 의원을 선택한다면 화약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격"이라고 평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는 "박 의원은 스스로 벌고 쌓은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정치적 유산의 상속자로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라는 여성 정치인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박정희는 죽었지만 '정치적 왕조'로서 딸 박근혜를 통해 일종의 '유훈정치'를 하고 있다"라고까지 말했다.23) 그러나 박근혜가 당 대표가 되자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건 사심 없는 정치인"이라며 박근혜를 극찬했다.24) 또 앞서 밝힌 대로 박근혜를 비판하는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을 '뺑덕어미'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전여옥에 대한 박근혜의 신뢰도 높았다. 2005년 6월 9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이례적으로 전여옥의 '대졸 대통령' 발언을 대신 사과하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는 전여옥이 대변인 사퇴 의사를 밝히자 "이겨내라. 인터넷에도 들어가지 말라"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25) 하지만 전여옥은 곧 이명박 호로 배를 갈아탄다.

2007년 7월 그는 "박근혜 전 대표가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처한 엄중한 현실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놓고 고심하다가 결심을 하게 됐다. …… 이 전 시장은 정권교체를 위해 가장 가능성이 있는 후보"라며 이명박 지지 선언을 했다.26) 이는 정권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명박을 지지하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후자 쪽이라면 역시 힘의 논리에 민감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지지로 돌아선 뒤 전여옥은 이명박에 대해 "꿈을 눈앞의 현실로 만든 최초의 정치인", "배고픔에 소리 죽여 울어보고, 없는 설움과 아픔을 겪은 사람", "이 절망의 시대에 '샐러리맨의 신화'에 기름을 부어 '대한민국의 신화'를 활활 타오르게 할 인물"이라고 극찬했다.27)

전여옥은 2008년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갑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재선된 후 사이버모욕죄 재정을 주장하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놓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고 앞으로도 여러 일을 벌일 태세다.

전여옥 폭행 사건으로 전여옥은 일약 뉴스의 중심부로 떠올랐다. 그에 대한 반응도 엇갈렸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행하는 폭력 이외에도 말로 이뤄지는 폭력에도 무심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여옥은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 바 있다.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그분들이 안타깝다. 민주주의는 폭력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28)

이 말을 이렇게 돌려주고 싶다.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전여옥 의원이 안타깝다. 민주주의는 언어폭력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9년 5월 호에 실렸습니다. 


[각주]
1) 류정민, 「"전여옥 의원 테러? CCTV 보면 알아"」, 『미디어오늘』, 2009년 2월 27일(인터넷판)
2) 석진환·강희철, 「"국회 폭력도 형사사건처럼 엄정 처벌"」, 『한겨레』, 2009년 3월 4일, 1면.
3) 송호진,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민주에 번쩍 민노에 번쩍 '국회 홍길동'」, 『한겨레』, 2009년 3월 20일, 17면.
4) 박찬수, 「아침햇발: 폭력 테러와 '말의 테러'」, 『한겨레』, 2009년 3월 3일, 23면.
5) 박찬수, 「아침햇발: 폭력 테러와 '말의 테러'」, 『한겨레』, 2009년 3월 3일, 23면.
6) 진중권, 「정동칼럼: 눈뜨고 못볼 '정치 포르노'」, 『경향신문』, 2003년 7월 11일, 7면.
7) 황준범, 「'입방아' 오른 TV토론 발언」, 『한겨레』, 2004년 3월 17일, 8면.
8) 박은주, 「문화프리즘: 편파 방송과 편파 방송인」, 『한국일보』, 2004년 3월 19일, 19면.
9) 최우규, 「선택의 날이 밝았다 : 돌아본 총선 대장정- 말따라 풍따라 판세 출렁」, 『경향신문』, 2004년 4월 15일, 2면.
10) 송용창, 「전여옥 대변인 막말 논평 "노 대통령 없으면 나라가 조용 되도록 오래 머물다 돌아오길"」, 『한국일보』, 2004년 11월 13일, 4면.
11) 이동훈, 「기자의 눈 : 한나라당 의원은 뺑덕어미?」, 『한국일보』, 2005년 2월 11일, 2면.
12) 권혁범, 「전여옥 대변인 발언 논란」, 『한국일보』, 2005년 6월 4일, 5면.
13) 정혜신, 「전여옥의 콤플렉스적 시각」, 『한겨레』, 2005년 6월 7일, 30면.
14) 최재영, 「'싸움닭 전여옥' 또 막말 "6·15선언 돈으로 사고… 날강도 정부…」, 『경향신문』, 2006년 2월 24일, 5면.
15) 김정란, 「그들의 카르텔」, 『한겨레』, 2006년 3월 10일, M25면.
16) 베스트셀러 작가와 페미니스트로서의 전여옥에 대해서는 최을영, 「전여옥: 제발 테러리스트가 되세요」, 『시사인물사전15: 베스트셀러와 작가들』(인물과사상사, 2001)을 참고하기 바람.
17) 전여옥,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푸른숲, 1995, 32쪽.
18) 전여옥, 『여성이여, 테러리스타가 돼라』, 푸른숲, 1995, 18쪽.
19) 전여옥, 『일본은 없다』, 지식공작소, 1993, 5쪽.
20) 박상진, 「전여옥 의원 표절 패소… 법원 "무단 인용" 인정」, 『한국일보』, 2007년 7월 12일, 8면.
21) 김영희 정리, 「테마대담: 방송, 어떻게 볼 것인가 전여옥 칼럼니스트-변희재 칼럼니스트」, 『한겨레』, 2003년 12월 16일, 18면.
22) 김광덕, 「기자의 눈: 경선 없는 "정치개혁" 출범」, 『한국일보』, 2002년 11월 6일, 6면.
23) 김의겸·김수헌, 「여야 대변인 뒤바뀐 '박근혜 관'」, 『한겨레』, 2004년 3월 25일, 4면.
24) 이동훈, 「한때는 박근혜의 입이었는데… 전여옥 "이명박 지지"」, 『한국일보』, 2007년 7월 13일, 5면.
25) 이지선, 「용인술 통해 본 대선주자 정치철학」, 『경향신문』, 2007년 2월 9일, 4면.
26) 최재영, 「전여옥 "이명박 지지" 커밍아웃, "이 후보 시대정신" 입맛 변한 '박의 입'」, 『경향신문』, 2007년 7월 13일, 4면.
27) 성연철, 「'박근혜 입' 전여옥, 이명박 편으로」, 『한겨레』, 2007년 7월 13일, 5면.
28) 박정훈, 「전여옥 의원 "폭력으로 민주주의 이룰 수 없어…"」, 『동아일보』, 2009년 3월 21일,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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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4/22 [15: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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