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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과 진영, 항명의 추억
[정문순 칼럼] 박정희와 박근혜, 측근만 기용하는 정치의 배신
 
정문순   기사입력  2013/10/05 [17:53]
박정희 정권이 유신통치에 돌입하기까지는 1년 전인 1971년이 고비였다. 집권 18년 동안 당내에서 전무후무한 항명 파동이 일어난 해가 이때였다. 지금처럼 무기력하지만은 않았던 야당 신민당(민주당의 전신)이 장관 3명에 대한 해임안을 제출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들 중 오치성 내무장관의 해임안은 덜컥 통과되고 말았는데, 머릿수로 보아 집권당 공화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격노한 박정희는 주동자 색출에 나섰다. 10.2항명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김성곤, 백남억, 길재호, 김진만 등 공화당 당권파 네 명이 손을 쓴 일이었다. 이들이 해임에 동조한 것은 다름 아닌 박정희 때문이었다.

자신은 권력을 독점해도 측근이 자기 따라 하는 꼴은 못 보는 게 권력자의 속성인지라, 박정희는 제 손으로 키워놓은 공화당 실세들의 몸집이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측근 오치성을 장관에 임명하며 견제 카드로 내밀었는데, 당권파들의 견제를 받은 것이다.

쌍용그룹 창업자이기도 한 김성곤 의원은 공화당 재정부장으로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뽑아내면서 박정희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했지만, 주군에게 항명하는 순간 정치 생명은 종을 쳐야 했다. 박정희는 중앙정보부를 시켜 실세 4인을 비롯하여 해임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여 잡아다 반죽음이 되도록 만들었다.

김성곤 의원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카이저 수염까지 뽑히는 고문을 당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정치를 접는 건 고사하고 목숨 부지하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아들에게 죽어도 정치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나 어쨌다나.

권위주의 체제에서 내부 반발이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10.2항명 사태는 비록 파국으로 끝났을망정 자신을 제왕쯤으로 아는 통치자가 제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도전받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42년 전의 항명 사태와 비슷한 일을 오늘날 목도하는 것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가. 장관직 사퇴 의사를 끝내 번복하지 않은 진영 전 장관을 통해, 이 정부에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제외하고 허수아비 아니면 바지저고리만 있는 줄 알았더니 입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진 전 장관이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일을 따를 수 없다고 할 때의 그 당당함을, 진주의료원 사태 당시에는 왜 발휘하지 못했는지 아쉽기는 하다. 홍준표 지사가 진주의료원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칼을 뺄 듯 말 듯 하다 무기력하게 집어넣음으로써 보건 정책의 수장이라는 위상이 무색하던 때를 생각하면, 기초연금 공약 파기를 둘러싼 그의 소신 행보는 눈을 비비게 한다. 진 전 장관은 자신의 사임이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그의 뜻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가 소신 있는 사람으로 비칠수록, 물러나겠다는 사람을 말렸던 박 대통령의 체면과 위신은 깎이고 있다.

채동욱 전 총장을 물러나게 하는 데서 보듯 아버지로부터 감히 자신의 발끝이라도 침범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 법을 학습했던 박 대통령은 난감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일에서 무슨 교훈을 얻고 있을까. 항명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 자신의 표리부동한 처신을 반성할까. 스스로 생각해도 기초연금 공약을 뒤집은 건 너무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찍 소리 못하게끔 아랫것들을 더 잡아야겠다고 생각할까.

물론 박 대통령이, 제 말을 듣지 않으면 국민의 대표자도 잡아다 고문했던 아버지의 행적을 따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의 경우에서 보듯 물리적인 폭력까지는 안가더라도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손봐주겠다는 유혹에는 빠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당, 정, 청을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누수를 막을 수는 없는 듯하다.

박 대통령이 측근 출신 장관의 행보로부터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 메시지를 얻는 일은 없어야 한다. 측근의 항명을 완전하게 제압한 그의 아버지는 종신 집권을 실현하는 듯했지만 결국 가장 큰 항명 사태를 막지 못했다. 철통 권력자가 가장 아끼던 심복은 또다른 충복과 총애를 다투다 ‘유신의 심장’에 총구를 향했다.

* 본문은 10월 2일 경남도민일보 게재된 칼럼을 손봄.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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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0/05 [17:5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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