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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이명박 그리고 사학법
[폴리티즌의 눈] 지나친 이명박 견제심리로 몰락 자초하는 박근혜
 
karangbi   기사입력  2006/01/10 [10:39]
지난해 12월 통과된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대투쟁이 생각보다 장기화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나라당의 사학법 반대투쟁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어서 국민의 여론을 얻어서 그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박근혜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제고되었으면 이쯤해서 끝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
 
박근혜씨는 이른바 차떼기로 표현되는 2002년 대선자금수사결과로 초토화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2004년 봄 한나라당 대표가 되었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16대 국회에서 가결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박근혜 대표는 차떼기와 탄핵정국의 백척간두의 위기상황속에서 17대 총선을 맞이하였고 그때 그녀는 부친과 모친으로 물려받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유형무형의 자산을 활용하여 그 총선에서 120여석이라는 유의미한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 박근혜씨를 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두분다 총탄에 쓰러져간 부모의 부정적 유산은 뒤로 하고 그녀가 이나라 차세대 여성 리더로서 성장해 나가면 참 보기 좋을 것같다는 생각..
 
특히 그녀의 부친께서 재임중에 행한 맹목적 반공정책 대결적 대북정책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라파 보수정당의 리더 정도의 열린 보수주의 여성정객이 되었으면 우리 대한민국에도, 한나라당에게도 나아가 그녀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 
 
게다가 상당수의 국민들이 의아해 하는 식민지시절 부친의 행적에 대해서도 "나는 부친을 존경하지만 그분의 청년시절 그리고 집권시 행한 일부 행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또 부친의 행적으로 부당한 일을 당하신 분이 있다면 하시라도 용서를 빌겠다"라고 말함으로써 아버지보다 나아진 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박근혜 대표는 그 아버지 이상으로 냉전의 미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냉전의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뭔가를 얻고자 하는 일부 극우주의자들에 의해서 휘둘리는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념도 유전된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다른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그건 그렇고 박근혜의 이념공세에는 시기적 절묘함이 있기에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겠다.  박근혜는 2년여 대표재임기간동안 크게 세차례의 이념(색깔)공세를 펼친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첫째는 총선승리와 탄핵국면모면으로 득세한 노 대통령과 열우당에 의한 이른바 '4대개혁입법'을 밀어붙일때이다.  표면적으로는 국가보안법폐지가 보수우익을 자극해서였겠지만 과거사법(부친의 친일문제관련)이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것은 봐줄만 하다. 
 
왜냐..  아무리 국가보안법이 반인권법일지라도 그것을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일정수의 국민들이 있으니 그 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시기조절은 필요한 것이나 그때 열우당과 노 대통령이 그 법을 폐지하려 한 것은 좀 무리수를 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정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놔둬 버렸으니..  좌우지간 이와 같은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박근혜의 '국가보안법수호투쟁'은 봐줄만 했다는 말이다.
 
둘째는 법무장관 천정배씨의 '강정구교수 불구속 수사지시"를 계기로 번진 국가정체성 논쟁이다.  이건 좀 거시기하다. 시기적으로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10월3일 청계천복원공사를 앞두고 박대표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인 서울시장 이명박씨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엿보이므로 그렇다. 
 
물론 10.26보궐선거를 앞두고 노인표를 결집시킬려는 정치적 저의도 있었을 것이지만 정치분석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는 정국구도를 노무현-박근혜 구도로 몰고감으로써 이명박씨의 부상을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는데 모아졌던 것같다.
 
아무튼 그 정체성 논란을 통해서 박근혜는 보궐선거 압승이라는 정치적 전리품을 노획하였다.  그리고 그 승리를 계기로 이명박씨의 부상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이명박씨의 부상은 계속되었고 언론의 관심도 박근혜보다는 이명박쪽으로 기우는 현상이 10.26보선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던 차에 열우당이 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실상 내용은 별것 아니었다.  고작 이사진의 1/4을 공익이사 중에서 선출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사립학교 이사 1/4이 공익이사로 선출된다고 하여 그것으로 학원이 전교조에 의해 장악될리도 그들이 말하는 국가정체성이 흔들릴리도 만무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에는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정치권에는 노 대통령과 박근혜만이 존재해야만 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이 끼어 든다는 것은 그녀의 앞길을 가로 막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렇지만, 박근혜님..  자당의 정적(?)을 견제하고자 사학법을 국가정체성문제로 연결짓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도 자제할 논리비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이 일을 어찌 한담..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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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1/10 [10: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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