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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벌어지는 방송독립투쟁을 아십니까?
[언론시평] EBS의 지난한 방송독립투쟁, 시민사회는 연대와 지원해야
 
양문석   기사입력  2006/09/27 [01:57]
EBS에 대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곧장 전국언론노조에 입사했다. 비정규직이었다. 하지만 언론정책과 언론의 대소사를 파악할 수 있는 언론노조 중앙사무처는 언론정책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해서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학습 전당이었다. 한편으로 미디어비평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싸움에 ‘간여’하는 특혜를 누렸다.
 
언론노조가 가져오는 각종 프로젝트를 전담하며 언론정책의 실전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2002년 대선을 넘기고 2003년부터 노무현정권의 언론정책을 감시하고 견제하며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포스트 닥터’ 즉 ‘박사 후 과정’을 차근차근 언론노조에서 밟았다.
 
만 3년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지난 해 EBS에서 입사했다. 정책위원이었다. 방송정책 전반에 대한 것과 더불어 방송정책 현안에 대해서 EBS와 관련된 내용을 일차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서 EBS의 대응방안을 생산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선수’가 아니었다. 훨씬 뛰어난 선수들이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 현안에 대한 깊이와 더불어 방송정책에 대해서 10년 이상의 역사를 꿰고 있는 이, EBS가 어떻게 생존해 왔고, 방송정책 하나 하나에 대해서 EBS 역량으로 돌파할 수 있는 일과 EBS가 돌파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 해박하게 설명하는 이, 기존의 EBS역량으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사안이었지만, 2005년의 EBS역량으로 볼 때 한 번 쯤 해 볼만 한 사안이라는 평가를 하는 이.
 
방송정책에 대한 아주 깊이 있는 이들의 분석과 대안을 배웠다. 하지만 4년가량 ‘강호’에서 언론짬밥을 먹고 있었던 당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알아간다. 왜 EBS는 보도기능이 없을까? 왜 EBS는 ‘시사관련’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렇게 수세적일까? 왜 EBS는 교육을 학교교육에 한정해서 매달릴까? 왜 EBS는 항상 수세적이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할까?
 
단적인 예로 2005년 5월쯤의 일이다. 방송발전기금의 문제를 두고 PD연합회가 연속기획토론회를 개최할 때 첫 발제를 맡았다. 방송위원회의 문제를 ‘나름대로’ 분석해서 ‘EBS정책위원’ 이름으로 발표했다. 방송위의 한 실무자가 EBS에 전화를 한 모양이다. “양박사 발제문이 EBS 공식입장입니까?” EBS는 화들짝 놀란 모양. 징계위원회를 연다만다 논란까지 있었으니.
 
왜 이렇게 허약할까? 아주 긴 의문의 꼬리표였다.
 
수 십 년을 교육부 산하 하나의 ‘국’으로 있었던 기억, ‘실’도 아니고 ‘처’도 아닌, 단지 몇 개의 ‘부’를 둔 ‘국’단위로 있으면서 온갖 간섭을 겪어야 했던 EBS. 한 때 KBS에 둥지를 틀었으나, KBS제3채널로 차별을 당하면서 울분을 삼켜야 했던 EBS. 그런 EBS가 ‘죽을 각오’로 싸워서 쟁취한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그들은 수많은 파업, 수십 날밤을 새우며 지난 한 파업의 길을 걸었고, 스스로 힘으로 새로운 공영방송 ‘참 좋은 방송 EBS 교육방송’을 만들었고, 무리 없이 지난 6년을 견뎌온 그들.
 
하지만 규제기관 방송위원회가 재치기 한 번 하면 감기 걸리는 줄 아는 고위간부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나의 ‘긴 의문의 꼬리표’가 풀렸다. 한 걸음 더 나가, 지금도 ‘교육부와 KBS’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고 있는 중견간부들, 교육방송공사법을 만들어냈던, 진정한 공영방송의 염원이 여전한 중견간부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주 둔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남긴 채 떠나왔다. ‘싸울 때 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싸움 자체를 두려워하는 EBS’라는 나의 평가가 그것. 감사원이 부당하면 감사원과 싸워야 하고, 방송위가 부당하면 방송위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고, 그들은 ‘싸울 때 우리는 싸움을 비켜 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면서도 적어도 EBS 구성원으로 내가 있을 때까지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그들.
 
▲EBS 현관에 걸린 낙하산 사장 막아내고 공영방송 구하자는 구호     ©임순혜
 
최근 사장과 감사 선임과정에서 혹자는 EBS의 책임을 묻기도 한다. EBS노조가 뭔가 일을 꾸민 것처럼 끊임없이 말을 흘린다. 그 출처가 방송위든 아니든 EBS노조를 흠집 내려 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지금 시점에 결코 중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EBS구성원들이 방송위가 임명한 사장과 감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옛날 조직체계로 보면 국장급 부장급인 팀장 41명이 보직사퇴와 더불어 사장에 대한 불복종 선언을 했다.
 
이것이면 된다. 천신만고 끝에 얻어낸 한국의 새로운 공영방송을 지금까지 거의 그들의 힘을 만들어 왔다. 그들은 보다 나은 공영방송을 만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 중심에 방송위가 임명한 사장과 감사에 대해서 전국언론노조 EBS지부가 있다. 대척점에 선 것이다.
 
방송발전기금을 쥐고 있는 규제기관 방송위를 향해서, 100억 원이 넘는 ‘수능지원금’을 주지 않고 퇴물관료를 사장으로 받아들이라는 교육부를 향해서, 그들은 ‘투쟁선언’을 한 것이다. EBS에서 월급 받던 1년6개월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러면서도 ‘싸워야 할 때 싸움을 비켜간 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싸움을 미루었다는 나의 평가가 ‘오판’ 또는 ‘오류’임을 증명해 보이는 그들이 결코 물러 설 수 없는 투쟁에 나섰다.
 
이것만으로도 시민사회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 규제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외치는 그들을 지지하고 지원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싸울 것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지지 지원하는 것만이 ‘연대’요, 의미 있는 방송독립투쟁에 대한 ‘예의’다.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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