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시사저널> 사태와 한국 언론의 집단 침묵
[여름씨의 이런생각] 자본의 자기확장 욕망에 가리워진 언론의 외면
 
여름씨   기사입력  2007/03/15 [11:50]
파업 70일째, 직장폐쇄 52일째, 사태의 발단이 된 발행인의 기사 무단삭제로부터는 10개월째다. 기자 없이 석 달째 잡지가 나오고 있는 시사저널 사태 말이다. 직장폐쇄로 길바닥에 내몰린 기자들이 '시사저널 거리 편집국'(http://blog.daum.net/streetsisajournal)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거리의 기자 노릇을 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한국 저널리즘 초유의 이 사태가 그러나 평균적 한국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른 언론매체가, 특히 종이신문 대부분이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사 모두가 뉴스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세밑의 언론이 상투적으로 늘어놓는 언설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늘 '다사다난'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사태가 이를테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협상보다 더 뉴스 가치가 높을 수는 없다. 한미 FTA 협상 추이나 올해 대통령 선거 전망에 견주어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연예인의 음주운전이나 오늘의 운세보다도 뉴스가치가 더 낮은가? 설령 상대적 뉴스가치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매일 수십 면씩 쏟아져 나오는 신문 한 귀퉁이에도 오를 수 없을 만큼 절대적 뉴스가치가 낮은가?

▲ 시민단체가 짝퉁 <시사저널> 취재거부를 선언하고 있다.    © 대자보 김한솔

편집권 행사자들이 그렇게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시사저널 사태가 뉴스로 다뤄지지 않는 이유로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둘이다. 첫째는 편집권 행사자가 사사로운 고려 없이 오직 뉴스가치의 관점에서 이 사태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에, 이런 판단을 내린 편집권 행사자의 세계관이 별나기는 하나, 이 결정을 윤리적으로 심문할 수는 없겠다. 둘째는, 편집권 행사자가 이 사태의 뉴스가치는 내심 인정하고 있지만, 넓은 의미의 정치적 고려에 따라 뉴스로 다루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편집권 행사자의 그 정치적 고려는 여러 겹일 테다. 시사저널을 경쟁지로 여기는 매체라면 이 잡지가 망가지기 바라는 마음에서 모른 체할 수도 있겠고, 시사저널의 그간 논조가 마땅찮아 모른 체할 수도 있겠고, 결과적으로 노조에 유리할 이 사태의 공론화를 거드는 것이 자기 신문사 노조의 편집권 공유 요구를 촉발할까 염려돼 모른 체할 수도 있겠고,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그럼직하게, 사태의 발단이 된 삭제기사가 비판적으로 다룬 재벌기업과의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다시 말해 한국 최대의 기업집단으로부터 광고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을까봐) 모른 체할 수도 있겠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든, 어떤 정치적 고려에 의해 시사저널 사태를 모른 체하고 있는 편집권 행사자가 있다면, 그는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요구하는 윤리적 심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시사저널 사태를 신문 지면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금의 사태에서 유추한 이 두 가능성은, 시사저널 사태의 발단이 된 기사 삭제 배경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시사저널  발행인은 편집국장 몰래 재벌회사 관련 기사를 인쇄 직전 삭제해 오늘의 사태를 초래했다. 그 과정의 적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자. 발행인이 그 기사를 삭제한 이유로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둘이다. 첫째는, 그 자신이 주장하듯, 그 기사가 뉴스로서 가치가 없었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노조에 소속된 기자들이 주장하듯, 그가 뉴스가치 바깥의 정치적 고려를 했을 가능성이다.
 
첫 번째 경우라면, 시사저널 사태는 편집권의 귀속과 그 행사방식 문제(즉 발행인이 편집국장의 동의 없이 기사를 삭제한 과정이 적절했느냐는 기술적 문제)로 좁혀질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라면, 그것은 직업윤리와 기업의 생존논리, 노동과 자본의 기형적 비대칭, 시장지배와 경제력 행사의 사회적 한계 등 독립변수가 여럿인 다변수함수가 된다. 그 여럿의 독립변수 가운데 맨 먼저 써넣어야 할 것은 자본의 자기확장 욕망일 테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동업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외롭게 수행하는 싸움이 이토록 길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 사태의 본질이 두 번째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 필자 '여름씨'는 전 한국일보 고종석 논설위원의 필명입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7/03/15 [11:5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안재환 2007/04/03 [14:12] 수정 | 삭제
  • 경제적으로 손해득실을 따지기 보다는 어떤 선택이 국민을 위한 길인지
    생각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