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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신앙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정연복   기사입력  2008/06/20 [10:26]
예수의 민중운동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중요하게 전해지는 것은 기적행위다. 특히 맨 처음에 씌어진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의 가르침보다 그의 행동으로서의 기적행위가 양적으로나 비중에 있어서 압도적 위치를 점한다.
 
기적 이야기에는 민중의 고난과 희망이 담겨 있다. 깊은 절망과 고독과 한계상황 속에 살아가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과 예수(운동)가 만나 기적이 일어난다. 이것은 예수의 기적이 비인간화의 극복을 통한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목표로 삼고 있음을 잘 말해 준다. 기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초월적 능력을 입증하려는 게 아니라 한결같이 민중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수는 자신의 이익이나 인기와 영합하는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기적을 일으키며 침묵을 당부한다. 예수는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운 심정이 들며 그들과 혼연일체가 된다. 질병은 치료될 수 없어도 고통은 어떻게든 치유될 수 있다는 게 예수의 치유기적의 중심 문제다.
 
예수는 질병에 따르는 제의적 불결과 사회적 배척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가련한 사람의 고통을 치유했다. 사회가 구축한 장벽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산산조각이 난다. 그래서 예수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온갖 차별이 사라진다. 예수의 힘은 버림받은 이들과의 일치에서, 그리고 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려 애쓰는 데서 드러난다.
 
예수는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예수가 일으키는 모든 기적과 치료는 치료자와 치료를 받는 자의 깊은 신앙에 기인한다. 그것은 속임수가 아니라 치료받는 자의 믿음에 근거한 자연법칙이다. 우리가 모르는 자연법칙과 정신법칙이 있다.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는 인간의 내면을 발견했고 영혼의 심층부까지 밝혔다. 그 시대의 병자들은 예수 주위에 몰려와 “자비를 베풀고 도와주소서”라고 외쳤다. 그러나 예수는 이에 대해 “이것은 전적으로 너 자신에게 달린 문제”라고 말한다. 예수는 영혼의 성스러운 힘을 이해했다. 그리고 이 힘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작용한다.
 
수많은 기적 이야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서로 일치한다. 예수가 행한 유일한 일은 “너는 건강을 원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는 매개자였을 뿐이다. 기적은 언제나 믿음을 회복함으로써 병자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초자연적이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다. 하나님의 생명 에너지는 온 우주와 모든 인간들 속에 흐른다. 불신 때문에 이런 생명 에너지가 차단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믿음으로 다시금 자유롭게 소통될 수도 있다. 기적은 우리의 이기적인 안일 무사와 사리사욕이 멈추는 곳에서 일어난다.
 
예수는 질병을 치료했다기보다는 고통을 치유했다. 기적이 초자연적 힘을 사용하여 자연세계의 정상적 운행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예수의 치유는 기적이 아니었다. 예수는 육체적 세계에 개입하여 질병을 치료했던 게 아니라,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제재해온 관습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치유했다.
 
버림받은 사람을 다시 사회적 관계 속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것이 바로 예수가 한 일이다. 기적은 육체적 세계에서의 변화라기보다는 사회적 세계에서의 변화다.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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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6/20 [10:2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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