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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 노림수는 영도조선소 폐쇄인가
[김영호 칼럼]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호황, 의도적인 사업장폐쇄 규명해야
 
김영호   기사입력  2011/06/29 [05:12]

제도언론의 무관심 속에 집단해고-직장폐쇄-장기파업이란 극한대립으로 치닫는 한진중공업 사태가 강제진압으로 더욱 깊은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는 형국이다. 그곳에는 집단해고에 맞선 노조의 ‘옥쇄파업’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김진숙 해고노동자가 높이 35m 크레인 위에서 반년 가까이 외롭게 고공사투를 벌여왔다. 보다 못한 트위터 사용자들이 탈진한 노조농성 소식을 세상에 알리면서 여배우 김여진이 나섰고 전국에서 희망버스라는 이름의 원정지원이 떴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이제 개별기업-지역문제를 넘어서 전국적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 여론에 밀려 국회가 마지못해 청문회를 열었지만 조남호 회장은 해외출장이란 핑계로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와 전자제품은 일반소비제품이라 세계적 명성을 국민들이 익히 알고 있다. 선박 또한 그 명성에 못지않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모른다. 일반인과의 접촉이 없는 업종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은 세계최고의 기술능력과 세계최대의 건조능력을 자랑한다. 조선소마다 도크에 일감이 쌓여 호황을 노래하고 있다. 중국이 곧 추월하리라는 우려의 소리도 나오지만 기술력이 월등하여 그 시간은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길 듯하다. 컨테이너선, 벌크선과 같은 저부가가치 선박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후발국이 쫓아오지만 LNG운반선, 유람선, 해저시추선과 같은 고부가치 선박은 경쟁력이 확고하다. 이지스함, 잠수함 등 군함 건조능력도 탁월하다.

그런데 한진중공업이 작년 12월 수주부진을 이유로 인력감축에 나서 생산직의 1/3에 해당하는 410명을 해고했다. 금년 1월 15일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172명에 대한 정리해고와 함께 직장폐쇄를 단행한 것이다. 뒤이어 주주에게 174억원의 이익금을 배당하고 임원 연봉을 1억원씩 인상함으로써 집단해고의 진의를 의심케 했다. 한진중공업의 수주실적은 부진이 아니라 전무이다. 영도조선소의 수주실적은 2008년 해양경찰청이 발주한 경비정 9척이 마지막이다. 한진중공업은 2008년 8월 이래 금년 5월까지 거의 3년 동안 수주실적이 1척도 없다. 반면에 영도조선소의 수주가 끊어지기 시작한 시점에 완공된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3년치 물량을 확보한 상태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국내 조선업계의 2010년 수주실적은 320척, 816만GCT(표준화물선환산톤수), 191억달러이다. 이 실적은 2009년에 비해 CGT 기준으로는 무려 3,795%, 금액기준으로는 351%나 증가한 것이다. 업체별로는 삼성중공업 59억달러, 대우조선해양 47억달러, 현대중공업 34억달러, 현대미포조선 24억달러, STX조선해양 16억달러, 현대삼호중공업 8.5억달러, 대선조선 2,2억달러이다. 그런데 업계 4위라는 한진중공업만이 유독 0달러이다. 금년 들어서 조선업은 더욱 호조를 보여 1/4분기 현대중공업 71억달러, 대우조선해양 34억달러, 삼성중공업 23억달러의 수주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여전히 0달러이다. 세계경기 회복에 따른 물동량 증가로 컨테이너선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리비아 내전사태, 일본 원전붕괴에 따라 해양플랜트, LNG운반선 발주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국내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조선소이다. 1937년 부산 영도에서 출범한 조선중공업은 해방 후 국영기업 대한조선공사로 다시 출발한 다음 민영화되었으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987년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1989년 한진그룹이 인수해 한진중공업으로 개편했다. 그 후 20년 동안 한 차례의 적자도 내지 않았고 최근 10년 동안은 4천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냈다. 국내 최초로 LNG운반선, 석유시추선을 건조한 기술력도 보유하고 있다. 매출규모 3조원으로 부산에서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한 한진중공업은 조선기자재 납품업체와 사내하청을 통해 2만명의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부산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한진중공업은 해외진출을 계기로 이상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필리핀 수빅만에 조선소를 건설하기 시작해 2008년 완공했다. 수빅조선소는 부지면적 70만평에 1만9,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수빅조선소는 지난해만도 23척을 수주했다. 한진중공업은 실제 수빅조선소가 3년치의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영도조선소의 수주물량은 2008년 8~12월 전무, 2009년 전무, 2010년 전무, 2011년 1~5월 전무이다. 국내4위의 조선업체가 3년 가까이 수주를 1건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경쟁업체의 호황에 비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노조가 주장하듯이 물량을 수빅조선소로 빼돌린 것인지 고의로 수주를 기피하는 것인지 회사측은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이상한 대목이 있다. 3년 가까이 수주실적이 전혀 없고 영도조선소가 직장폐쇄 상태인데도 주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진중공업이 작년 11월 이른바 애널리스트라는 증권사 시장분석가들을 수빅조선소로 초청한 바 있어 그들이 긍정적인 분석보고서를 내놓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 까닭에 부산에는 영도조선소 자리에 복합주상아파트를 지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고 그 기대감이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한진중공업이 위치한 영도구 봉래동은 부산 항구를 마주보고 있어 조망과 전망이 좋다. 아파트 부지로는 최적지라는 소리도 그 때문에 나오는 것같다. 실제 한진중공업은 건설부문을 두고 ‘해모로’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조선업은 봉제업과 달라 저개발국가로 저임금 따먹기 공장이전이 용이하지 않은 업종이다. 단기간에 기술숙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술의 핵심은 용접이다. 선박은 규격상품이 아니라 사양과 설계가 다 달라 자동용접이 불가능하다. 모든 작업공정이 수작업을 거친다. 수동용접(manuel welding)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오랜 숙련기간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조선소 노동자의 평균연령은 40대 이상이다. 노동강도가 높아 젊은이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조선업은 주로 옥외작업을 하기 때문에 첫째 입지조건은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아야 한다. 필리핀 수빅만 같은 열대지역에서는 철판표면 온도가 섭씨 70~80도를 오르내려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이에 따른 산업재해율도 높다. 수빅조선소는 무더운 기후와 낮은 숙련도 때문에 앞으로 상당한 기간 컨테이너선, 벌크선과 같은 저부가가치 선박의 생산만이 가능할 것이다.

영도조선소는 부지면적이 협소해 공장확장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한진중공업의 설명대로 영도조선소는 고부가가치선, 수빅조선소는 저부가가치선 위주의 생산체제를 갖춘다는 경영전략은 타당성이 있다. 문제는 왜 3년 가까이 영도조선소는 수주실적이 전혀 없느냐는 의문이다. 바로 이 점이 노조는 물론이고 부산시민들이 공장폐쇄를 밟는 수순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다. 부산경제는 1970년대 목재산업, 1980년대 신발산업이 사양화된 이후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다. 조선업은 산업연관효과도 크고 고용효과도 크다. 한진중공업의 수주전무로 인해 이미 조선기자재 납품업체와 관련 노동자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부산시민들이 우려하는 대로 아파트 부지로 활용하기 위해 영도조선소를 폐쇄한다면 이것은 부산 최대기업의 폐업으로 이어져 부산경제는 더욱 쇠퇴할 것이다.

한진중공업의 대한조선공사 인수는 그 자체가 국가가 특정기업에 준 특혜이다. 또 수출금융, 정책금융이란 정책특혜에 힘입어 성장해 왔다. 그런데 만약 영도조선소를 폐쇄한다면 이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다. 국회는 청문회에서 수주를 고의적으로 기피했는지, 영도조선소를 폐쇄할 의향이 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해야 한다. 사주가 또 청문회 출석을 거부한다면 즉각 고발해 국회의 권위를 되찾아야 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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