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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씨름 ‘스모’, 알고보면 더 재미있어요”
팔순 이기순 할머니의 15년 ‘스모’ 사랑, 한국무용에도 남다른 관심도
 
김철관   기사입력  2007/02/19 [10:23]
심판의 출전 명령이 떨어지면 양쪽다리를 치켜들고 엉금엉금 경기장을 향하는 일본 국기 스모 선수들. 보통 사람들보다 덩치가 훨씬 큰데다가 무표정한 얼굴, 매서운 눈빛으로 경기장을 향하는 선수의 모습은 비장한 각오로 전장에 나가는 장군을 연상케 한다.

상대 선수와 눈빛을 마주치면 곧바로 매섭게 달려들고, 상대 선수를 밀치고 제쳐 경기장 밖으로 몰아내면 바로 단판에 승부가 결정된다.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스모(sumo)는 우리 전통 민속경기인 씨름과 비교되지만 규칙이나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이기순(82) 할머니는 스모 마니아다. 희수(喜壽, 77세)를 지나 미수(米壽, 88세)에 가까운 나이인데도 스모를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출전 선수 명단과 승패, 랭킹 순위, 역대 챔피언 등을 세심히 관찰해 분석해 놓을 만큼 전문가 수준이다.

"지난 91년 집에 위성방송이 설치됐어요. 우연히 일본 NHK 방송에서 스모경기를 보게됐는데 너무 신기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처음은 일본어가 들리지 않아 고생했어요. 어린 나이인 일제 식민지시대에 일본어를 배운 뒤, 처음 일본어를 접했으니까요. 스모를 분석하면서 일본어도 자연스럽게 배워버렸어요."
 
▲ 지난 91년부터 일본 스모를 분석 기록해 온 스모 마니아 이기순 할머니. 죽을 때까지 스모를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 대자보 김철관

그가 15년간 모아 둔 스모관련 기록들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선수기록, 선수 순위, 선수 승패, 역대 챔피언(요코스나)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분석 메모지다. 직접 자를 대고 횡과 종을 반드시 그어 만든 메모 칸 안은 한자(일본어)로 각 출전선수 명단과 함께 승수 표시를 정(正)자로, 또는 오(O) 엑스(X)로 표시해 아주 세밀히 기록해 놓았다.
 
"스모경기는 일 년에 여섯 번 열려요. 홀수 달에요. 열릴 때마다 보름간 열리는 데 리그전 형식으로 열려요. 출전 선수가 한 번씩 다 겨누는 것이지요. 단판 승부입니다. 승수가 많은 선수가 요코스나(챔피언)가 되는 것입니다. 올해 1월 달 경기는 동경에서 했는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3월 11일부터 25일까지 오사카에서 두 번째 경기가 열릴 예정입니다."

스모의 랭킹은 요코스나(챔피언, 우리 민속 씨름의 천하장사 격)부터 하순위인 조노구찌까지 11단계로 나눠진다고. 상위 랭크에 따라 나눠 보면 1위 요코스나(챔피언), 2위 오오제키, 3위 세키와케, 4위 고무스비, 5위 마이가시라, 6위 마꾸우찌, 7위 주료, 8위 마꾸시다, 9위 산단매, 10위 조니단 11위 조노구찌 등이란다.

"우리 씨름에서는 잘못된 판정을 내리면 선수가 항의하는 그런 모습을 종종 봅니다만 스모는 그런 경우를 찾기가 힘들어요. 극히 드문 일이지만 판정 시비가 있으면 기모노 차림의 심판 5명이 의견을 내 사태를 바로 해결합니다."
 
▲ 15년간 분석한 자료는 각 선수 승패를 오(O) 엑스(x)로 표시해 놓고 종과 횡을 그어 칸을 만드는 등 정교하게 돼 있다.     © 대자보 김철관

그는 상위 경기냐 하위경기냐에 따라 심판의 복장도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전 랭킹순위 1위부터 7위까지는 기모노 정장 차림에 다비(버선)까지 신고 심판을 봅니다. 이중 1위에서 4위까지는 조리(슬리퍼)까지 신습니다. 8위에서부터 11위까지 하위 순위는 맨발로 심판을 봅니다.”

그는 1년에 홀수 달만 6번의 경기가 열리는데 1월 동경, 3월 오사카, 5월 동경, 7월 나고야, 9월 동경, 11월 큐슈에서 등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그리고 요코스나(챔피언)는 2회 연속 우승을 한 선수에게 주어진다고 강조했다.
  
"요코스나는 1년 6번 중 연속 2회 경기를 이겨야 합니다. 건너 뛰어 2회 우승을 해도 안됩니다. 말 그대로 연속 두 번을 우승해야 합니다. 현재 몽골인으로 귀화한 아사쇼류가 요코스나입니다. 아사쇼류는 데뷔 후 20번째 우승을 한 요코스나입니다. 정말 잘생겼습니다. 물론 피부도 좋습니다. 특히 스피드와 기교가 뛰어납니다."

91년 이후 요코스나에 오른 선수 중 가장 인상 깊은 선수는 '다까노하나'라는 것.

"다까노하나와 와까노하나는 형제입니다. 당시 둘 다 명성이 있는 선수인데요. 이들은 다른 스모선수에 비해 보통 체구를 가졌습니다. 다까노하나가 그보다 두 배의 몸집을 가진 하와이 출신 아께보노, 무사시마루, 고니시키 등의 선수들을 이겼습니다. 바로 95년 경기인데요. 이 모습을 보고 스모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다까노하나는 95년 1월 18일 요코스나로 등극해 2003년 1월 22일 65대 요코스나로 은퇴했습니다. 그는 총 22번의 우승 기록을 남겼습니다."
 
▲ 15년간 모아둔 기록지. 기록지 표지에 평성이라고 돼 있는 것은 일왕 즉위년으로 평성18년은 2006년을 뜻한다.     © 대자보 김철관

이기순 할머니는 선수의 관찰 능력도 매서웠다. "먼저 동쪽 모서리에서 선수가 소개돼 나오면 곧바로 서쪽 모서리 선수가 소개돼 나오는데 바로 다음 날은 반대로 서쪽선수가 먼저 소개돼 나오고 동쪽이 나중에 나옵니다. 선수들이 으례 물을 입가심하고 소금을 뿌리는 데, 물은 마음을 깨끗히 하고 소금은 악귀를 쫒아 내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15년간 스모경기를 관람하면서 궁금한 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93년 이후 출전 선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93년에는 36명의 선수가 출전했는데, 96년은 40명이 출전했어요. 그리고 2004년에는 42명이 출전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42명의 선수가 리그전을 펼치면서 15일 동안 싸웁니다. 앞으로 또 늘어날지 모르지요. 저도 궁금합니다."

그는 스모와 씨름을 한마디로 비교했다. "씨름은 힘으로 쓰러 뜨려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근력이 필요한 경기입니다. 반면 스모는 경기장 밖으로 내밀어야 승리를 하기 때문에 기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둘 다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스모 경기를 관람하면서 성과를 꼽으라면 단연 일본말을 쉽게 배운 것이라고 피력했다. "스모 경기 각각의 상황들을 기록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한참 텔레비전을 보고 듣고 하니까 일본말이 저절로 되더군요. 일제시대인 아주 어린 나이에 일본어를 배웠습니다만 그 이후 배운 적이 없었고요. 처녀 때 은행을 조금 다니다가 해방되던 45년에 결혼해 집에서 살림하다보니 일본어를 까먹었지요. 65세부터 다시 스모를 통해 일본어를 알게됐고 이제 제법 잘합니다."

그는 식민지시대 사고로 인해 일본을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스모 같은 것은 이웃나라 문화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스포츠 문화 분야에서도 우호분위기 조성됐습니다. 이제 일본의 전통 민속 문화도 함께 피부로 느끼면서 상호 이해 증진과 문화교류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가 좋아한 스모도 한몫 작용했으면 합니다."
 
▲ 이기순 할머니가 그에게 한국무용을 가르친 홍윤선 전 리틀엔젤스 단장과 함께 스모 잡지를 보고있다. 이기순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를 만큼 두 분의 친분이 돈독하다.     © 대자보 김철관

지난 2004년 2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스모경기를 직접 관람하기도 했던 그는 두 달에 한번 열리는 스모경기 분석이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또 다른 재미는 한국무용이다. 스모를 보고 암기해 재미를 느끼듯이 한국무용에 관심이 많다. 71세에 인근 문화원에서 한국무용을 시작해 지금 상당한 수준에 있다는 것.

10여 년간 할머니를 가르친 무용가 홍윤선 선생은 할머니를 두고 음악을 이해하는 춤꾼이라고 귀띔했다.

홍 선생은 "한국 무용도 춤동작이 많은데 할머니는 음악을 이해하면서 춤을 추니까 어색하지 않습니다. 한국무용은 장단과 장단사이에 간지를 이해하면서 춤을 춘다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을 이해하면서 훌륭히 소화해 냅니다"라고 밝혔다.

이기순 할머니는 지난 2003년 10월 남편을 여의고 슬픔에 잠긴지 두 달 만에 용기를 내어 공개석상에서 춤을 선보이기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만큼 한국무용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 해 12월이었어요. 송파문화의 밤 행사가 있다면서 지금까지 갈고 닦았던 실력을 선보이라는 제의가 들어 왔습니다. 특히 홍윤선 선생님이 춤을 선보였으면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날 무대에 섰는데도 이상하게 떨리지 않았어요. 한국 전통무용인 호남살풀이 춤을 선보였습니다. 참석한 관람객들이 다들 좋아하더군요." 
 
▲ 이기순 할머니는 10여년동안 홍윤선 무용가에게 한국무용을 배웠다. 요즘도 일주일에 한번(월요일)은 꼭 무용을 그에게 배우고 있다. 이기순 할머니는 홍윤선 선생을 친딸처럼 여기고 있다.     © 대자보 김철관

스모광 이기순(82) 할머니는 작고한 동갑내기 고 장용순(2003년 10월 작고) 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현재 미국에 있는 장남은 환갑(60)을 맞았고, 바로 밑 딸이 59세, 막내 아들이 55세란다. 살림만 하던 그가 스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1년 위성방송의 도입이었다. 당시 65세. 스모에 관심을 가진 그는 지금까지 스모와 관련된 사항들은 누구 못지않게 많이 알고 있는 것.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스모 분석을 하겠다고.

특히 한국무용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열심히 춤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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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19 [10: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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