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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방송개혁, 잿밥에 코 박은 자들
[언론시평] 언론개혁의 성과인 '사장추천위원회'를 오염시키는 인간들
 
양문석   기사입력  2006/11/01 [18:57]
제사보다 잿밥에 어두운 눈 들이 어렵게 만들어 온 한국의 민주주의 성과물을 왜곡시키려 든다. 민주주의의 한 단계 진보라면, 그것도 한국형 민주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제도 하나가 바로 사장추천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3년 노무현정권이 초기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을 때, 한국방송KBS의 사장으로 자신의 홍보특보를 임명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서 해직되어 오랜 기간 풍찬노숙의 세월을 경험했고, 언론개혁의 진전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 분이었다. 하지만 당시 KBS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은 기필코 그 양반의 KBS사장 취임을 막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홍보특보였다는 이유였다. 방송사, 방송노동자의 오랜 숙원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었던 만큼, 정치권력의 시녀로서 방송사가 겪었던 굴욕의 시간이 ‘대통령후보 특보’를 사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솔직히 당시만 해도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한국형 민주주의의 정착과 발전에 대한 기대치가 아주 높았던 시기 ‘노사모’를 비롯해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KBS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댔고, 그 과정에서 ‘투쟁의 주체’들이 잠시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여전히 유효한 방송사의 가치라는 점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했다.
 
언론개혁이라는 대의에 동의하여 같은 길을 걷다가 잠시 ‘대통령후보 특보’로 외유한 그 양반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한 일일 터. ‘자유언론’을 외쳐왔던 많은 선배언론인들이 그 양반을 반대하는 후배들의 행위에 불만을 터뜨렸지만, ‘지켜야 할 것은 지킨다’는 후배언론인들의 ‘대통령후보 특보 출신 사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이 시민사회단체가 꾸렸던 ‘KBS사장추천위원회’였다. 각 단체의 대표자급이 모여서 엄정한 심사를 통해 3명의 후보를 선정, KBS 이사회에 추천했다. 하지만 당시 KBS이사회는 수십 명의 자천 타천 인사들 중 시민단체의 ‘사장추천위원회 추천인사’로서 3명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단지 수십 명 중 3명이었을 뿐이고, 운좋게 그 3명 중 한 명이었던 정연주 당시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이 사장에 선임된 것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엄청났다. 연합뉴스 사장도 사장추천위원회라는 형식을 거치고, EBS사장, 한국방송광고공사 등도 이런 방식을 통해서 뽑힌다. 공영방송이나 공적 미디어의 사장은 대체로 이렇게 사장추천위원회를 통해서 그 수장을 뽑는, 한국형 민주주의가 노무현 정권 집권 후 ‘의미있는’ 지평의 확대를 실현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EBS사장추천위원회의 경우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람, 현직시절 직위를 이용해 개인의 편리함을 향유하거나 심지어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6개월 간격으로 취득하고, 그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의 60% 이상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남들은 ‘위장전입’ 때문에 그 보다 큰 자리를 내 놓지만 스스로 ‘위장전입’을 인정하고도 여전히 사장자리를 꿰차고 있는 사람을 뽑은 것이 대표적인 사장추천위원회의 문제점이다.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를 밟으면 이후에 드러나는 그 어떤 불의 부정한 행위도 용서되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만들어주며 면죄부를 발행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특정 인사를 사장에 내세우기 위해서 사장추천위원회가 자천 타천 사장후보 12명 중 무려 5명을 ‘이사회’에 추천하겠다는 현재 KBS사장추천위원회의 문제다.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12명 중에 무려 5명이라면 왜 사장추천위원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2~3명을 추천해서 그 중 한 명을 이사회가 뽑는 것이 애초 이 제도의 의미 아니었던가? 이것이 민주주의의 성과물이 아니었던가?
 
이쪽 저쪽의 탐욕이 창호지에 물 스며들듯 사장추천위원회라는 민주적 성과물을 훼손하고 있다. 그럴 바에 하지 말든지, 하려면 하나의 정착된 제도로서 전통을 세우든지. 상황에 따라 이런 저런 이유로 사장추천위원회의 성격과 권한을 훼손하고 축소하려면 ‘이사회’에서 뽑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성과물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더 낫다.
 
사장추천위원회마저 정쟁의 광장으로 더럽히고 있는 KBS관계자들과 그들 배후의 불순한 목소리들이 지금 한국형 민주주의의 성과물을 훼손하는 반민주적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이들을 반민주적 인사라고 이제 우리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차라리 잿밥에 코 박고 그들은 이렇게 선언했으면 좋겠다. 나는 제사보다 잿밥이 더 좋아요. 그러면 솔직하다는 평가라도 할 텐데.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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