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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들 못믿겠어, 순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버마 난민촌을 가다 4] 2시간이면 된다던 여정, 10시간이 지나도 ...
 
최방식   기사입력  2006/10/02 [17:45]
2시간 길이라던 산악운전은 무려 10시간이 넘게 계속됐다. 정글 산악길은 정말이지 예상을 훨씬 초월한 것이었다. 45도 가까운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길이 떨어져 나간 도로를 간신히 통과하고, 진흙에 미끄러져 차가 흙 속에 처박히고, 언덕길 구덩이에 빠져 바퀴만 헛도는 차를 끌어올리기 위해 모두가 내려 진흙을 파내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북부 정글엔 계절이 없다. 항상 열대 더위다. 그래서 거의 모든 집들에 문이 없다. 벌레 등을 피하기 위해 2층에 산다. 원두막을 생각하면 된다. 1층은 가축을 기르거나 빨래를 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1년 중 장마철이 딱 한 달이란다. 우리가 도착한 때가 바로 그 장마철이었다. 그러니 험한 정글 길이 더 힘들 수밖에...
 
설상가상이었나? 진흙탕 속에서 펑크까지
 
설상가상이었나? 몇 번 진흙탕 언덕길에서 용을 썼던 차가 이상하다. 장맛비 속에 모두 내려 진흙탕에 처박힌 바퀴를 살피는데 운전자가 펑크란다. 험한 흙탕을 달리다보니 휠과 타이어 사이에 진흙이 끼여들어 그리됐다는 것이다. 태국인 운전자가 30분간 바퀴를 갈아 끼웠다. 막 출발하려는데 운전자가 다시 내린다. 체인 없이는 못 올라간다는 것이다. 진흙탕 속에서 네 바퀴에 체인을 채우느라 또 30여분을 보냈다.
 
▲메사량에서 멜라웅 캠프로 가는 길은 형극의 연속이었다. 2시간 길이 무려 10시간이나 걸렸다. 장마철이러서 그런지 가파른 언덕길이 수렁으로 바뀌어 하루종일 진흙탕과 악전고투를 벌어야했다.     © 최방식

그 깊고 험한 산 속에도 사람은 오간다. 1시간여 차를 수리하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탄 일행이 다가온다. 앞에는 앳된 여인이 발로 진흙탕을 이리 저리 헤치며 오토바이를 운전해 다가온다. 뒤에는 남편인 듯한 남자가 뒷자리에 꼬마둥이 하나를 태우고 역시 비틀비틀 다가온다. 그도 우리를 보고 씩 웃고는 천천히 지나친다.

완전군장을 했다는 게 맞다. 그리고 차가 다시 출발했다. 2시간 여를 왔는데 험한 진흙탕 언덕 몇 개 올라온 것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차가 진흙투성이로 바뀌었다. 뒤에 탔던 이들도 진흙인간이다. 차가 미끄러질 때마다 진흙 속을 오가며 괭이로 흙을 파내고 밀리는 차를 뒤에서 밀기를 거듭하다보니 온몸에 진흙이 들러붙은 것이다.

그렇게 5시간을 가니 전통 가옥이 몇 채 보인다. 그 집 앞길은 역시 진흙 언덕이다. 너무 힘들고 시장했던지 운전자가 쉬어가잔다. 라 한도 점심을 먹고 가잔다. 흙구덩이에 파묻힌 차를 간신히 한쪽으로 옮겨놓고 그 집에 올랐다. 아침도 못하고 왔던 터라 시장했고 뭔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웬걸, 가게에는 음료수와 과자봉지 몇 개가 전부다.
 
진창길 오르느라 사람도 차도 진흙투성이
 
▲태국과 버마 국경지역에 자리한 멜라웅 캠프. 민주화운동을 하다 쫓겨났거나 독립운동을 하다 피난한 카렌족 2만4천여명이 모여산다. 안내인 나한     ©최방식
봉지 두어 개에 담아온 주먹밥과 닭 날개 하나씩이 배당됐다. 손을 씻고 주먹밥 한줌 떼어 입에 물으니 입맛이 소태같다. 맨밥이라 그런가보다 생각해 닭 날개(튀김)를 조금 떼어먹어 보지만 쓴맛은 그대로다. 목이 메어 물만 벌컥벌컥 마신다. 앞으로 얼마나 더 고생을 해야 할지 모르니 거친 밥이라도 좀 더 떠야 되겠다는 생각에 맨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다시 5시간에 걸친 악전고투... 어떻게 지나왔는지 말로다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거의 9시간 여를 왔을까 옆에 앉은 호주인 마크가 곧 목적지라고 한다. 웬걸 30분을 더 달리고 이제 다 왔냐니까 조금 더 가면 된단다. 다시 30분...

우리말 알아듣는 이 없다는 것을 아는 종순 형이 불평을 쏟아놓는다. "임마들 거짓말 심하네. 얘네들 못 믿겠어. 처음 2시간(90여km)이라고 했는데 이게 뭐야. 우리 치앙마이에서 메사량 올 때도 그 운전자 3시간 어쩌고 했는데 5시간 걸렸잖아. 순 거짓말쟁이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생전 처음 거친 산악운전을 경험하며 지쳐 늘어져있는데 정글 속에 집들이 하나둘 보이고 강아지와 닭 몇 마리고 오간다. 앞을 보니 검문소 바리케이드(차단막대)가 눈에 들어온다. 북부에서 중부로 이어지는 태국과 버마 국경에 자리한 9개 버마 난민촌 중 하나인 멜라웅 난민캠프의 나들목에 당도한 것이다.
 
점심에 맨 주먹밥 한 입 떼는데 쓰디쓰기만...
 
태국 경찰이 언론인이면 시비를 걸 수 있다고 해 카메라 등 취재 장비를 의자 밑에 숨겼다. 혹시 몰라 메사량에 본부가 있는 '북부 카렌족 난민위원회'로부터 난민촌 대표에게 보내는 출입허가 요청서도 받아뒀다. 서류상 우리의 방문목적은 '영어교육'이었다. 물론 형식적인 서류다. 태국 경찰이 맘에 안 들어 거부하면 캠프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

헌데 태국인 운전자가 흙투성이가 된 차를 길 한가운데 세우고 검문초소로 다가간다. 검문초소에 올라 한참을 설명하는데 막대가 올라간다. 누가 왔는지 확인도 안하고 운전자가 둘러댄 말만 듣고서는 귀찮다는 듯 통과시켜 준 것이다. 뒤에 태운 게 진흙투성이여서 사람인지 물건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을 테지만 말이다.  <다음 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편집위원) sbchoice@yahoo.com
 
  © 최방식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지난 7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태국과 버마 국경지대를 다녀왔다. 군부정권의 폭정을 피해 40여만명의 버마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 사람들이 그냥 뒤섞여 사는 여느 국경 도시와는 처지가 사뭇 다르다.
특히 9개 정글 속 캠프에 모여 사는 30여만명의 버마인들은 수용소 포로와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다.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폭정을 피해 국경을 넘었건만 태국정부마저 이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정글 속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서 그렇다.
48년 독립과 소수인종 탄압, 45년여의 군부독재, '버마의 5&18'이랄 수 있는 '8888민중항쟁'과 정글 속 학생들의 무장투쟁, 90년 총선과 10년 넘게 거듭되는 아웅산 수지여사의 가택연금 및 세계 속의 NLD, 그리고 버마인들의 오랜 침묵과 저항을 이 번 기행을 통해 다뤄보려 한다. /편집자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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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0/02 [17: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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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주 2006/10/03 [12:59] 수정 | 삭제
  • 도와주고는 싶은데 손이 안 닿아서 도와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태국정부에 요청해서 돈을 내고 땅을 빌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땅위에 수용소를 세우죠. 관리는 한국정부에서 위탁한 누군가가 합니다. 다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으니,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본적인 의식주와 교육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