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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 앵커는 젊고 예뻐야 하는가?
여기자를 '방송의 꽃'으로 만드는 방송국은 각성해야
 
변희재   기사입력  2003/06/03 [14:23]
20년의 나이 차

'앵커는 기자와 시청자를 잇는 다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팩트가 아닌 느낌으로 전하는 멘트로 시청자를 현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벌써 3년째 KBS 9시 뉴스 앵커를 맡고 있는 정세진 아나운서의 말이다. 정세진 아나운서와 함께 뉴스를 진행하는 홍기섭 앵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뉴스인데 그 가치와 신뢰성이 앵커의 표정이나 눈빛, 구사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좌우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되도록 깔끔하고 짧게 뉴스를 전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다른 표현을 쓰긴 했으나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앵커의 생명은 바로 뉴스의 신뢰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들뿐 아니라 모든 방송국의 모든 뉴스 진행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바이다.

정세진 앵커가 6년차 73년생 젊은 여성 아나운서인데 반해, 홍기섭 앵커는 무려 16년차 60년생 베테랑 기자 출신이다. 이 둘의 나이 차이는 13년이다. 그러나 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 MBC 9뉴스의 엄기영 기자, 김주아 아나운서
MBC의 경우는 사장 후보로까지 물망에 오른 간판 엄기영 기자가 앵커를 맡는 바람에 파트너인 김주하 아나운서와는 거의 부녀 수준의 나이 차가 난다. 엄기영 기자가 51년생, 김주하 아나운서가 73년생이니 무려 22살의 차이이다.

현재 방송 3사 중 유일하게 여기자 출신을 앵커로 기용한 SBS의 경우 역시 곽상은(76년생) 기자가 너무 어린 탓에 보도본부 차장 출신 이영춘(61년생) 앵커와 15년의 나이 차가 나고 있다.

40대를 넘긴 중년의 아저씨들이나,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아가씨들이나 "앵커에게는 신뢰성이 중요해요" 이렇게 다 함께 외치고 있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가? 정말 신뢰성만을 따진다면 20대 청년과 40대 아주머니가 함께 뉴스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어야지, 어떻게 이 나라 대한민국에는 수십 년간 매일 같이 나이 많은 아저씨에 젊은 아가씨를 붙여야만 신뢰성 있는 뉴스가 나오느냐는 말이다. 이런 부녀 관계가 신뢰성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젊은 미모의 여성 앵커 시대

21세기의 방송에서 여성 앵커의 조건은 두말할 나위 없이 외모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앵커의 생명은 신뢰성이에요"라는 말을 믿는 매우 순진한 시청자, 혹은 그 말을 하는 앵커들뿐이다.

1980년대 컬러 TV 시대가 열리면서 KBS에서는 신은경이라는 스타 앵커를 배출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여성 앵커들이 브라운관의 꽃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백지연 시대 이후이다. 백지연은 1987년 11월, 입사하자마자 대뜸 MBC {뉴스데스크}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당시 MBC에서는 과연 무슨 기준으로 간판 뉴스에 신입 아나운서를 앉힐 생각을 했을까? 내가 볼 때는 외모였을 가능성 99%인데, 백지연은 훗날 억울하다 하소연한다.

후광 효과의 두 번째 측면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추남뿐만 아니라 미남도 낭패를 보게 만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을 만한데도 '외모 덕을 보았겠지' 하는 질시 섞인 매도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경우 복에 겨운 걱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잘생긴 사람들도 역콤플렉스를 느낀다고 하지 않던가. (백지연, {MBC 뉴스 백지연입니다}(문예당, 1993), 27쪽.)

백지연식 해석을 따르자면 회사에서는 단지 외모를 보고 신입 사원을 앵커 자리에 올렸지만 단지 그것으로 자신의 성공을 평가하는 건 억울하다는 것이다. 충분히 동감할 수 있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이런 오해에 대해서는 백지연뿐 아니라 메인뉴스 앵커 출신 여성 전체가 다 똑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지연, 김은주 등과 함께 MBC 아나운서 트로이카 체제를 열었던 현 MBC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자 정혜정의 말도 들어보자. 앵커 자리에 오른 데는 미모도 상당한 몫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죠.(웃음) 죄송합니다. 전 양다리 걸치기식 대답을 많이 하거든요. 언젠가 저의 별자리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제 별자리가 천칭자리더라구요. 저울처럼 균형 잡힌 건 좋은데 어떻게 보면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함이 늘 문제요. 외모는 분명 중요한 요소이긴 한데, 단지 외모로만 승부하려고 마음먹는다면 그 생명성이 얼마나 가겠어요. 얼마 안 가 바닥이 드러나게 됩니다. 예쁜 여자일수록 머리는 텅 비어 있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오히려 손해볼 수도 있고요.(<주철환이 TV밖에서 만난 스타: 아나운서 정혜정>, 월간 {말}, 1999년 4월호.)

과연 얼굴만 예쁘고 머리가 텅 비어서 바닥이 드러나 중도하차했던 여성 앵커가 누가 있었을까? 내가 알기로는 기용된 여성 앵커는 모두 다 성공했다. 한국의 뉴스 시스템 자체가 처음부터 앵커의 머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혜정이 말한 여성 앵커의 능력이란 딱 이런 수준이다.

제가 꽃이 되고 싶었다면, 그리고 꽃에 만족했다면 이미 시들어 버렸겠죠. 지금처럼 편집회의에서 함께 고민하고, 또 어떤 사안이나 편집 순서에 대해 제 의견을 묻거나 뉴스 예고 문안을 직접 쓰라고 요구하지도 않았겠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저 여자는 읽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간주하도록 저 자신을 만들었다면 아마 전 제대로 또박또박 읽기만 하는데 공을 들였을 겁니다. (<주철환이 TV 밖에서 만난 스타: 아나운서 정혜정>, 월간 {말}, 1999년 4월호.)

백지연의 말은 이보다 더 구체적이다.

신뢰감은 연출되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어 나오는 것'이어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한 노력은 '내가 말하는 기사는 내가 쓴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을 마치 내 말인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전할 기사 내용은 파악한다'는 것이었다.(백지연, {MBC 뉴스 백지연입니다}(문예당, 1993), 27쪽.)

백지연이 이 글을 쓴 지 10년, 현 SBS 앵커 곽상은 기자는 여기서 좀더 나아가고자 한다.

선배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한 리포트가 시청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매개 역할을 제대로 해야겠지요. 그러면서도 단순히 저한테 주어진 원고만을 읽는 앵커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종종 제 주장도 강하게 드러내는 앵커가 되겠습니다.

내가 찾아본 여성 앵커들 관련 기사, 특히 인터뷰 기사는 방송 현실을 너무나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가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그걸 그대로 받아 적은 기사가 범람하니 백지연 이후부터 어긋난 앵커 시장이 바로잡히지를 않는다.

백지연과 정혜정은 남들이 적어준 원고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원고를 충분히 이해해야만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방송뉴스의 수준이 어떤가? 한국의 방송뉴스에서 언제 철학사상을 다루던가, 아니면 경제이론을 다루던가? 광고보다도 짧은 1분 20초 안에 개요 수준의 내용만 전달해줄 뿐이다. 대한국민 평균치 수준의 정신연령만 갖추고 있으면 노래부르면서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백지연과 정혜정의 말에 따르자면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아나운서들 중에는 그 정도 뉴스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 얼굴만 예쁘고 머리만 텅 비어서, 잠깐 뜨다가 사라졌단 말인가? 고시라 불릴 정도로 그렇게 어렵다는 방송사 입사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9시 뉴스의 콘텐츠도 이해 못하고, 그 정도 원고도 작성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외국의 방송뉴스처럼 즉석에서 현장 기자와 의견을 주고받고, 전문가나 정책담당자들과 토론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곽상은 앵커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정도를 넘어서 거의 몽상가 수준이다. 한국의 기자사회가 어떤 조직인가? 선배가 까맣다고 하면 까맣다고 믿고 따라야 되는 군대식 조직이다. 이런 조직에서 초년병 기자가 공중파 뉴스를 통해 자기를 주장을 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뉴스에서는커녕 편집회의에서조차 자기 발언을 할 수 있을지 그것부터 의심스럽다.

어차피 한국 방송의 조직이나 뉴스 생산의 구조상 누가 와서 읽어도 전달력에서는 별 차이가 안 난다. 그렇다면 회사 간부들 입장에서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40대의 최소 차장급 이상의 남성 앵커를 앉혀서 보수적인 중년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여성 앵커는 자기들 입맛에 맞는 예쁘고 젊은 여성을 택하게 되어있다. 그게 바로 1987년도의 백지연 카드였고. 이 카드가 성공하는 바람에 2003년도까지도 이런 성차별적 뉴스가 매일 같이 공중파를 통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중년 여기자의 운명

나는 주로 방송뉴스를 아무 생각 없이 본다. 어차피 방송뉴스에서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을 던져주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뉴스를 봐도 정보 취득에 별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방송뉴스 기자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거의 모른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의 여기자의 얼굴은 아예 기억이 안 난다.

반면 조금 젊은 여기자들의 얼굴은 그나마 기억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저 여기자들은 앞으로 10년 뒤 방송사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남성 기자들의 미래와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칠 수 있는 직업은 권력이다. 고로 한국의 남성 기자들의 꿈은 메인뉴스 앵커가 되는 것이다. 요즘에는 뜸해졌고 올바른 방식도 아니지만 정동영, 이윤성, 박성범 등 앵커 출신들이 정계에 데뷔할 때가 바로 남성 앵커들의 전성시대였다. 지금의 젊은 남성 기자들도 바로 이런 메인뉴스 앵커를 꿈꾸며 일하고 있다.

그런데 젊은 여기자들은 처음부터 그런 목표를 상실한다. 이미 입사하자마자 자신들과 동년배에 가까운 젊고 예쁜 아나운서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었다면 15년차 이상 40대쯤 되어야 넘볼 수 있는 자리를 여성 아나운서들은 3년차 안에 다 꿰찬다는 말이다.

MBC에서 처음으로 기자 출신인 김은혜를 메인앵커로 기용했을 때, 내부에서 기자들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들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나운서 출신인 김주하로 교체되었으나 지금 상황에서 보면 기자 출신이냐 아나운서 출신이냐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SBS에서 기자 출신 곽상은 앵커를 기용했다고 해서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기자 출신을 앉혀놔도, 남성 앵커와 같이 차장이나 부장급이 아니라 3년차 이하의 햇병아리를 앉힌다면 여기자들의 미래는 여전히 강탈당한 셈이다. 40대 초반의 차장급 기자가 되어 이제 뉴스생산의 메커니즘을 익히게 되는 그 시점에서 자신보다 훨씬 어린 신입이 메인앵커를 맡게 된다면 오히려 더 허탈하지 않을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나운서가 하는 게 더 낫다. 젊은 여기자들이 뉴스 앵커가 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기자직을 뽑을 때도 아나운서만큼의 외모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방송사 여기자들이 이 문제에 관해서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또한 여성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 문제가 미스코리아 대회 철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미스코리아 대회야 일 년에 한 번 있는 행사인 반면, 방송뉴스의 성차별적 이미지는 일 년 365일 방송 3사에서 매일 같이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여성개발원에서는 방송뉴스의 남성 앵커와 여성 앵커의 역할 분담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남성 앵커의 시간비중이 여성 앵커의 두 배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고 앵커의 성에 따라 배당되는 취재기자 수에도 큰 차이가 나타났는데, 여성 앵커에게 평균 4.80명의 취재기자가 배당되는데 비해 남성앵커에게는 15.50명이 배당되어 여성 앵커보다 세 배 정도의 취재기자를 더 배당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 앵커가 담당하는 평균 뉴스 12.1개 중 9.8개가 주변 뉴스이고 중심 뉴스는 2.3개인데 비해 남성 앵커가 담당하는 평균 뉴스아이템 19.10개 중 13.3개가 중심 뉴스이고, 5.8개 정도가 주변 뉴스로 나타나 정반대의 경향을 보였다.(한국여성개발원, {대중매체의 여성차별지표개발}(한학문화사, 1996), 34∼35쪽 요약)

이미 남녀 앵커는 동등한 남녀관계가 아니라 명백한 성차별적 구조 속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있고 있다. 남자는 사회의 주도적인 담론을 생산하고, 여자는 이를 보조하는 현모양처형 지식만 있으면 된다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입시키고 있는 셈이다. 매일 같이 중년 아저씨를 젊은 아가씨가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뭘 배우겠느냐 이 말이다.

1998도부터 2002년도까지 여성 앵커 백지연, 황현정, 그리고 김은혜 등은 항상 닮고 싶은 여성 1위 자리를 놓고 다퉜다. 왜 닮고 싶은 남성을 고르라면 주로 이건희, 김대중, 김영삼 등 경제인이나 정치인이 뽑히는데 여성들은 기껏해야 대본이나 읽어주는 여성 앵커에 자신의 꿈을 걸고 있는가?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현모양처라는 시각적 이미지, 이것과 관계가 없을 것 같은가?

놀랍게도 제1회 안티미스코리아 대회의 사회자는 백지연이었다. 과연 백지연을 안티미스코리아 대회에 초청한 그 의도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젊은 여성을 외모 하나로 판단하여 올리고 내리는 방송구조에서 살아남은 꽃이 안티미스코리아 정신에 무엇이 어울린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백지연 개인이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백지연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왜곡된 아나운서와 앵커 시장에 대해 비판이나 성찰을 한 적이 없다. "나는 실력으로 성공했는데 외모로만 판단해서 억울하다"는 식의 말만 반복하고 있다.

차라리 여성단체가 미스코리아 행사장에 가서 반대 시위를 했듯이 방송사 앞에서 젊은 여성의 앵커 기용을 반대하는 시위를 해보면 어떨까? 아마도 백지연은 안티미스코리아 행사에는 참여해도 그 시위에는 절대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백지연에게 묻고 싶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와 여성 앵커 선발대회가 뭐가 다른지. 여성 앵커들은 미모뿐 아니라 지성도 겸비했다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공식 캐치프레이즈도 '미모와 지성의 경연장'이라는 걸 알아두기 바란다.

KBS 정연주 사장에 거는 기대

여성 앵커 문제를 외모 문제로 접근해서는 답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백지연식으로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성공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이를 반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천적인 차원에서라면 보다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여기자들이 나서야 한다. 외모 문제로 접근하면 '콤플렉스' 어쩌니 하는 말이 나오니 여기자들의 권익 차원에서 분명하게 자기 주장을 하라. 왜 40대 여기자는 메인앵커가 될 수 없는지, 남녀차별금지법에 근거하여 방송사에 압력을 넣어라.

반면 여성단체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도 될 듯하다. 북유럽 국가들 가운데에는 텔레비전 뉴스 앵커로 미남미녀는 절대 기용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방송사들이 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못생긴 사람을 선호한다고 한다. 못생긴 사람들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전국민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왜 이런 운동을 우리 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걸까?

생긴 걸로 기쁨을 줄 수도 있는 연예인의 경우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러나 머리로 승부해야 하는 뉴스 앵커를 왜 외모로 뽑느냐 말이다. 방송사에서 못생긴 여자는 못생겨서 앵커에서 배제 당하고 있다면, 여성단체에서는 예쁜 여자는 예뻐서 안 된다고 당당히 항의하면 안 되는 걸까? 다른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한다니까 권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방송사 사장들의 결단이다. 특히 개혁적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취임한 정연주 KBS 사장은 심각하게 이 문제를 고민해주기 바란다. 방송사에서는 아마도 시청률 때문에 젊고 예쁜 여성을 앵커로 기용했다는 변명을 하고 싶을 것이다. 정연주 사장도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정연주 사장도 지금껏 예쁜 여성 앵커가 있는 곳으로 채널을 고정시켰느냐는 말이다. 정연주 사장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답을 한다면 다른 국민들도 정연주 사장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주기 바란다.

뉴스의 시청률은 뉴스 방송 직전의 드라마 시청률, 방송사의 이미지, 기존 시청자들의 습성 등 수많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여성 앵커의 미모가 시청률에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요소는 아닐 것이다. 한국의 방송에서 예쁜 여자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데 구태여 뉴스에서까지 미인을 찾겠는가?

광고기획사에서 광고를 제작할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은 광고를 보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아니다. 오직 광고제작을 의뢰한 광고주들의 입맛에 맞추려 노력한다. 예를 들면,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의 대선 광고의 수준이 형편없었던 이유는, 한나라당의 구태의연한 노인 정치인들의 취향에 맞춰서 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뉴스에서의 성차별적 인적 구성도 그와 똑같을 거라 추측한다.

남녀평등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시청자라면 40대 유부남과 20대 아가씨가 함께 진행하는 뉴스를 볼 때마다 매우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40대 유부녀와 20대 청년이 진행하는 뉴스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그나마 '나이 차를 넘어선 아름다운 관계', 이렇게라도 이해할 수 있겠으나 항상 늙은 남자, 젊은 여자만 반복되니 이젠 불편함을 넘어서 역겨울 정도이다. 나는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저러니 원조교제가 범람하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수십 년간 이런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는 변명할 여지도 없이 방송사 고위 간부층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 볼 수밖에 없다. 출세한 한국의 중년 남성들의 특성상 수십 년 간 젊은 호스티스가 나오는 술집을 밥먹듯이 드나들지 않았겠는가? 늘 자기들 맏딸 정도 되는 아가씨들과 어울려 술을 먹다 보니 중년 남자와 어린 아가씨가 브라운관에 함께 나오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이런 인간들이 여성 앵커를 선택하니 이 구조가 안 바뀌는 것이다. 지금의 방송뉴스도 방송사 고위간부들을 위해 제작되는 것이지 시청자들을 위해서 제작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간단하다. 궁극적으로는 외모로 앵커를 택할 수 없을 정도로 뉴스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그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제도를 도입해서라도 여성 앵커도 남성 앵커와 똑같이 경력 많고 연륜 많은 여기자 출신들이 맡도록 해야 한다. 이를 거부한다면 이는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안에서 정의한 남녀차별에 해당되며,

'남녀차별'이라 함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자유를 인식·향유하거나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을 이유로 행하여지는 모든 구별·배제 또는 제한을 말한다.  

그로 인해 특정 성에게만 나이와 외모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승진에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한 제2장 3조에 위배되어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둔다.

(고용에서의 차별금지) 공공기관 및 사용자는 고용분야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가 보장되도록 하여야 하며, 채용, 승진, 전보, 해고, 정년 등에 있어서 남녀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 본 기사는 월간 [인물과 사상] http://inmul.co.kr 6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게재된 본문에서는 백지연씨가 안티미스코리아 사회를 본 것으로 적었는데, 이는 미스코리아 대회 사회를 본 것을 필자가 혼동한 것입니다. 안티미스코리아 주최 측에 사과드립니다-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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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03 [14: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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