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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에도 품격이 있다
[정문순 칼럼] 기성용 발언과 국정원, 논쟁꺼리도 안되는 폭로의 추악함
 
정문순   기사입력  2013/08/25 [17:36]

페이스북이라는 것을 만들어만 놓았지 몇 년 째 그냥 놀리고 있다. 나로서는 사적인 정보를 알릴 때 오글거리는 느낌을 이길 수 없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에서 페이스북은 SNS 이름에 걸맞지 않게 친목 기능이 커 보인다. 이 공간에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즐겨 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점심 때 뭘 먹었는지, 하늘 표정이 맑은지 흐린지도 쓸 수 있는 사람은 사진 한 장 바꿔도 ‘친구’들에게 실시간으로 연락이 가는 통에 손대기를 망설이는 나같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페이스북은 유전자 염기서열 번호를 제외하고 개인 정보를 서슴없이 까놓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인 듯하다.

그렇게 쏟아낸 정보의 바다에서 건질 만한 것이 몇 개나 될까. 지금 이 순간은 세상 전부인 것 같지만 하루만 자고나면 기억조차 안 나는 것들이 태반이다.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들 중에는 순간의 흥분을 못 견뎌 누군가를 흉보고 조롱한 것도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내 의미 없는 행동을 누군가는 가치 있는 정보라고 주장하며 들추어내고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하자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축구 정보에 까막눈인 내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성용은 야구선수가 아닌 건 확실하고 축구선수쯤으로 짐작되는 존재였다. 페이스북 폭로 사건은 기성용이 공 차는 선수가 분명함을 가르쳐준 것이 내게 정보다. 기성용이 자신의 페이스북 비밀계정에서 전 국가대표 감독을 원색적으로 비꼬는 발언을 내뱉었는데, 어떤 스포츠 칼럼니스트가 들추면서 새나갔다. 폭로자는 국가대표 자질이 형편없는 선수를 알리기 위해서 깠다고 했고 수긍하는 여론도 강한 것 같다. 해외에도 선수와 감독 간의 불협화음이 심심찮게 터지지만, 우리나라처럼 선수가 일방적으로 몰매 맞는 경우도 있을까 싶다. <!--[endif]--> 

사람은 한 꺼풀만 벗기면 누구나 다 똑같다는 생각은 이 과정에서 실종됐다. 사적인 공간에서 기분대로 뱉은 발언은 시간이 지나면 발언자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는 사실도 무시됐다. 기성용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건 글을 쓸 무렵 그가 전 대표감독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은 한 선수의 됨됨이가 막장이라는 증거로 치부했다.  <!--[endif]--> 

폭로가 유행하는 세상인지라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가기관도 음지에서 잠자고 있던 정보를 양지에 끌어내 햇볕 아래 내놓는 데 거침이 없다. 그래서 무얼 밝혀냈나. 물론 전혀 없지는 않다. 임기 4개월 남은 대통령의 겁 모르는 소신과 자신감을 확인했다. 군사지도 위에 평화지도를 그리고 싶었던 그의 소망도 확인했다. <!--[endif]--> 

남이 흘린 피에 둔감한 군 면제자 출신 대통령은 NNL이 젊은이들이 피로써 지켜낸 곳이라고 말했지만, 젊은이들이 더는 피를 흘리면 안된다고 생각한 상병 출신 대통령은 무력 충돌을 넘어선 남북 평화를 구상했다는 차이도 새삼 확인했다. 정상회담 회의록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화 구상을 확인하는 교재로 쓰면 모를까, 노 전 대통령의 NNL 포기 발언이 담겼다고 거짓말한 국정원의 폭로는 내용 없는 폭로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확인해 줄 뿐이다.  

기성용 페이스북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폭로는 모두 불법성이 짙다. 당사자가 허용하지 않은 사적인 정보를 무단으로 들추어내거나, 30년은 봉인되어야 할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위반한 것은 범죄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처럼 실정법 위반 혐의를 무릅쓰고 공익을 택한 것도 아니면서 두 가지 폭로 당사자들은 모두 공익을 변명으로 내세운다. 오지랖이 광대무변해서 개인정보를 보호할 줄 모르고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심판하거나 ‘을이 ‘갑’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걸 허용치 않는 사회든, 정보기관을 동원한 대선 개입이 드러나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는 걸 두려워한 정권과 법을 어기는 버릇이 몸에 배어 불법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정보기관이 합작으로 자행한 폭로든, 추악한 악취를 풍기는 건 마찬가지다. 스노든의 폭로는 미국 국익을 저해했는지 여부로 자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한국의 두 가지 폭로는 논쟁거리조차 못되는 저질스러운 것들이다.     


* 본문은 <경남도민일보> 게재 칼럼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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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8/25 [17: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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