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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신(神) 예수
[정연복의 민중신학] 나는 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가?
 
정연복   기사입력  2008/03/29 [02:23]
예수는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 속에 산다(마태 17:20). 이 믿음의 낙관주의는 활동을 동반한다. 믿음은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의 뜻에 바치는 매서운 결단이며, 이 결단은 생명사랑의 뜨거운 몸부림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이 생명의 하나님이듯 나도 하나님의 뜻을 이어 생명의 수호자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로 예수의 믿음이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예수는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다. 예수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낀다. 예수는 고통  받는 생명에 대해 깊은 연민의 정(情)을 느끼며, 이 고통의 연대에서 사랑의 기적이 발생한다. 예수의 힘은 연대하는 슬픔의 힘이며, 예수의 권능은 자비의 권능이다.
 
예수는 중립을 모른다. 예수는 늘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 편에 선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약자를 구원(해방)시킬 수 있다고 거만을 떨지 않는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마태 9:22). 예수는 약자와 일심동체가 되어(마태 25:31-46) 그들의 잊혀진 인간적 존엄성을 일깨운다. 
 
예수는 전통과 권위에 맞서 “나”를 선언하는 주체적 인간이다(마태 5:21-48). 예수는 사랑해야 할 것은 몸바쳐 사랑하지만 생명을 억압하는 것에는 온몸으로 저항한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누가 12:49).
 
예수는 고난의 길을 걷는 자유인이다. 예수는 성령 안에서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예수는 인습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다.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요한 3:8). 예수는 자신의 길이 결국 죽음으로 통하리라는 걸 직감하면서도 죽음보다 강한 그 무엇이 있다는 걸 또한 믿는다(마가 10:33-34). 
 
예수는 세속 한복판에서 거룩을 산다. 예수는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는 믿음 안에 살지만 이 믿음은 땅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표현된다. 예수는 세상을 등진 믿음, 세속을 외면한 거룩을 모른다(요한 17:15). 예수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의 밥(물질)의 정의로 구체화된다고 믿는다(누가 11:2-3). 
 
예수는 나와 너의 만남 속에서 “우리”라는 공동체를 창출한다(마태 6:9-13). 예수는 이기심에서 해방되어 “너”를 섬기는 삶, “너”를 위해 “나”를 아낌없이 내주는 삶, 사랑과 나눔과 섬김과 우애와 친교의 삶을 산다.
 
예수는 작은 것의 가치를 알기에 숫자의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예수는 길 잃은 양 한 마리, 이 세상에서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 하나에 관심을 집중한다(누가 15:1-7). 예수는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는 가난한 과부의 동전 한 닢을 더 소중히 여긴다(누가 21:1-4). 예수는 신앙인의 실존을 소금(마태 5:13), 밀가루 서 말 속의 누룩(마태 13:33), 낡은 가죽부대를 터뜨리는 새 포도주(마가 2:21-22), 즉 양은 얼마 안 되지만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감춰진 힘으로 생각한다. 
 
예수는 여린 듯 강하다. 예수는 비둘기처럼 온유하면서도 뱀의 지혜로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한다. 예수는 참된 자유는 남을 섬기고 사랑하는 자유라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 준다.
 
이 예수에게서 나는 신성에 도달한 인간성을 느낀다. 내가 따라 닮고 싶은 한 인간, 이 세상을 구원할 한 인간, 그래서 영원한 구원자요 하나님이라고 불러도 좋을 한 인간을 느낀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신(神) 예수!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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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3/29 [02: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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