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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활성화가 정치개혁이다
[김영호 칼럼] 한국사회도 투명사회로 가려면 공직사회부터 맑아져야
 
김영호   기사입력  2013/02/04 [22:16]

헌재소장 후보자 이동흡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국무총리 지명자 김용준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지레 사퇴했다. 국민감정을 미루어 그 숱한 흠결을 안고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리라고 깨달은 듯하다. 인사돌풍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곤혹스런 모양이다. 여권에서는 벌써부터 ‘죄인심문’이니 ‘신상털기’니 하는 따위의 말로 청문회 무용론을 들고 나와 역공을 시도한다. 청문회를 탓하지 말고 먼저 전문성, 지도력, 포용력, 대중성, 정직성, 도덕성, 청렴성을 따져서 발탁했는지 반성부터 해야 한다.

이 나라 대통령은 헌법상의 권력구조와는 상관없이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한다. 이런 현실에서 그나마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있어 대통령을 견제한다. 인사청문회는 2000년 6월에야 도입되었다.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등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 후 2003년 1월 권력기관인 국가정보원,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도 대상에 포함시켰다. 2005년 1~3월 노무현 정권의 교육부총리, 경제부총리, 국가인권위원장, 건설교통부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도덕적 흠결로 낙마했다. 그해 7월 박근혜 대표의 한나라당이 주도하여 모든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확대했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지도층의 도덕적 불감증이 국민에게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겨준다. 주로 불투명한 축재가 도마에 오른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투기의혹, 위장전입, 농지소유, 세금탈루, 편법상속-증여, 전관예우 등등 청렴성의 결여가 용인의 범위를 넘어선다. 논문표절-이중게재, 허위학력, 병역기피, 자녀의 미국국적, 공금유용 따위로도 도덕성, 정직성의 논란을 일으킨다. 탈법의 수준을 넘어 불법의 단계에 이르렀지만 거짓말을 예사로 안다. 그 탓에 전문성, 지도력, 포용력, 대중성을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번번이 중도에 하차한다.

2002년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두 차례나 국회인준을 얻지 못하는 바람에 김대중 정권이 정치적 곤경을 겪었다. 2002년 7월 이화여대 총장 장상이, 2002년 8월 매일경제신문 사장 장대환이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첫 여성 총리’, ‘50세 총리’라는 깜짝 발탁도 그 관문을 뚫기에는 도덕적 흠결이 너무 많았다. 이명박 정권은 경남지사를 지낸 김태호를 내심 잠재적 대선주자로 키운다고 ‘40대 총리'로 발탁했다. 하지만 그도 도덕적 검증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퇴했다.

‘최고령 총리’를 바라보던 헌재재판소장 출신 김용준는 청문회를 포기했다. 수도권 토지 집중매입, 7, 8세 두 아들의 수십억대 부동산 소유, 두 아들의 병역면제가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꼈던 모양이다. 김용준은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는 대법관과 헌재재판소장을 역임했다. 사법부 수장을 지냈으니 행정부에 들어가 대통령을 보좌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한다. 사법권의 권위와 신뢰를 실추시키고 권력분립이란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문제를 말이다. 이런 대법관이나 헌재재판관이라면 재임 중에 정치적 중립을 견지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동흡과 김용준이 낙마하자 인수위측에서 청문회가 ‘인격살인’을 일삼는다느니 ‘성인군자’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따위로 말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새누리당이 미국을 들먹이며 재산-병역-세금 등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능력검증만 공개하도록 청문회 제도를 고치겠다고 나섰다. 미국도 도덕성을 먼저 본다. 냉혹하리만치 철저한 사전검증을 통과했기에 청문회가 정책-능력 위주로 운영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93년 클린턴이 첫 여성 법무장관을 발탁했지만 불법이민자를 가정부로 고용했다는 이유로 지명을 철회했다.

한국사회는 권위주의 시대의 압축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무한경쟁 사회가 되었다. 배금사상과 연고주의-출세주의가 팽배하면서 가치관이 전도되어 목적보다는 수단이 우선한다. 이런 현실에서 기득권층이 부패구조에 서식하면서 거대한 지배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청문범위와 함께 청문기간도 늘려야 한다. 1987년 체제 이후만 보더라도 역대정권이 실패한 이유는 공인의식이 결여된 무자격자-무능력자들을 중용했기 때문이다. 박 당선자는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한국사회도 투명사회로 가려면 공직사회부터 맑아져야 한다. 청문회가 공직사회에 각성제 노릇을 하고 일반사회에도 청정제 역할을 하고 있다. 자라는 세대에게 장차 공직사회에 진출하려면 학창시절부터 도덕적으로 근신하는 자세를 갖도록 시사하는 중요한 의미도 갖는다. 청문회 활성화가 정치개혁으로 가는 길이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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