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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툭' 타고 터미널 가는 길 예쁜 여인 눈웃음
[버마 난민촌을 가다 13] 치앙마이행 놓치고 방콕행 9시간 버스 올라타
 
최방식   기사입력  2006/10/22 [22:05]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며칠간의 여행에 피곤했었던 것일까? 일행은 오랜만에 곤한 밤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애초 토요일까지 메솟에 머물며 여러 사회단체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헌데 일정을 변경해 방콕에 있는 살라이 톤 딴 박사를 방문하려니 항공권에서 말썽이 생겼다. 천직씨는 다른 난민 캠프를 하나 더 방문하고 원래 여정대로 귀국비행기를 타겠다고 해 별문제가 없었다.

서울의 한 여행사가 항공권을 예약했고, 토요일 치앙마이에서 방콕을 경유해 서울로 가는 여정이었다. 헌데 연락해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일정만 바꾸겠다고 하니 '변경불가' 티켓이란다.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항의해봤지만 "티켓 받을 때 명기된 것들을 잘 읽어봤어야 하지 않느냐"며 '방귀 낀 놈이 성' 내는 격이다.
 
비행기편 변경하려니 '방귀 낀 놈이 성'

▲태국에 가면 볼 수 있는 택시 '톡톡' 오토바이를 개조해 3륜차로 만든 것. 요금기가 없어 사전에 확인해두지 않으면 바가지를 쓰기 일쑤다.  
 
종순 형과 나는 고민 끝에 치앙마이 공항에 가 어떻게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알아뒀던 치앙마이행 버스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호텔로비로 나왔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타기 위해서였다. 택시가 왔다고 해 나가보니 우리가 아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오토바이 뒤편에 짐을 놓고 서넛이 가까스로 앉을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다. '툭툭'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용량이 적은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3명이 타니 엔진소리가 힘겹고 시끄럽다. 이리 저리 시내를 벗어나 달리는데 뒤에 예쁜 태국 여성 한명이 1인용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 온다. 손을 흔드니 그녀도 눈웃음을 친다. 여행객인 걸 알아본 모양이다. 조금 뒤 그녀는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고, 엔진굉음을 참아내며 한참을 달리니 치앙마이행 버스 터미널이다.

하루에 2번 운항하는데 오전 8시 30분차가 막차다. 30여분 남아 표를 구하고 여유 있게 아침까지 때울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말썽이 생기고 말았다. 호텔 안내인에게 물어 치앙마이까지 갈 태국 바트화를 남겨두고 있었는데 매표소에서 보니 가격이 다르다. 모자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다 털어봐도 안 된다. 환전소를 물으니 도심의 은행에 가야한단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담. 막차는 놓치게 생겼고, 다음 차를 타려면 정확히 24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맥이 빠져있는데 종순 형이 아예 방콕까지 버스를 타면 어떠냐고 그런다. 방콕 가는 표를 물으니 방콕행 터미널은 다른 데 있단다. 어쩔지 몰라 우릴 태우고 온 그 툭툭택시 운전자에게 물으니 아마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마침 치앙마이에서 방콕 가는 비행기편도 확보가 안 된 상황이어서 그리해보기로 하고 먼저 환전소를 찾았다.
 
바트화 모자라 치앙마이행 버스 놓쳐...
 
▲메솟의 중심가. 버마와 태국의 교역도시라 그런지 태국에서는 꽤 큰 상권을 가지고 있다. 일행은 이곳에서 1박2일을 보내고 일정을 바꿔 방콕으로 직행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주변으로 다시 돌아왔다. 은행 앞에 오니 아직 문을 열기 전이다. 그 툭툭 운전자는 기다리겠다고 한다. 우리는 은행 문 앞에 털썩 주저 않아 20여분을 기다렸다가 첫 번째 고객으로 환전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그 택시를 타고 방콕행 터미널로 향했다. 택시비가 굉장히 비싸다. 방콕행 버스비보다 비쌌다. 그런데 어쩌랴. 호텔에서 소개해 그리 한 것인데. 나중에 알고보니 바가지 요금을 피하려면 사전에 협상을 잘 벌여야 한다고 했다.

헌데 방콕행 터미널은 도심을 벗어나 벌판 한 가운데 있다. 주변엔 식당 한둘이 보일 뿐 아무 것도 없다. 다행히 방콕행 막차가 있다. 헌데 운행시간이 8시간 30분이란다. 어쩌랴. 참고 타야지. 10시 30분 차였던 것 같다. 표를 사고 아침을 해결하러 한 식당에 들렀다.

좋아하는 쌀국수를 시켰다. 늦은 아침인데도 주변에 식당이 없어서 그런지 꽤 손님이 모여 있다.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고 앉아있는데 뒤에 앉은 태국인 일행이 떠듬거리는 영어로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그 나라가 어디 있냐고 묻는다. 답답한 마음에 중국과 일본 사이에 한국이란 나라가 있다고 하니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태국 등 서남아시아 나라들은 우리와 같은 아시아에 속해있으면서도 좀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이다. 열대기후가 그렇고, 지리적으로도 동북아와는 꽤 멀다. 영국(또는 프랑스) 식민지 경험이 미국&일본의 지배를 받은 우리와 좀 다르다. 게다가 태국 등에 한국 관광객이 늘며 우리나라를 아는 이들이 좀 늘었다곤 하지만 자동차, 전자 등 한국제품이 이곳 시장에는 아직 제대로 진출하지 않은 듯싶다. 어딜 가나 일본 냄새가 진동한다.

▲ 살라이 톤 딴 박사. 일행은 메솟에서 버마 민주화운동 단체를 여러군데 더 순방할 예정이었으나 살라이 박사의 근황을 확인해야 했기에 일정을 변경해 그를 만나러 방콕으로 발길을 돌렸다.    © 최방식
그러니 관광지나 외교가 사람들이 아니면 사실 한국을 알 리가 만무한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좀 황당했던 것은 '88올림픽', '2002월드컵'을 얘기하면 지구촌 어딜가나 대충은 한국을 기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들이 모른다고 하니 씁쓸할밖에. 누군가 '아이보리코스트', '안도라', '세인트키츠앤드네비스'라고 하면 알겠는가. 지구촌에 있는 엄연한 나라인 지를.
 
한국 모르는 태국인들과 아침 들며 대화
 
필자가 뉴욕에 있을 때 이야기다. 어떤 모임이 있어 퀸즈 어딘가에서 모였는데, 예쁜 유럽여인이 한명 눈에 띄었다. 낯선 사람과 대화에 미숙한 한국인 아니랄까봐 대뜸 "어디 출신이지요?"라고 첫인사를 했다. 들릴 듯 말듯 "조지아"라고 해 미국의 조지아주 출신인줄 알았다. 헌데 발음이 이상해 다시 물어보니 터키와 러시아 사이에 있는 카프카스 지방의 '그루지아'(독립국가연합 소속 나라)라고 한다. 당시엔 이 나라를 잘 몰라 "그루지아가 어디에 있지요?"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인은 얼마나 속상했을꼬. 아님 속으로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그랬을 수도 있고.

난 방콕 일정이 걱정돼 살라이 톤 딴(78)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로밍 휴대폰이 메사량을 비롯한 정글지대에선 그저 짐만 되더니, 메솟에서는 쓸모가 있다. 현지인들 휴대폰은 되는데 로밍폰만 그 막대(수신가능지역)가 뜨질 않았다. 마침 전화를 받는다. "한국에서..." 어쩌고 설명하려는 데 대뜸 "안다"며 어디냐고 묻는다. 오후 6시쯤 방콕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말하니 "환영 한다"며 도착해서 전화하란다. 만나자는 것이었다. 휴!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주문한 쌀국수가 나왔다. <다음 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sbchoice@yahoo.com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지난 7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태국과 버마 국경지대를 다녀왔다. 군부정권의 폭정을 피해 40여만명의 버마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 사람들이 그냥 뒤섞여 사는 여느 국경 도시와는 처지가 사뭇 다르다.

특히 9개 정글 속 캠프에 모여 사는 30여만명의 버마인들은 수용소 포로와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다.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폭정을 피해 국경을 넘었건만 태국정부마저 이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정글 속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서 그렇다.

48년 독립과 소수인종 탄압, 45년여의 군부독재, '버마의 5·18'이랄 수 있는 '8888민중항쟁'과 정글 속 학생들의 무장투쟁, 90년 총선과 10년 넘게 거듭되는 아웅산 수지여사의 가택연금 및 세계 속의 NLD, 그리고 버마인들의 오랜 침묵과 저항을 이 번 기행을 통해 다뤄보려 한다. /편집자
 
[난민돕기 캠페인]

"한국 영화·드라마 담긴 CD·비디오테이프·DVD 모아요."
 
국경지역 정글 캠프 안에 갇혀 사는 20여만명의 버마 난민들은 TV도, 영화도 볼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이 나오질 않고, 영화관이 없으니까요. 캠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요.

하지만 내부 발전시설로 전기를 생산해 비디오나 컴퓨터(온라인은 불가)는 사용할 수 있답니다. 이게 캠프 밖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셈이죠.
버마 난민캠프에도 한류 바람이 불었는지 남녀노소 한국의 영화, 드라마, 공연비디오(가수) 등을 좋아한답니다. 자치기구 대표를 비롯해 보는 이 마다 보내주면 고맙겠다고 했습니다.

뜻이 있는 분들이 먼저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자기 또는 친구 집, 사무실 등을 뒤져 먼지 쌓인 영상자료들을 모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일정한 양을 모으면 현지로 보내겠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인모임(공동대표 림효림, 유종순)
-문의 011-797-7645(평화사랑, 이메일은 bschoi5@naver.com)
-한국NLD를 후원하실 분도 찾습니다.(매달 1만원 계좌이체)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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