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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정연복   기사입력  2008/06/16 [19:33]
1. 섭리론
 
언뜻 보면 역사가 우연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어느 사회의 역사도 결코 우연하게 흐르는 법은 없다. 도도하게 흐르는 한 줄기 역사의 흐름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이 점철되어 있다.
 
섭리라는 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걸 역사적 필연이라고 부르고, 역사가는 수많은 우연이 모여 역사적 필연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겠지만, 신앙인은 그걸 수많은 작은 섭리가 모여 큰 섭리가 이루어진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구름 타고 나팔 불며 오는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승리와 영광, 역사의 궁극적 완성과 성취를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매우 빈약하다. 그래서 그분의 미래 활동을 확실히 모른다. 그러나 그분의 과거 활동을 살펴보면 그분의 미래의 활동 방향과 내용을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섭리로 여겨지는 역사 사건에 동참하는 것이 신앙이다.
 
하나님의 뜻은 운명론이 아니다. 자기 팔자를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고 자기 개선이나 현실구조 개혁의 행동을 게을리 하는 신앙, 현실의 구조적 모순으로 말미암은 고통의 원인을 종교적인 것에 돌리는 신앙은 운명론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의 뜻은 책임 회피의 구실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역사의 부름과 요청에 응답하는 인간의 순종에서 비로소 이 땅 위에 드러나고 실현된다. 
 
2. 은총론
 
죄가 분리와 차별과 고독과 소외를 의미한다면, 은총은 생명을 꽃피우는 삶으로의 복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은총은 심판 앞에서의 책임 면제 그 이상이다. 은총의 진정한 의미는 일상 언어인 ‘행복’이라는 말로 가장 간단히 표현될 수 있다.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삶의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이든 공로 없이 받은 선물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참된 은총은 변화시키는 은총이다. 의인(義認)을 성화(聖化)와 분리시키는 것은 값싼 은총이다. 성화의 여러 표상들은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을 단순히 수혜자로 비하시키는 게 아님을 명백히 한다. 오랜 신학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구원과 참여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었다. 인간 구원에서 인간의 협력은 불가결하다. 인간의 참여를 거절하는 하나님은 독재자 하나님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은 세상에서의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고무시킨다.
 
은총의 교리는 '어떻게 인간이 죄의 절망과 공허에서 벗어나 새 삶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의 해방하시는 은총은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은총을 주관화하여 죄의 용서를 통한 마음의 변화로 설명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통주의의 속죄, 자유주의의 화해에 대해 해방신학에서는 해방이 곧 은총이다. 그런데 해방은 늘 압제와 연관되므로 압제자를 규명하지 않고는 해방이 불가능하다. 억압의 구조를 누가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에 죄 곧 악마적 특성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죄의 절망을 믿을수록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전통 개신교는 인간에게는 선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인간학적 비관주의에 빠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 안에서 정의롭게 될 수 있다. 의인과 성화는 서로에게 속한다.
 
참된 믿음은 이 세계가 더 이상 착취와 부정의 장소이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새로운 삶, 새로운 세계를 위해 싸울 수 있다. 이런 회심을 바울은 은총이 우리와 함께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은총은 지배권력에 의존하는 절망에서 해방실천으로 우리를 옮겨 준다.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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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6/16 [19: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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