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대중 정부 초기부터 노무현을 진지하게 대통령감으로 생각했다. 노사모에서 바지런하게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대통령 선거를 두달 앞두고 창당한 개혁당에 원서를 냈다. 정몽준이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던 투표전야엔 밤새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불법살포된 유인물이 있는지 살폈다. 대선 정국이 우여곡절끝의 승리로 귀결되자 환호했고, 설렘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나는 2년여간 정치참여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옛 친구들의 지난 2년
'옛 친구'들의 행적부터 되짚어야겠다. 옛 친구들은 개혁당과 신당을 준비하는 본부, '국민의힘' 등에서 움직였다. 나는 그들에게 눈부신 활약을 바랐지만, 돌아온 것은 눈꼴시림이었다.
개혁당이나 개혁신당을 추진하던 세력은 지혜도 뚝심도 없이 갈팡질팡했다. 유시민은 "백년갈 정당"임을 표방하면서도 민주당에 기웃거렸고, 그가 보궐선거에 출마할 때도 개혁당은 독자적으로 싸울 것인가, 민주당과의 연합을 현실적으로 수용할 것인가, 라는 갈림길에서 뒤늦게야, 그것도 애초의 호언이 뒤집힌 채로 후자를 택했다. 민주당 신주류가 한도 없이 신당출범을 미룬 탓도 있겠지만, 개혁당은 정계개편 과정에서 너무나 무력했다. 개혁당이 전술적으로라도 당대당 통합을 요구하는 길을 버리고 해체를 결정한 뒤 열린우리당에 합류하던 날, 나는 며칠동안 입맛이 썼다.
개혁당이 열망으로 출발해 실망으로 끝났다면, 내게 '국민의힘'은 우려감만을 안기는, 차라리 없었으면 했던 단체였다. 노무현의 팬클럽에서 생활정치의 네트워크로 변신을 꾀하고자 했다는 '국민의힘'은 노사모 출신들이 많다는 점에서나 대통령 노무현을 거스르지 못하는 성향에서나 새롭지도 진정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정치인들이 그들의 구린 구석을 해명하게끔 다그쳤을 땐 나았다. 나는 국민의힘이 총선후보 지지운동에 들어갔을 때 종일 넌더리를 냈다. 그들이 소위 '보석 후보'의 명단에 열린우리당 후보의 이름 사이사이에 민주노동당, 한나라당 후보의 이름을 넣은 것은 구역질나는 짓이었다. 그 단체의 대표가 열린우리당의 총선 후보로 나서 당선된 것은 차라리 희극이었고 말이다. 지지운동을 벌일 거라면 열린우리당내에 쳐들어가서 공천 및 낙천운동을 하는 편이 옳았다.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 참여정부의 희한한 '개혁 드라이브'가 익숙해지던 즈음에 나는 옛 친구들과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기로 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도 접었다. 바야흐로 그 정당에서 옛 친구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참정연’이라는 이름으로, ‘국참연’이라는 이름으로. 싸움은 이리저리 뒤엉켰고, 옛 친구들은 종전의 적뿐만 아니라 자기네들끼리도 험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실용vs.개혁’, ‘친유vs.반유’... 쇼는 계속된다
유시민이 민주당 일반의 혐오를 불러일으키면서까지 개혁신당론을 설파했을 때나, 끝내 개혁당을 해체하고 열린우리당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가 이렇게까지 힘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 그는 선거기간 이전부터 같은 참여정치연구회 소속이라는 김원웅과 마찰을 빚었고, 김현미 등의 공격을 받으며 송영길과 정면충돌했으며, 당비체납으로 시선을 집중시켰고, 김영춘의 타박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어 상임위원이 아닌 당의장까지 노리고 있다. 그는 정동영계를 적대시하는 동시에 김근태계와 연대하겠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은 2007년 대통령선거까지 파장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유시민은 흐지부지 끝날 듯하던 전당대회에 상당한 관객을 모은 장본인이다.
열린우리당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실용 대개혁, 정동영 대김근태(혹은 당권파 대재야파) 등의 갈등을 겪었다. 이에 친유시민이냐, 반유시민이냐, 를 두고 벌어지는 다툼은 판을 점입가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당내의 정파대립은 불가피하고, 때로는 장려할 만한 대립이지만, 대립의 여지나 필연성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이념과 정책에 따른 경쟁을 뒷전으로 돌리는 악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서프라이즈나 데일리서프를 비롯한 친노 매체는 물론 포털사이트에서도 개혁적 네티즌은 개혁파/재야파/친유시민을 고르는 것이 옳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도토리 키재기가 유의미하다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정말로 개혁파/재야파/친유시민이 실용파/당권파/반유시민 진영의 도덕성을 압도하고 있는가. 문희상, 한명숙, 송영길도 어찌 되었건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다. 240시간 의총에 대해 송영길은 단지 그 당시에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수작일 뿐이라고 폄훼했다.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크로스보팅이니 전원위원회니 하는 전술을 이리저리 부려온 유시민이 송영길보다 더 개혁적인 인사라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이라크파병에 앞장 선 장영달이 다른 386 의원들과 함께 대미비판성명을 발표한 송영길보다 더 지지할 만한가. 개혁적인 인사를 뽑으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하지만, 문희상도 김대중정부가 나아갈 노선을 제시했고 왕당파격인 박지원에게 밀려나버린 왕년의 개혁파 아니었던가. 예선탈락한 임종인 의원이 출마선언에 담은 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개혁은 말로하는 주장이 아니라 어떤 사안에 어떤 행보를 보여왔는가로 봐야 한다. 경제분배정책에서 노동자 농민을 위해 투표하지 않고, 용산기지 이전같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자주적 해결에 동참하지 않고, 이라크 파병에 찬성한 분들은 개혁이라는 부분에서 저와 차이가 있다”(노사모나 국참연이 임종인을 발벗고 돕지 않는 것은 그들의 진정성이 고갈했다는 방증이다.)
그래도 나는 이번 그들의 전당대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투닥거림을 구경하려는 유혹이 참견을 충동질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미련을 못 버리는 바람에 내 일처럼 여겨져서도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고, 그 당은 한국의 집권당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반대하는 이유
내가 만일 열린우리당원이고 전당대회에 참여할 권한이 주어진다면? 그래서 두표를 행사하게 된다면? 왕년의 같은 당이었던 유시민? 유시민이 정치권에서 달변을 과시한 것 이외에 특별히 긍정적인 기억이 없다. TV토론하라고 국회의원 뽑아주지는 않았다. 추잡스러운 선동으로 진보정당 표를 억지로 앗아오라고(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유시민의 발언을 거꾸로 따르면 열린우리당 지지자 역시 민주노동당으로 금세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내세운 것이 아니다. 콜레라와 페스트 운운하며 참여정부의 이라크파병을 합리화하라고 밀어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유시민의 컨텐츠는 오로지 당내 민주주의다. 그런 유시민에게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을 권한다. ‘아래로부터의 힘’이 세상을 개선할지 망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러시아 볼셰비키도 참여민주주의로 충만한 분방한 조직이었다. 기껏 유시민식 당내민주주의는 정부여당의 우경화를 감싸는 방패막이, ‘민주적 보수화’의 도구에 불과한가(참고로 노무현은 룰라가 아니고, 열린우리당은 원래 진보적이었다가 현실에 맞춰 보수화한 게 아니다).
80년대의 아들 송영길? 한때 나를 비롯해 정치개혁을 열망한 유권자와 네티즌들이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 떠올려야 할 것은 그가 학교선후배 사이란답시고 김우중에게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기억이다. 해당 학교에 적(籍)과 동시에 적(敵)을 둔 나로서는 특별히 더 욕지기 나는 짓이다. 나는 그것이 소위 386운동권 문화의 한 폐해라고 본다. 386세대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너무나 정치적이었다. 김민석이나 원희룡, 그도 모자라 신지호나 김영환과 견줄 때라야 분노가 가라앉을 만큼 열린우리당의 386은 학생운동 시절에나 보수정당에 안착한 작금이나 적잖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닭짓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녀사냥에 걸린 이철우 의원이 미리 자신의 예전 편향성을 공개적으로 반성했다면 그 지경까지 갔을까. 386세대는 80년대에 광주항쟁에서 유월항쟁까지 달려간 것만 자랑하지, 주사가 어쩌고 혁명이 저쩌고 했던 사연은 숨긴다. 대통령 측근 안희정이 반미청년회 출신인 걸 인지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송영길이 단기필마로 나온 것도 아니고 그가 동료 386들과 어깨를 겯고 나온 만큼, 그와 386세대를 연계해 심판하는 것이 무정한 처사는 아니다. 진보적 개혁을 바라는 한 시민으로서, 기성정치인과 386의 차이는 고려 말기 권문세가와 신진사대부의 차이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희상, 염동연, 한명숙은 실용주의의 뜻빛깔을 심각히 오염시킨, 실사구시를 표방하면서 대중추수적 기회주의를 발휘하는 (광의의) 포퓰리스트들이므로 더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다 .
장영달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완강히 공언함으로써 중진의 약점(?)을 씻고 개혁인사로 보무당당히 떠오르는 모양이다. 전북 국회의원으로서 새만금사업을 뒷받침하느라, 국회 국방위원장으로서 이라크파병을 추진하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지만, 새만금 반대운동 땐 단식투쟁하고 파병 때는 장 의원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진 문정현 신부를 생각해서라도 난 장영달 의장 또는 상임위원에 찬성할 수 없다.
그나마 둘을 고르라면...
김두관이라고 해서 저 위의 여섯명보다 크게 나을 바도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불확실성이나 예측불가성 낮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노무현학습효과’ 때문에 지금 와선 발설하기도 뭣하지만) 인간적으로도 믿음이 간다. 일단 그는 선거에서 정책으로 승부하고 있으며, 난 그가 내놓은 지방분권과 자치의 비전에 대체로 찬동한다.
시중의 악의적 여론은 그를 ‘군수’, ‘도지사 후보’ 경력은 쏙 빼고 ‘이장하다가 님(노무현) 잘 만나서 낙하산 타고 행자부 장관된 놈’이라 부른다. 나 역시 말단공무원들이 근거도 없이 그를 욕하는 소릴 종종 들었다. 이건 장점이다. 그의 성장이 진보적 개혁을 도울 것인가는 미지수지만, 문화충격으로 한국사회를 전진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김두관은 2002년도 경남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무모하게 민주당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노무현과 YS의 회동을 힐난하는 뚝심을 보여주었다. 나는 2002년 옥천에서 열린 언론개혁 관련 토론회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상황은 노무현에게 너무나 불리했는데 김두관은 “야당할 각오를 하고 개혁신당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실명까지 거론된 껄끄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같은 당내의 퇴행적 인사를 단호히 비판했다(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자세히 옮기지는 않겠다. 녹취록도 없고). “민주노동당과 함께 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소리도 덧붙였다.
석연찮은 것은 그가 이라크파병이나 새만금사업, 국가보안법 처리 정국에서 방조하거나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던 점이다.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이라서, 나중에는 원외 인사에 유학생 신분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비겁한 변명이다. 그래봐야 공범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이 공범을 그나마 낫다고 추켜세운 까닭은 선거가 일정 부분은 지난 날의 공적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 김두관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으며, 이번 기회에 그를 당의장이나 상임위원에 올려줌으로써 좀 더 지켜보고 앞으로 꾸준히 판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김원웅도 수상쩍은 구석이 많다. 아직도 그의 발목을 잡는 공화당과 민정당, (그 다음엔 이 계보가 아닌 통합민주당에 있었다) 한나라당을 거친 그의 전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는 박정희의 ‘민족적 민주주의’ 슬로건에 반했었다고 털어놓았었다. 어찌 6.3세대인 그가 그리 여겼을까. 민정당에는 왜? 한나라당에서 나와 개혁당에 입당한 시기가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직전이었던 연유는 무얼까.
근래의 김원웅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두 다리로 걷는 정치인이다. 그의 자유주의는 괜찮은 수준이다. 사형제를 폐지하자며 TV토론에도 나왔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견지하고 있다. 반면 그의 민족주의는 매우 위험하다. 장준하, 문익환의 수준으로 규정하면 곤란하다. 그는 간도와 대마도가 ‘우리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때로는 핵보유의 필요성까지 역설한다. 그는 이라크파병과 대미굴욕외교를 반대하는 빛과 쇼비니즘이라는 그늘을 함께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내가 제껴둔 나머지 여섯보다 그나마 낫다. 첫째, 적어도 최근에는 지조있는 행보를 거듭했으므로 뒤통수 칠 확률이 적다(유시민과의 차이). 둘째, 패거리보댜는 직접적으로 당원과의 만남에 의존한다(송영길과의 차이). 셋째, 앞서 나왔듯 이라크파병 반대,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했다(임종인과의 유사함). 넷째, 그의 자주성은 여당의 상임위 테이블에 앉을 때 미중일 패권주의에 대한 안티테제 로 써먹을 법하다. 다섯째, 대전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최근 부상하는 충청권 수구신당의 기세를 억누를 도구로 사용가능하다. 여섯째, 참여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는 -그가 틈새시장을 공력할 의도를 가진 결과라도 해도- 당정 관계를 새로 정립할 것이다.
김두관, 김원웅이 당의장이나 상임위원이 돼도 내가 고개를 끄덕일 만큼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터이다. 다만 선거란 기성복을 고르는 행위와 같고, 그런 이상 조금 더 나은 두 인물로 김두관, 김원웅을 지목했을 뿐이다. 이 둘이 이겨도 환호를 터트리지 않을 것이고 져도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씁쓸하고, 또 덤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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