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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성 소수자, 노회찬의 신선한 행보
[여름씨의 이런생각] 차별철폐는 진보의 핵심가치, 소수자들과 연대해야
 
여름씨   기사입력  2007/06/21 [02:10]
지난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서울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흔히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라 묶어 부르는 성적 소수자 30여명과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노 의원은 자신을 ‘삼반’이라 지칭했다. ‘이반’(동성애자)은 아니지만 ‘일반’(이성애자)의 배타적 주류문화에 비판적인, 그래서 ‘이반’을 존중하며 따라가려 애쓰는 이성애자라는 뜻이었다. 이 ‘삼반’이라는 말이 본디 있었는지 아니면 익히 알려진 노 의원의 기발한 작명술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성 소수자와 연대하는 성 다수자를 앞으로 ‘삼반’이라 불러도 좋겠다. 
 
▲탤런트 홍석천씨가 주인장인 이태원역 근처의 \'아워 플레이스\'에서 노회찬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와 일군의 성소수자들이 15일 저녁 유쾌한 만남을 가졌다.     © 노회찬 의원실

진보정당이 성 소수자와 연대하는 것은, 외국의 예에서도 보듯, 자연스럽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대한민국 기존 정당들 가운데 이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건넨 유일한 정당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 안에도 ‘붉은 이반’이라는 이름의 성 소수자 모임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이 정당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성 소수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 정책간담회까지 연 것은 눈길을 끌 만했다.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선 이문옥씨는 그즈음 한 인터뷰에서 동성애에 대해 설핏 불편한 심사를 드러낸 바 있다. 이문옥씨가 별난 당원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 게다. 사실 기층 민중을 주요 지지세력으로 삼는 정당이 성 소수자와의 연대를 공공연히 표방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이득이 되는지도 확실치 않다. 노동계급문화나 농민문화가 전통적 가치에, 곧 보수적 가치에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 소수자에 대한 이들의 편견이 완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가 문화적 소수자(주류사회로부터 소극적 이미지를 주입받는 집단)와 사회적 소수자(양적 소수집단)를 겸한 이중 소수자라는 점도 이들과의 연대를 여느 정치인들에게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모든 문화적 소수자가 사회적 소수자인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이나 여성은 문화적 소수자집단이긴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집단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이 계급적 성적 범주는 중간계급 이상의 남성으로 이뤄진 주류 사회로부터 소극적 이미지를 주입받고 있긴 있지만, 수적으로 열세는 아니다. 그래서 어떤 정치세력이 노동계급이나 여성의 벗으로 여겨지는 것은 선거에 도움이 된다.
 
▲노회찬 의원과 탤런트 홍석천 씨가 서로에 대해 묻고 맞추는 퀴즈를 하면서 유쾌한 시간을 나누고 있다.     © 노회찬 의원실
반면에 성 소수자라는 범주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나 혼혈인이나 귀화인이나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문화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소수자집단이다. 그들은 주류사회로부터 소극적 이미지를 주입받고 있으면서 그 수(數)도 선거에 영향을 끼칠 만큼은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정치세력이 이런 이중 소수자집단의 친구로 여겨지는 것은, 이 연대와 우애에 윤리적으로 공감하는 박애주의자들의 지지를 간접적으로 이끌어낼 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선거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이 이중 소수자집단을 백안시하는 보수적 문화에 노동계급과 농민이 계속 휘둘리는 한, 진보정당의 두드러진 소수자 연대는 오히려 지지층의 부분적 이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분석과 전망도 있을 수 있겠다. 외국의 좌파 정당이 흔히 그렇듯, 민주노동당 지지층도 사회경제적 약자들만이 아니라 문화적 감수성이나 지향하는 가치가 진보적인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 제가 속한 계급과 무관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이념에 따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이런 사람들에겐, 성 소수자 등의 이중 소수자집단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연대가 호소력을 발휘할 것이다.
 
나는 위에서 이중 소수자와의 연대를 두고 표에 도움이 되느니 안 되느니를 따졌다. 이것은 얼마나 역겨운 산수인가. 진보정당 지지자를 자임하는 이라면, 진보정치인이라면, 표를 헤아리기에 앞서 소수자들과 무조건 연대해야 할 테다. 차별 철폐야말로 진보의 핵심 가치이니 말이다. 노회찬 의원의 이번 이니셔티브에 박수를 보낸다.

* 필자 '여름씨'는 전 한국일보 고종석 논설위원의 필명입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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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6/21 [02: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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