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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브랜드 일관성' 과 노무현
심심할 때 쓰는 이름쟁이 칼럼 2002년 5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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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일관성(Brand consistency) 라는 말이 있습니다.
브랜드는 '지조' 가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브랜드의 컨셉이나 전략전술에 잦은 변경을 일으키면 소비자들이 해당 브랜드에 대해 갖는 '이미지 형성' 에 혼선을 일으키고 '불신' 을 가져오므로 상품판매가 저조해지거나 어떠한 변화가 오더라도 '하위전술' 을 수정 할지언정 큰 줄기는 가급적이면 건드리지 말고 우직하게 밀고나가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지조' 가 중요하듯이 브랜드 또한 '지조' 를 지키는 것이 대단히 힘들고 '지조때로' 변하는 브랜드가 많은만큼 대다수의 브랜드가 실패하기에 '브랜드 일관성' 이라는 말이 나왔을 겁니다.
브랜드가 잘팔리다 갑자기 안팔리거나 위기가 닥치면 뭔가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초조함에 브랜드 전략을 급히 변경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제자리를 지키라는 것이 '브랜드 일관성' 입니다. 이것은 브랜드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에 갑자기 닥친 어떠한 이상함에 놀란 나머지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경거망동이 가져온 '브랜드 이미지' 의 훼손을 다시 복구시키려면 다시 한 번 '변절' 을 해야 하는 만큼 그럴수록 가만히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죠.
생각해 보세요. 브랜드 컨셉이 자주 바뀐 브랜드치고 오래 히트친 브랜드가 있는지.
반면 장수브랜드의 특징은 처음 브랜드가 출시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브랜드 컨셉이 변함이 없습니다. '새우깡' 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손이가요 손이가..새우깡에 손이가요.. 아이손.. 어른손.. 자꾸만 손이가.. 언제든지 즐겨요.....!! 농심 새우깡!' 입니다.
해태부라보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짜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콘!' 입니다.
해방이후부터 지금까지 코카콜라같은 다국적 브랜드를 제외한 순수 국산 브랜드로 '장수브랜드' 의 대열에 올라있는 브랜드는 제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개가 안됩니다. 정확히 따지면 아마 10개도 안될 겁니다. 어쨌든 다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장수브랜드가 되지 못했지만 히트브랜드가 되지 못한 대다수를 제외해도 시장에서 히트친 히트브랜드를 합치면 그 수가 적지 않을 텐데도 '장수브랜드' 가 20개가 안된다는 것은 히트브랜드의 대부분이 '브랜드 일관성' 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장 상황이 조금만 변해도 '지조'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지조때로' 로 변화를 추구했던 것이죠.
'브랜드 일관성' 이 중요한 것으로 유명사례를 든다면 필립모리스의 '말보로' 담배를 들 수가 있습니다.
'말보로' 하면 말을 탄 서부의 카우보이가 연상될 정도로 '카우보이' 와 '말보로'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사이인데, 어느 날 필립모리스 사장이 그 '카우보이'를 말보로에서 없애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싶어했답니다.
왜?
그냥요.. 몇십년간 카우보이만 나오는 말보로 광고가 지겨워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자고 마케팅 담당자에게 주문했데요. 그런데 마케팅 담당자가 개조까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데요. 브랜드 이미지를 하나 만들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세월과 비용이 필요한데 심심하다고 바꾸자니? 니가 말보로를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이 씨발놈아.. 니가 사장이냐? 이 개새꺄!
한 칼 먹은 사장이 쪽팔려서 아무 말도 못했데요.
그런데 그 사장이 심심하면 광고를 바꾸자고 졸랐데요.. 그 담당자 왈 '이 니미 씨발놈, 다시는 광고를 못보게 칵 눈깔을 뽑아버릴라!'
결국 그 사장은 뜻을 못이루고 물러나고 다른 사장으로 바뀌고 또 바뀌기를 몇 차례... 새로 오는 신임 사장들마다 카우보이가 너무 지겹다고 바꾸자고 압력을 넣었데요.. 그 마케팅 담당자 왈.
'카우보이보다 니네들의 그 소리가 더 지겨워.. 브랜드는 일관성이 있어야 해. 내가 퇴사하는 날까지 입닥치고 출근해서 조용히 딸딸이나 치다 퇴근해!'
결국 그 마케팅 담당자의 노력으로 '말보로' 는 세계적인 담배로 자리잡았고 그 위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훗날 누군가 그 마케팅 담당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당신이 마케팅 담당자로서 필립모리스에서 한 일이 뭔가요?'
퇴직한 마케팅 담당자 왈,
'아무 일도 안했어요. 단지 사장들이 광고에서 카우보이를 빼고 다른 것으로 바꾸자고 할 때마다 한 칼씩 먹이는 것이 저의 일이었지요.'
'브랜드 일관성' 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끊임없이 새로운 마케팅을 선보이고자 하는 요구를 물리치는 바로 그것이 '마케팅' 이라는 단적인 예가 위의 '말보로' 입니다.
어제 노무현 후보가 'DJ정부는 권위적이었지만 노무현정부는 민주적인 정부가 될 것' 이라며, 김대중정부와 '차별화' 를 약간 선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물론 그것은 지방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현 상황에서 자신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의 '부패' 와 맞물려 떨어지는 '초초함' 때문에 버티다 버티다 나온 발언이라 봅니다.
그러나 저는 노후보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이 민주당내에서 또는 정부내에서 권위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김대중정부가 '권위적' 이라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소수정권으로서 약체정부의 모습을 지난 4년간 지겹고 짜증나도록 봐왔지 권위적이라고 느껴보질 못했습니다.
위의 것은 그냥 제 생각이고 아무튼, '브랜드 차별화' 하기는 '브랜드 일관성' 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입니다. 물론 그 댓가는 대부분이 쓰디 씁니다.
노후보가 김대통령과의 '브랜드 차별화' 로 위험수위를 넘는 순간, 노후보가 어렵게 지금까지 지켜온 '브랜드 이미지' 는 하루아침에 한나라당에 의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노무현=DJ' 라고 공격해대던 한나라당이 그 순간 '김대중을 배신한 노무현' 이라고 칼질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원칙과 소신을 강조하던 노후보의 브랜드 이미지도 덤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브랜드 차별화' 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노후보의 모든 브랜드 이미지는 아주 쉽게 마구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문에 일이 잘 안풀리고 '욕'을 먹더라도 '브랜드 차별화' 로 망가지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지방선거에 대한 부담, 부산시장을 꼭 당선시켜야만 한다는 부담 때문에 너무 초조해 하거나 김대중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예민해 할 필요 없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평가' 와 '심판' 적 성격이므로 지방선거에서 안좋은 성적이 나와도 김대중 정권이 책임질 일이지 노후보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닙니다.
지방선거에서 특히 부산시장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지 못하더라도 '브랜드 일관성' 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브랜드 차별화' 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김대통령과 한몸이라는 한나라당의 공격에 대해서 노후보가 해야 할 일은,
'아무 일도 안했어요. 단지 사장들이 광고에서 카우보이를 빼고 다른 것으로 바꾸자고 할 때마다 한 칼씩 먹이는 것이 저의 일이었지요.'
라는 말보로 마케팅 담당자의 말을 재이 재삼 상기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