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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노무현, 오세훈과 '트로이 목마' 단상
[여름씨의 이런생각] 극우세력의 아우성이 양심세력의 변절보다 낫다
 
여름씨   기사입력  2006/07/01 [18:27]
목마 속에 숨어 있다 튀어나와 트로이군을 무찌른 그리스 병사들의 무용담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기록된 이래, '트로이 목마'라는 표현은 아군 몰래 숨어든 적군을 가리키는 상투적 은유가 되었다. 겉보기에 정상적 프로그램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사용자 정보를 유출하거나 다른 시스템을 공격하는 악성 프로그램이 컴퓨터업계에서 '트로이 목마'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이 고전적 은유에 줄이 닿아 있다. 트로이 목마는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지 않다. 그 좋고 나쁨은,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전선 어느 쪽에 발을 딛고 있느냐와 깊이 관련돼 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트로이 목마에 비견할 만한 사람으로 얼른 떠오르는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1990년 자신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을 노태우씨의 민정당, 김종필씨의 신민주공화당과 합치며, 김영삼씨는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의 정치적 훼절과 야합을 합리화하는 궤변으로 받아들여졌고 실상 궤변의 성격이 짙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말이 터무니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정치군부 세력과 손을 잡고서야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치욕일 수도 있었겠으나,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정치군부를 과감히 숙청함으로써 한국 정치에 군부가 다시는 간섭할 수 없는 풍토를 만들어냈다. 이 업적은 아무리 기려도 지나치지 않다. 김영삼씨의 정치군부 숙청이 설령 정략에 따른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문민통제라는 역사의 방향과 일치시킬 줄 알았고, 그 만큼은 위대한 지도자였다.
 
트로이 목마에 비견될 또 다른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아직 임기를 마치지 않은 그에게 확정 판결을 내릴 수야 없겠지만, 그는 결국 김영삼씨에 이은 제2의 트로이 목마로 기록될 듯하다. 그러나 그 방향은 거꾸로다. 수구파의 대표성을 지니고 대통령에 취임한 김영삼씨가 그 수구파의 가장 강력한 물질적 성채 하나를 무너뜨렸다면, 개혁 진보파의 대표성을 지니고 대통령에 당선한 노무현씨는 개혁세력 전체를 분열과 절망의 나락에 빠뜨렸다.
 
5.31 지방선거 결과는 지난 3년 반 동안 그가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거다. 그것을 그가 처음부터 의도했는지 아니면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치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현실 속에서 만들어놓은 사태이지 그의 내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희망을 가장 묵직하게 업고 출범한 정권이다. 그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정치인 노무현은 늘 어려운 사람들의 희망을 얘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그것이 사탕발림이었음을 차근차근 드러냈다.
 
노 대통령이 내세운 또 하나의 정치적 비전은 지역주의 타파였다.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합리화한 근거도 지역주의 타파였다. 그래서 오늘날 지역주의는 완화됐는가? 5.31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기묘한 방식으로 완화된 것도 같다.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이 한나라당 일색으로 통일됐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그것은 가망 없는 일이었다.
 
노 대통령이 이해한 지역주의 타파는 자신이 영남 유권자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지지자들이 모아준 정치적 자산을 영남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거의 탕진했다. 그러나 그 구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 대부분을 한나라당에 헌납함으로써 기이한 방식으로 지역주의를 완화했다. 그의 지역주의 타파는,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국 영남 패권주의 강화를 뜻했다. 그는 가장 성공적인 트로이 목마였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서울시장 직무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에 기용한 것을 두고 극우세력 일각에서 "오세훈은 트로이 목마"라는 소리가 나왔던 모양이다. 최 대표를 두고 '친북 좌파' 운운하는 것 자체가 한국 우익의 정신적 가난을 드러내는 것이긴 하지만, 이 소동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오 당선자에게 기대를 품고 싶어진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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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01 [18: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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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6/07/03 [06:36] 수정 | 삭제
  • 노무현은 트로이 목마안에 숨은 미국의 패트리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