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글쓰기와 ‘몸쓰기’, 이명원이라는 사내 생각
[여름씨의 이런생각] '배제된 사람들' 속에 들어간 그의 건투를 기원하며
 
여름씨   기사입력  2006/09/23 [15:56]
대산문화재단에서 내는 문학계간지 <<대산문화>> 가을호를 훑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의 <그럴 바에야 토굴에나 들어가라>라는 글에 눈이 멎었다. '단재 신채호와의 대화'라는 부제를 단 이 글은 단재가 이명원씨에게 보내는 가상의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편지의 한 대목은 이렇다.
 
"나는 문학이란 문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장을 자연스럽게 뿜어내게 하는 삶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네. 자네를 포함하여 젊은 문사들은 글쓰기가 손가락과 키보드에서 오는 것으로 믿고 있는 듯하지만, 적어도 나는 글쓰기란 '몸쓰기'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지. (중략) 세상의 이곳저곳에 폭탄이 떨어지고 시신이 넘쳐나고 시위와 폭동이 일어나건만, 그것은 브라운관 내부의 사건일 뿐이지 자네들의 몸을 움직이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
 
상상 속 단재의 목소리를 빌려 개진되기는 했으나, 이 견해는 기실 이명원씨 자신의 문학관일 테다. 그러니까 '자네를 포함하여'라는 표현은 (단재의 배후에 있는 이명원씨의) 의뭉스러운 겸사일 테다. 이것이 별난 견해는 아니다. 문학과 삶의 일치, 글쓰기와 '몸쓰기'의 일치는 어떤 문학관의 오래된 이상이었다.
 
나로서는 이런 견해가 좀 불편하기는 하다. 나는 글쓰기가 손가락과 키보드에서 나올 수도 있다고 믿는 축에 든다. 문학이 삶을 고스란히 실어 날라야 하는지도 미심스럽다. 그러나 나와 이명원씨의 생각 차이는 이름에 있을 뿐 실체에 있지 않다. 나 역시, 이명원씨처럼, 글쓰기와 '몸쓰기'의 일치를 아름다운 이상으로 여기고, 거기 다가가려는 노력을 고귀한 실천으로 기린다. 내가 이명원씨와 생각을 달리하는 점은, 그런 실존적 구속에 꼭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다. 나는 '문학이라는 이름'을 좀 헐겁게 놔두고 싶은 것이다.
 
▲문학평론가 서울디지털대학 교수로 활동중인 이명원씨     ©
이명원씨가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던 서울디지털대학으로부터 이번 학기에 재임용 해지 통보를 받았다. 학교가 밝힌 재임용 탈락 사유는 '평소 행동의 부적절함'과 '일간지 칼럼 등을 통한 학교 명예 훼손'이라고 한다. 이명원씨는 학내 인터넷 게시판과 신문 지면을 통해 서울디지털대학의 학내 비리 문제를 비롯해 대학 문화 일반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몇 차례 밝힌 바 있다. 학교 쪽은 이명원씨의 이런 비판적 글쓰기를 '부적절한 행동'이자 '명예훼손'으로 판단한 것이다. 교비 횡령과 등록금 담보 제공 등의 '부적절한' 관리 운영을 교육부한테서까지 지적 받은 학교가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 얄궂다.
 
이명원씨가 '부적절한 행동'으로 '명예훼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원로 문학사가 김윤식씨가 한국근대문학을 해석하는 틀과 언어에, 어느 일본 비평가가 일본근대문학을 해석하는 틀과 언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그는 수년 전 지적한 바 있다. 그가 대학원생일 때다. 이 청년 비평가의 조심스러운 지적은 한국 대학사회의 혈연적 봉건성을 거스르는 '부적절한 명예훼손'이었고, 그래서 '스캔들'이 되었다.

이명원씨는 '역린'을 건드린 벌로 그 뒤 대학사회에서 고립되었다. 그 사태와 관련해 내가 김윤식씨에게 특별히 유감스러운 것은, 사소하다면 사소하다 할 '표절'이 아니다. 정녕 유감스러운 것은 자신의 직계 제자들이 이명원씨를 들입다 박해하는데도 그가 이를 방치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국근대문학 연구의 좌장답지 않은 처신이었다. 그는 일급 학자답지 못했던 것 이상으로 어른답지 못했다.
 
이명원씨의 처지를 과장해 동정하는 것은 내 분수를 모르는 짓일 테다. 그는 '배제된 사람들'의 일원이지만, 지닌 것이 적지 않다. 여느 '배제된 사람들'에 견주어 배움도 많고 신념도 튼튼하다. '몸쓰기'로 수렴하는 그의 글쓰기가 번듯한 인문(삶-언어!)의 성채로 완성되길 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의 문학관이 옳은 것도 같다. <시사저널>
 
* 필자 '여름씨'는 전 한국일보 고종석 논설위원의 필명입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9/23 [15:5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