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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분토론 300회, 30,000분 토론을 축하하며
[여름씨의 이런생각] '얼음왕자' 손석희는 특급사회자, 문명화 이바지 커
 
여름씨   기사입력  2006/09/15 [00:55]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만을 놓고 본다면, 나는 공중파 방송사 가운데 MBC에 끌리는 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서도 그렇고, 프로그램의 맵시에서도 그렇다. 물론 세계관이나 스타일에서 한 방송사가 한 신문사만큼 내적 동질성을 보이는 것 같진 않다. 그것은 방송사의 덩치가 신문사보다 사뭇 크다는 사실과 관련 있을 테다. 또 대개가 민영인 신문사들에 견주어, 공영 방송사나 준(準)공영 방송사에서는 구성원들의 통제가 더 느슨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과도 관련 있을 테다.
 
그렇지만 민영인 SBS의 경우에도,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세계관과 스타일이 한 신문의 기사들만큼 획일적이진 않은 것 같진 않다. 이를테면 이 방송사의 '그것이 알고 싶다'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같은 프로그램은, 평소의 보수적 입장을 속죄라도 하려는 듯 소수자의 처지에 눈길을 건네며 설핏 진보적 감성을 내비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내 감수성은 MBC 프로그램들에 친화적이다. 그렇게 마음을 주고 나서 생긴 편견 탓이기 쉽겠지만, KBS에서 내보내는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MBC 쪽이 더 본때 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추적60분'보다 'PD수첩'에, '취재파일 4321'보다 '시사매거진 2580'에 더 마음이 끌린다. '심야토론'과 '백분토론'을 견주어도 그렇다.
 
'백분토론'이 지난주에 300회를 맞았다. 그 가운데 200회를 지금 사회자인 손석희씨가 진행했다고 한다. 역사는 KBS의 '심야토론' 쪽이 더 길지만, 내겐 토론 프로그램 하면 대뜸 '백분토론'이 떠오른다. 내가 전문 모니터가 아니라 평범한 시청자이다 보니, 아무래도 진행자의 태(態)에 휩쓸렸는지도 모르겠다. 돌아간 경제학자 정운영씨나 지금 복지행정을 이끌고 있는 유시민씨도 제 나름의 개성을 지니고 이 프로그램을 무난히 이끌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두드러진 매력을 부여한 이는 손석희씨가 아닌가 싶다. 지난주 토론을 보니 그는 '얼음왕자'라는 별명을 지닌 모양인데, 그것을 그의 진지함과 공정성에 대한 찬사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토론의 흐름이 곁길로 새지 않도록 적절히 제어하면서도 패널이나 시청자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춘다는 점에서, 그는 특급 사회자다.
 
지난 주 '백분토론'의 주제는 'TV토론을 토론한다'였다. 이 프로그램에 가장 많이 출연했다는 정치인을 포함해 패널 다섯 사람이 나와 토론을 토론했다. 새겨들을 말이 많았다. 소수자들에게 말할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은 민주주의의 바탕이라는 것, 토론은 근본적으로 싸움이고 싸움에서 이기려 애쓰는 것은 당연하나 그 승패를 판정하는 것은 시청자 곧 대중 일반이라는 것, 그래서 토론자가 설득해야 할 대상은 반대토론자가 아니라 시청자라는 것, 어떤 토론도 그 현장에서 결론이 나는 일은 없지만 그 토론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제가끔 자신의 결론을 얻게 된다는 것.
 
토론자들도 지적했듯, '백분토론'의 주제 가운데 정치 분야가 압도적으로 많게 된 것은 정치가 한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가장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어떤 쟁점이 겉보기에 경제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그것은 근본적으로 정치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무릇 갈등은 권력이나 사랑까지를 포함한 유무형의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놓고 생겨나게 마련이고, 그 분배의 기술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문명화의 한 측면은 칼싸움이나 총싸움으로 해결하던 갈등을 말로 해결하게 되었다는 점일 테다. 물론 우리는 21세기 들어서도 무시무시한 규모의 폭력을 통한 갈등 해소 시도를 목격하고 있지만, 그것이 말에 기대는 문명의 회로에서 일탈할 구실은 되지 않는다. '백분토론'은 말을 통한 갈등 해결이라는 문명의 길을 닦는데 일정하게 이바지해왔다. 이 프로그램의 장수를 빈다. 그리고 지난주 토론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됐듯, 방영 시간을 자정 이전으로 앞당겼으면 한다.
 
* 필자 '여름씨'는 전 한국일보 고종석 논설위원의 필명입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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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15 [00: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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