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방식의국제뉴스레이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마누라 등쳐먹는 한국건달, 나하고 똑 같네"
[버마 난민촌을 가다 3] 픽업에 아홉 명 태우고 멜라웅캠프로 이동
 
최방식   기사입력  2006/10/01 [09:28]
조금은 긴장 속에 버마학생군민주전선(ABSDF) 본부 2층 방에서 첫 밤을 보냈다. 가장 큰 걱정은 더위와 모기였다. 뾰쪽한 수가 없으니 그냥 참아야 할 터인데 라 한이 작은 선풍기를 하나 넣어 준다. 모기는 여름철이면 어디서든 공포의 대상인데 다행히 누군가 바르는 모기약을 가져왔다. 팔, 다리에 바르니 끈적거려 느낌이 좋지 않다. 하지만 어쩌랴. 모기가 무서운데...
 
빈속에 커피 한잔 마시고 10시간 고행길
 
7월 17일 아침 눈을 뜨니 벌써 8시다. 라 한이 9시쯤 멜라웅 캠프로 출발한다고 했으니 한 시간 남짓 남아있다. 저녁에 도착하다보니 캄캄해 못 봤던 농가를 구경하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 유럽식을 따른 듯 현관 양식을 가미한 2층집이다. 1층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고, 곁에 창고형 건물을 두어 일부는 부엌과 식당으로, 나머지는 축사로 사용하고 있다. 앞마당에는 붕어와 잉어가 노니는 연못, 뒷마당에는 연꽃이 핀 작은 늪이 보인다.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널찍하고 아름답다. 전통가옥이란다.
▲멜라웅 캠프로 출발하기 전 메사량의 한 민가에서. 종순 형(외쪽부터 순서대로), 00, 나한(버마학생군연맹 간부), 그리고 다른 한 버마인.     © 최방식

구경에 열중인데 라 한의 목소리가 들린다. 커피 한 잔 하란다. 밥이라면 몰라도 식전부터 웬 커피냐는 생각을 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전통인가 싶어 커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밥은 언제 줄까 궁금해하는데 오늘 일정을 어찌할 건지 묻는다. 잘 모르겠다며 어찌하면 좋겠냐고 되물으니 멜라웅 캠프로 간단다. 100km 떨어져 있으며 2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외국인 한 명과 함께 캠프로 가며 마켓에 들러 음식을 사 가지고 갈 예정이라며 출발하잔다. 밥도 안주고서...

어제 공항에서 우리를 데려온 그 차를 다시 타나보다 하고 현관으로 나오니 차가 다르다. 4륜구동의 픽업(반트럭)이다. 치앙마이에서 이곳으로 오면서 많이 봤다. 트럭 뒤편에 짐과 함께 여러 사람을 태우고 달리던 바로 그 픽업이다. 조수석에 김천직씨가 앉고, 나와 종순 형은 뒤편 간이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나머지 4명은 뒤 짐칸에 탔다.

외국인 한 명을 데리러 다른 농가로 갔다. 멜라웅캠프 비즈니스 스쿨 교사로 있는 호주인이다. 정작 그가 나타났는데도 뭘 준비하는 지 1시간여 더 머물렀다. 호주인과 잡담이 이어졌다. 훤칠한 키에 53살의 마크라는 남자였다. 3달 전 친구들의 소개로 캠프 안에 있는 비즈니스 스쿨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월급은 없으며 부인에게 손벌려가며 살고 있단다. 자원봉사 동기를 물으니 "그냥 도우려고(Just help)"란다.
 
호주인 자원봉사자 마크, "허니 보고싶어..."
 
입담 좋은 종순 형이 끼여든다. "한국에선 돈 안 벌고 일이 바쁜 사람을 건달이라고 해요. 내가 바로 건달이거든요. 마누라 등쳐먹고 살지요." 영어로 통역 좀 해달란다. 애써 설명하니 마크 대답도 가관이다. "나하고 똑 같네." 그리곤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오 허니, 걱정 마. 보고 싶어..."

농담이 오가는데 라 한이 가잔다. 반트럭 뒤편 간이 의자에 마크가 끼어 들며 세 명의 고생은 시작됐다.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릎은 앞좌석과, 엉덩이는 옆 사람 엉덩이와 꽉 끼었다. 라 한의 말 데로 2시간이었으면 그래도 참을 수 있었으련만...

메사량 전통시장에 들렀다. 먹을 물과 음식을 사야 한단다. 우리가 먹어야 할 음식인줄은 몰랐다. 가는 길에 음식점에 들러 먹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으니 말이다. 망설이고 있는데 라 한이 주먹밥을 3봉지 산다. 그리고는 뭘 사겠냐고 묻기에 닭 날개 8개를 고르니 라 한이 찐 땅콩을 한 봉지 샀다. 그리고 10시간 악전고투의 산악행이 시작됐다. 아무것도 모른 채 출발한 것이다.

▲버마와 태국을 가르는 강. 우기로 물이 넘쳐난다. 강건너 숲속에 희미하게 버마 군캠프가 보인다. 멜라웅 캠프 가는 길에 잠시 검문소에서.     © 최방식

 옴짝달싹도 어려운 상황에서 30분여 달리니 차가 덜컹거린다. 비포장도로가 시작된 것이었다. 마크가 이 정도는 괜찮은 편이라고 할 때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다시 포장도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체크 포인트’(검문소)라며 잠시 쉰다고 했다. 지루한 장마는 계속되고 있었고 일행은 내려 담배를 피워 물고 주변풍광을 살폈다.

거대한 강이다. 장맛비로 불어서 그런지 흙탕물이 소용돌이친다. 버마 땅이라며 강 건너 초소 한 곳을 라 한이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허름한 집 몇 채가 보인다. 아무런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지만 라 한과 그의 친구들 얼굴은 사뭇 다르다. 버마 군부에 쫓겨 국경을 넘어 이 곳 난민촌까지 이주한 이들이니 분노와 회한이 왜 아니 들겠는가.
 
주먹밥에 닭튀김 몇 개 사들고 정글 속으로
 
갑자기 차가 멈춰 선다. 검문소를 지나 숲 속으로 들어서 조금 덜컹거리나 싶더니 조용해 모두들 밖을 주시한다. 장마에 길 반쪽이 떨어져 나갔는데 내려다보니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다. 계곡에 처박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데 어느덧 차는 그 곳을 지나고 있다. 까무잡잡한 30대 후반의 태국인 운전자인데 "뭐 그런 걸 가지고..."라는 듯 그냥 지나친다. <다음 호 계속>

최방식(국제전문기자, 본지 편집위원) sbchoice@yahoo.com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는 지난 7월 16일부터 일주일간 태국과 버마 국경지대를 다녀왔다. 군부정권의 폭정을 피해 40여만명의 버마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양국 사람들이 그냥 뒤섞여 사는 여느 국경 도시와는 처지가 사뭇 다르다.


특히 9개 정글 속 캠프에 모여 사는 30여만명의 버마인들은 수용소 포로와 같은 삶을 강요받고 있다. 버마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소수인종이라는 이유로 폭정을 피해 국경을 넘었건만 태국정부마저 이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정글 속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서 그렇다.

48년 독립과 소수인종 탄압, 45년여의 군부독재, ‘버마의 5&18’이랄 수 있는 ‘8888민중항쟁’과 정글 속 학생들의 무장투쟁, 90년 총선과 10년 넘게 거듭되는 아웅산 수지여사의 가택연금 및 세계 속의 NLD, 그리고 버마인들의 오랜 침묵과 저항을 이 번 기행을 통해 다뤄보려 한다. /편집자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10/01 [09:2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