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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박근혜의 리더십
[김종대의 안보설명서] 소통 실패의 핵심은 박근혜의 간접 화법
 
김종대   기사입력  2014/06/25 [23:09]
침묵하는 대통령과 앵무새 참모

9·11테러 당시를 살펴보자.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5분 여객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충돌할 당시에 조지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초등학교에 있었다. 사건 발생 20분 후인 9시 5분에 최초 보고를 받은 부시는 급히 백악관으로 귀환하면서 대국민 메시지를 준비했다. 사건의 주범을 모르는 상황에서 당일 부시의 행적에는 모두 3건의 성명 발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1차는 “미국에 대한 명백한 테러 공격”이라며 사건의 성격을 명확히 한다. 2차는 테러에 대한 보복 의지를 천명하고 국제 사회의 협조를 요청한다. 3차는 테러 공격 배후자들과 이를 보호하는 국가에 보복 의사를 천명한다.

담화 이후 즉시 부시는 먼지가 자욱한 테러 현장으로 가서 소방관들과 함께 서서 또 연설을
한다. 이후로 부시는 거의 매일 직접 성명을 발표하는데, 내용은 “21세기 첫 전쟁”이라 규정하고 반드시 승리한다는 의지 발표(9월 12일), “우리의 책임은 악의 세계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성명 발표(9월 13일), “악을 제거하기 위한 성전 개시”라는 성명 발표(9월 17일) 등이다. 이와 함께 국무, 국방, 법무, 보건, 농부 등 각 부 장관들이 일제히 자기 분야 조치 사항과 추진 방향에 대해 거의 매일 브리핑을 하는데, 3일간 50회가 넘었다. 전대미문의 테러를 당한 상황에서 미국 국민들은 가장 불안한 시기에 용기 있게 행동하는 국가 지도자에게 높은 지지와 성원을 보냈다. 불안에 빠진 국민의 요구(demand)에 대통령이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함께한다는 신뢰로 화답(support)하는 관계, 이걸 일컬어 소통이라고 한다. 위기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재앙은 더 비극적일 수 있다.

국민에 대한 미국의 정치 지도자의 직접 화법은 대통령 자신이라는 1인칭과 국민이라는 2인칭 사이의 대화법이다. 이게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는 무척 어렵다. 주로 대통령의 말은 편집되거나 청와대 참모에 의한 전언이 주종이다. 이런 간접 화법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3인칭 전언이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대응을 보면, 3월 27일까지 4차례 안보 관계 장관 회의를 개최하고도 대통령의 성명이 나오지 않았다. 3월 30일 대통령이 백령도를 방문할 당시까지도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브리핑하거나 발표한 바가 없다. 대국민 담화는 사건이 발생한 지 거의 2개월이 지난 5월 24일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왔다. 이전까지 정부가 사태에 대해 담화를 발표한 적은 오직 국방장관(3회)뿐이었다.

사건 발생 초기에 실체가 분명치 않은 점은 9·11테러나 천안함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모호한 사건일지라도 명확한 성격 규정과 대응 방향 제시는 즉시 이루어져야 했다. 국
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은 더더욱 침묵의 장막 뒤로 숨었다. 천안함 사건과 달리 사건의 원인과 전모가 명확히 드러난 2010년의 11월 23일의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한 시점은 사건 발생 6일이 지난 11월 29일이다. 이것도 대통령이 ‘큰맘 먹고’ 마지못해 한 것이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나 기자 회견을 거의 하지 않는 평소 스타일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유체 이탈 화법이라고도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더 심각한 간접 화법을 보자면 이건 개인의 스타일을 넘어선 한국 정치 문화에 내재하는 어떤 속성인 것처럼 보인다.

소통 실패의 핵심은 박근혜의 간접 화법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언급은 전부가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 또는 국무 회의에서 앉아서 한 발언뿐이다. 그나마 이것도 대통령의 낭독을 상당 부분 편집해서 내보낸 것들이 다. 현장에 가서 유족들과 대화한 내용까지도 방송에 나갈 즈음이면 3인칭으로 편집된다. 즉 박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핵심적인 메시지가 직접 전달되는 게 아니라 방송사 데스크에 의해 첨삭되고 가미되는 ‘화장술’을 거쳐 전달된다. 이럴 경우 대화가 가능한 대통령이라는 인격체는 사라지고 없다. 다만 대통령이라는 지위의 권위와 상징으로서, 즉 ‘비인격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된다. 문제는 이것이 어떤 소통으로 발전하느냐다.

미국의 위기관리는 대통령과 장관들이 ‘국민을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한국의 위기관리는 청와대 참모와 장관들이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가를 보위’해야 할 대통령이 거꾸로 ‘보호받는’ 존재가 된다. 참모들이 이중 삼중으로 대통령을 에워싼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데 반해 우리는 오히려 추락한다. 인격체로서 대통령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초기에 발휘되는 최고 지도자, 즉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그런데 아무런 소신과 당당함이 느껴지지 않는 최고 지도자의 부재는 국민의 의지를 결집하는 데 실패한다. 빈약한 리더십은 참모들의 ‘대통령 이미지 만들기’로 보완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말을 멋대로 편집하는 바람에 대통령의 진짜 의중과 관계없이 위기관리는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평도 포격 사건 당일 2시 34분 직후에 위기관리 센터장에게서 보고를 받고 긴급히 청와대 벙커로 들어간 시각이 2시 40분이었다. 이 대통령은 즉시 수석 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며 합참의장, 각 군 작전 사령관에게서 화상 회의 시스템으로 상황을 보고받았다. 얼마 후 김희정 대변인이 언론 브리핑을 서둘러 마치고 뒤늦게 지하 벙커에 들어가니 이미 상황 파악은 끝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두고 여러 말이 참모들 간에 오가고 있었다. 3시 40분경에 언론에 보도된 “대통령이 확전 방지를 지시했다”라는 메시지가 논란이 되자 이날 저녁 무렵 김 대변인이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전달한 죄밖에 없다”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러한 위기관리의 치명적 실수는 추후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특별 조사를 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발언이 와전되었다”라며 궁색하게 변명을 했고, 이튿날에 김병기 대통령 국방비서관을 지목해 경질했다. 명백한 ‘대리 경질’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12월 중순까지 언론사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발 빠르게 접촉하면서 ‘대통령 방호’에 나섰다. 내용인즉슨 “연평도 포격 당시 대통령이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는데 군 수뇌부가 만류해서 전투기 폭격을 못했다”라는 식이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군 수뇌부에 전가하겠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모든 정황이 ‘국민 보호하기’가 아니라 ‘대통령 보호하기’로 움직이는 청와대는 위기관리의 본질에 눈을 뜨지 못했다. 이런 고장 난 시스템은 추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이어진다. ‘단호한 조치’로 북한의 2차 포격을 억제하지 못한 책임 추궁이 청와대로 쏟아질 조짐이 보이자 사태가 종결될 조짐을 보이던 23일 오후부터 24일까지 청와대는 갑자기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 중 이 대통령이 언급한 두 가지가 주목된다. 첫 번째는 24일 이 대통령이 “교전 규칙의 개정을 검토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언급이다. 교전 규칙이란 1953년 유엔군사령관이 제정해 현재까지 몇 번 변경되었으나 큰 골격은 아직도 거의 변함이 없다. 남북 간에 우발적 충돌이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일선의 현장 지휘관에게 하달되는 사전 지침이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 현장 지휘관들의 간편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돕고, 무엇보다 전면전으로 확전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은 현장 지휘관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 지도 본부, 즉 청와대와 국방부·합참 같은 전략 단위에서 이루어질 일이지 현장 지휘관의 소관이 아니었다. F-15K 전투기를 동원한 북한 포대 제압은 합참의장이 충분히 지휘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국군 통수권과 군령권은 교전 규칙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최고 단위의 권위를 갖고 있다. 국군 통수권자가 국방장관, 합참의장과 협의해서 전투기나 함포를 동원해 북한에 단호한 대응을 하면 그만이다. 그런 대통령이 일선 지휘관들이나 거론할 교전 규칙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단호한 대응을 하지 못한 원인이 전쟁 지도 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 시스템, 특히 현장 지휘관에게 있다는 암묵적 책임 전가였다.

박근혜 정부의 자기 방어 논리와 국민 배제

국가 위기에서 우리나라 정치권력의 허세와 허영의 문제는 더 면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입만 열면 전쟁 위기를 부추기며 대북 강경책을 주도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떠했는가? 1994년에 도리어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영변을 폭격하자고 주장해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러자 이제껏 주장해온 강경 기조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좌불안석의 초조함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윽고 특사로 북한을 다녀온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의 “남북 정상 회담을 하자”라는 메시지를 갖고 돌아와 김 대통령에 전달하는 장면은 “김 대통령의 턱이 목까지 떨어졌다”라고 클린턴 회고록에서 묘사되고 있다. 남북 정상 회담 소식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입이 딱 벌어졌느냐는 풍자였다.

북한에 자존심을 곧추세움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위신을 세우려는 이 나라의 보수 대통령들은 막상 전쟁 위기가 닥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소심한 겁쟁이가 된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사고 유형이 나타는데, 첫 번째는 천편일률적인 기계적인 사고(grooved thinking)다. 이럴 경우 하나 마나 한 천편일률적인 지시만 남발된다. 세월호 참사 초기에 박 대통령이 “특수부대를 투입해라”,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라”라고 원래 매뉴얼에 있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걸 또 지시하는 상황이다. 그러다가 결국 유족 장례비 비용 문제를 들고 나와 한 유족이 저렴하게 장례를 치르는 걸 칭송하다가 실종자와 사망자 집계 문제를 이야기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부실을 제거한다는 예정된 말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도무지 위기 국면의 본질이 무엇인지, 현 단계에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지 초점이 없다.

두 번째는 이도 저도 아닌 소신 없는 사고(uncommitted thinking)다. 갑자기 대통령에게 한참모가 교전 규칙 문제를 이야기하면 그게 문제의 본질인 양 몰려갔다가, 아니라고 판명되면 자신이 말한 것 자체를 잊어버린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에 대한 인식 체계는 다양한 참모의 건의에 일관성 없이 우왕좌왕했다. 진도 팽목항에 가서 해야할 대통령의 말은 실종자 수색에 대한 정부의 ‘결사적 자세’를 표출하는 것, 국민의 지지 호소, 실종자 가족과의 공감과 연대, 수색 인력에 대한 격려여야 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거의 말하지 않거나 전달되지 않고 거기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을 운운한 것은 목숨을 걸고 밤잠 설치는 구조 인력에게는 매우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할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열흘간 가장 중요한 일은 구조였다. 이번 참사의 책임을 묻거나 희생양을 만드는 일, 유언비어 유포자를 색출하는 일, 국가 안전처를 신설한다는 발표, 관료 마피아 척결 등은 사태 수습 이후에 해도 전혀 늦지 않으며, 사건 초기의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이런 발표는 성난 민심으로부터 정권의 위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 방어 심리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이런 두 가지 사고 유형이 아닌 대통령의 바람직한 사고방식은 체계적인 사고(theoretical)다. 평소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바람직한 인식 체계와 행동 방식이 학습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런 학습이 되어 있지 못했다. 이런 사고였다면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는 첫째, 사태의 명확한 성격 정의다. 이번 사태는 매우 엄중한 재난 사태라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면서, 우리에게 엄중한 시련과 도전이 닥쳤다는 사실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둘째, 전 국민의 협력과 단결 호소다. 이번 구조 작업은 정부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민관군이 협력하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참여와 협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말해야 한다.

셋째, 정부 차원의 높은 결의와 의지가 나와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서 반드시 이 도전을 극복하겠다는 명확한 결의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절대 이 재난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대통령과 총리, 장관은 현장을 떠나지 않겠다는 식의 ‘결사적인 자세’가 나와야 했다. 이걸 감동적으로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 가장 불안한 순간에 용기 있는 행동을 하는 것, 그게 바로 위기의 순간에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었다. 필요하다면 매일 대통령이 언론에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관료주의의 적폐(積弊)만 드러내는 행태를 보였다.

말하자면 현장의 사정은 잠수부가 하루에 15명 이상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라는 걸 다 알고 있다. 현장의 작업반장은 오늘 잠수부가 15명 투입되었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육지의 책임자는 인근의 대기 잠수부 50명도 가산해 출동한 잠수부 전원이 투입된 것처럼 보고한다. 그러면 장관은 전국의 가용한 잠수부 숫자 500명을 더해서 이들이 전부 투입된 것처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그 누구도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단지 투입 가능하고 대기 중인 잠수부 전원이 팽목항에 가 있으니 사상 최대 구조 작전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보도로 나올 즈음이면 실종자 가족은 분노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료적 행태는 그 자체로 국민에게 상처를 준다. 박근혜 정부가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정권은 사건의 본질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관료주의 기반 위에서 자기 방어의 행태로 돌아선다. 당연히 대통령 지지율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진단과 국가 개조론의 허실

참사가 벌어지면 반드시 정치권력은 부실과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지금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 개조론이란 재난의 주범에 대한 응징과 처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재임 기간 중 많은 재난을 경험한 김영삼 전 대통령도 그랬다. 구포 열차 전복(1993), 예비군 부대 폭발(1993),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1993), 서해 훼리호 침몰(1993), 성수대교 붕괴(1994), 충주 유람선 화재(1994), 아현동 도시 가스 폭발(1994),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1995), 삼풍백화점 붕괴(1995) 등 한 정권에 이렇게 많은 재난을 당한 때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비견되는 시기가 없었다. 여기에다 서울 불바다 전쟁 위기(1994), 강릉 잠수함 침투(1996), 국가 외환 위기(1997) 같은 안보·경제 재난까지 고려하면 문민정부 5년은 재난 공화국이었다. 그 당시라고 해서 처벌은 안했겠는가? 그런데 더 악순환에 처하게 되는 이런 역설의 본질은 무엇일까?

첫째, 위험의 구조와 본질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우리가 목격하는 사회적 위험은 선진국 지상주의, 동물적인 생존 경쟁, 성장 지상주의(성과주의)라는 산업 사회의 속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를 쌓으면 이는 개인이 소유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다수에게 분산된다. 그런데 성장을 종교처럼 맹신하면서도 국가와 사회의 안전망이 지속적으로 파괴되거나 붕괴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성장 지상주의가 도덕 감각을 둔화시켰기 때문이다.

둘째, 중앙 집권형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떤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안전망이 건실해지는 것이 아니라 장관 자리, 청장 자리가 하나 더 생긴다. 이런 상부 권력의 비대화는 위험하다. 감지하기조차 어려운 현대적 위험을 전통적인 관료적 통제로 극복하겠다는 매우 비합리적인 발상이다. 후기 산업 사회에서 위험은 인간의 인지 능력 밖에 있다. 엄격한 의미로 안전 문제에 대한 전문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위험에 대한 기술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 건 오만이다. 오직 예상되는 미래의 재앙, 즉 위험을 공론화하고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규범의 발전, 그리고 현장의 전문성 강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런데 관료적 통제 강화는 위험 그 자체를 은폐하는 주된 행위자 중 하나가 바로 관료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왕적 관료 통치의 패러다임을 선호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셋째, 권력에 아부하고 줄 서는 소위 전문가들이 성장 이데올로기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대책을 강구한다. 그렇게 되면 핵발전소도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전혀 위험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위험이 있더라도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전문가들이 그렇게 검토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밀양 송전탑, 제주 해군기지, 천성산 터널 등 그 무엇도 전혀 위험이 없거나, 국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불편쯤으로 인식된다. 광우병 소고기도 괴담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이 검토했기 때문이다. 이걸 울리히 벡
(Ulrich Beck)은 ‘화장술’이라고 부른다. 위험에 대한 지식이 관료와 결탁된 전문가에게만 독점되는 한 위험 자체는 관리될 수 없다는 데 대한 풍자다.

그런데 결론은? 여전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보수 정권은 재난에 처할수록 재난의 근본 원인인 선진국병을 더 심화하는 조치를 한다. 진정한 국가 개조는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국가 개조의 의미는 경제력과 군사력의 외형적 규모를 확장하고자 하는 근대의 패러다임을 초월하고 수정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이런 국가 개조를 할 리는 더 없지 않은가?

* 글쓴이는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입니다.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4년 5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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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6/25 [23: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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