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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장관이 '노동3권' 스스로 부정 파장
"단체교섭권·행동권 제약해야" 논란, 노조법 비판 일축…국제단체도 맹성토
 
이석주   기사입력  2009/12/11 [17:36]
'헌법에서의 노동3권 삭제'를 자신의 소신으로 밝혔던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에 이어, 노동계 수장인 임태희 노동부 장관 역시 11일 단체교섭권과 행동권 등 노동3권의 핵심 내용에 대한 '제약'의 필요성을 언급해 논란이 예상된다.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 스스로 부정하고 나선 노동부 장관
 
임태희 장관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난 4일 민주노총이 배제된 노사정 합의문과 관련,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대안' 성격으로 제시된 '타임오프제'와 복수노조 문제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의 입장을 밝혔다.
 
임 장관은 그러나 타임오프제 계획에 따른 노동계 반발에 대해 이른바 '외국 관례'를 강조한 뒤 "명료한 규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특히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과 행동권은 제약해야 한다며 자신의 '반 노동' 소신을 드러냈다.
 
▲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11일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 출석,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과 행동권을 제약해야 한다고 밝혔다.     ©CBS노컷뉴스 (자료사진)

임 장관은 노동3권에 규정된 '단결권'은 '표현의 자유'임을 강조하면서도, 단체교섭권 및 행동권과 관련해선 "(노조의) 상대가 있기 때문에, 상대의 권리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면 요건과 절차를 규정해 제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같은 주장은 환노위 소속 한나라당 이화수 의원이 "복수노조가 시행된다면 노조 파업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발언에 따른 것으로, 지난 9월 국정감사 당시 자신의 '소신'을 여과없이 표명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박기성 원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발언이다.
 
당시 박 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 "헌법에서 노동 3권을 빼야 한다"고 말한 뒤 여야 의원들로 부터 강도높은 질책을 받자, 10월 7일 국정감사 자리에선 "당시 매우 당황한 상황에서 잘못된 표현을 사용했다"며 자진사퇴를 대신한 사과 입장을 전했다.
 
임 장관이 이날 언급한 단체교섭권과 행동권은 헌법 33조 1항에 명시됐으며, '근로자의 단체(노동조합)가 사용자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에 관하여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헌법에 규정된 노동자의 핵심 권리를 주무부처 장관이 부정하고 나선 것.
 
이에 대해 이화수 의원은 "근로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중 두 가지를 제약할 수 있다고 발언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임 장관을 질타했다.
 
또 "특별법에 의해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공무원노동조합과 같이 일반 노조의 단체행동권도 제약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복수노조 위헌' 논란 일축…"파업준비활동 '타임오프제' 포함 안돼" 주장도
 
한편 이날 환노위 전체회의에선 민주노총 등으로 부터 강력 반발을 사고 있는 '타임오프제'와 관련해서도 임 장관을 향한 여야 의원들의 질책과 추궁이 이어졌다. 임 장관은 그러나 "건전한 관행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말로 시행 방침을 못박았다.
 
복수노조 문제와 관련, 이 의원은 "일반적인 대다수 학자들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제기준에 맞춰서 시행한다고 하지만, 실질적 내용을 보면 국제적 기준을 벗어나 있다.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밝혔다.
 
▲ 민주노총이 배제된 노사정은 지난 4일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와 관련한 합의안을 도출했다.   ©CBS노컷뉴스

임 장관은 해외 사례를 거론, "미국의 경우는 우리나라 보다 훨씬 엄격하게 돼있고, 일본의 경우도 판례를 통해 다수 노조가 교섭권을 갖는 것으로 돼있다"며 "때문에 이것이 (복수노조 허용 금지) 헌법 위반의 문제까지 일으킬 사안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방안을 놓고서도 민주당 김재윤 의원은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어떻게 부당행위로 볼 수 있느냐"며 "이야 말로, 우리의 국격을 낮추는 행위고, 장관이 말하는 노사 선진화가 아니라, 후진화로 가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임 장관은 그러나 "협상과정에서는 힘의 논리에 의해서 그것(전임자 임금)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금지 방안이 필수불가결한 사항 임을 강조했다.
 
이어 "이런 관행은 잘못된 것이고, 고쳐야 한다"며 "국제적으로 인정된 타임오프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건전한 관행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정부 입장을 전했다.
 
이와 관련, 임 장관은 '타임오프제로 인해 노사 간 많은 이견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의 지적에 "외국에도 관례가 형성돼 있다"며 "국제관례를 참고하면서 현장을 실태조사 하면 명료한 규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파업준비 활동이 타임오프제에 포함되느냐'는 권 의원 질의에 임 장관은 '개인적 판단'이란 전제를 달고 "(타임오프제에) 들어가지 않는 활동"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 4일 노사정 '합의안'에 포함된 '타임오프제'는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금지하는 대신, 임금협상과 산업안전 등 노사공통의 이해가 걸린 업무에 종사한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결국 임 장관의 주장은 파업준비 활동 등 노조의 단체활동을 타임오프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한나라당도 지난 8일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타임오프 범위에 이른바 '통상적 노조관리 업무'를 명시했다.
 
민주노총 강력 반발…국제노동단체도 "ILO 핵심협약 위반이자 퇴행적 조치"
 
이에 대해 민주노총(위원장 임성규)은 이날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이 타임오프제 범위에 '통상적 노조관리 업무'를 포함한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법안을 발의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심지어 사용자들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이 사실상 허용된 거나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있다"며 "그 모양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민주노총은 합의안에 명시된 '타임오프제'를 강력 비판했다. (자료사진)     ©민주노총 (노동과세계)

이와 함께 "아흔 아홉을 가지고도 나머지 하나를 가지지 못했다고 투덜대는, 참으로 탐욕에 눈 먼 집단이 아닐 수 없다"며 "한나라당이 마치 노조를 위해 야합안을 훼손한 것처럼 떠드는 보수언론의 가증스러움도 역겹긴 마찬가지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한나라당은 영세사업장을 배려해 '통상적 노조관리 업무' 조항을 삽입한 타임오프제 법안을 발의했다고 하나 그 시커먼 속을 가릴 순 없다"며 "통상적 노조관리 업무’조항을 삽입하는 대신 그 내용을 정부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함에 따라 정부가 제 멋대로 '통상적 노조관리 업무'를 제한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노동3권은 엄연한 헌법적 권리다. 정부는 아무리 법 절차에 따르더라도 모든 파업은 불법이고 죄악으로 매도하고 있다"며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것을 넘어 아예 노조말살을 최대 정책과제로 설정한 정부"라고 비판했다.
 
한편 민주노총에 따르면, 영국노총(TUC)은 최근 한국정부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항의하는 입장을 담은 서한을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항의서한을 통해 영국노총은 "한국정부가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 조정법 개악 시도를 철회하고 노동조합을 성숙한 노사관계의 본질적 파트너로 인정해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고 민주노총이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영국노총은 특히 '타임오프제'와 관련,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위반이자 퇴행적 조치"라며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노조활동 '전임시간'은 노조 대표자들이 자발적인 단체교섭을 통해 협상할 수 있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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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11 [17: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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