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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네트워크로 한강까지 희망만들겠다
[클릭!총선현장] 열린우리당 경기 연천·포천지구당 이철우 후보
 
최양현진   기사입력  2004/02/26 [10:14]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
작은 것을 소중히 하고 생활에서 배우는 사람

▲이철우 후보     ©이철우홈페이지
"한 나라의 미래를 알려면 그 나라의 아이들을 보라"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미래의 그 나라의 일꾼이며 한 나라의 대들보로 성장할 우리들의 미래이다.

한국사회의 정치에서 선거권은 만 20세에 한하여 주어지고 있다. 표에 눈이 먼 정치인들은 평소에는 청소년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 같으나 실제 어떤 정치인의 홈페이지나 지구당 사무실에도 청소년을 위한 그 흔한 게시판이나 아이들을 위한 정책 제안실이 없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은 그 싹이 뻔한 사람이다. 그저 청소년기에는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만 하고 학원가서 시험에 나올 문제만 외우면 되는 시기이다. 말만 있을 뿐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한 어떠한 활동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사실 청소년이 당장 자기들에게 표로 나타나지 않기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정치가와 정치꾼의 차이점은 정치가는 미래를 생각하지만 정치꾼은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린다. 이런 점에서 이철우는 진정 이시대가 원하는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 나갈 정치인이다.

1318 Zone의 아이들

이철우는 96년 출소 후 자신이 살던 포천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처음 시작한 일이 아버님이 만드신 작은 교회의 중,고등부 선생님이었다. 처음 시작할 무렵 아이들은 6~7명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교회 집사와 장로 등 교회 간부들의 아들, 딸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들과 어색함을 없애기 위하여 일주일에 두 세번씩 만나고 좀 더 많은 학생들을 교회 중·고등부에 다니게 하기 위하여 직접 인근지역에 나가 아이들을 만나며 전도했다. 처음 1년이 지날 무렵 아이들은 3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들과 주말이면 함께 농구를 하고 연극도 하며 아이들에게 세상을 배우고 자신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었다.

이렇게 3년을 보내고 그는 아이들에게 좀더 새로운 것을 찾아주고 싶었다. 도시의 아이들은 언제든지 자기가 보고싶은 가수의 콘써트도 가고 영화도 보면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시골 아이들은 쉽게 이러한 문화적 수혜를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락 밴드였다. 집에 있는 키보드에 낡은 드럼과 기타를 구하고 시작하였다. 조그마한 시작이지만 반응은 좋았고 아이들도 무척 재미있어 하였기에 그는 자신이 운영위원으로 있던 중리 초등학교에도 이런 락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중학교에도 아이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고 당시까지 문화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지 못한 아이들이 자신들이 만들고 연주하는 밴드에 조금씩 좋아지게 되었고 지금은 전국 최고 실력을 갖춘 밴드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의 생활의 많은 부분이 당연히 아이들과의 시간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생각을 함께 공유하며 그들이 원하는 학교를 만들어 가게 되었다.

처음 함께 시작한 아이들은 이제 어느덧 훌쩍 커버려 군대에 가고 그 동생들이 지금의 이철우의 제자이자 선생님으로 함께 하고 있다. 그런 학생들이기에 선생님에 대한 애정이 유달리 깊다. 그의 홈페이지에 가면 이들이 남긴 글들이 자리잡고 있다. 정치인 이철우가 아닌 언제나 함께하는 자기들의 선생님 이철우로...

유정회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던 늦깍기 대학생

이철우는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2살 때 지금의 포천으로 이사왔다. 주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철원에 나갈려면 20여 리 길을 걸어나와야 버스를 탈 수 있었던 시골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국회의원 선거때만 되면 돌려지던 국회의원 이름이 박힌 연필이며 공책들. 이것들을 받아든 소년의 마음속에는 국회의원이란 아이들을 위해서 선물을 가져다 주는 소중한 사람이었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또한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에서는 유신헌법은 국민의 90% 이상이 찬성한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루는 헌법이었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헌법이었다. 당연히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 대통령'은 단 한명 만이 존재하는 신성불가침한 존재였다.

그 시절 그가 새로 입학한 중학교에서는 언제나 경례를 하면서 부치는 구호가 '유신'이었다. 그 유신헌법에 의해서 임명된 국회의원인 유정회 국회의원은 선거도 안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는 청소년 시절의 희망이었다.

언제나 학교에서 일등만하던 고등학교 시절 늦은 사춘기로 방황하였고, 재수 끝에 낙방하여 바로 군대로 가야만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여름에는 농사일을 하고 겨울에는 서울에서 공장에 다녔다. 그런 방황을 끝내고 83년 다시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이 25에 서울시립대 영문과 84학번으로 입학했다.

80년대 대학은 광주에 대한 아픔에서 시작하였다. 따라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당시 대학생들의 처절한 외침이었다. 그런 노력이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어 84년 대학은 조금이나마 광주의 진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 결과 85년 당시 새로 만들어진 신민당은 2당으로 급부상하였다. 이런 캠퍼스에서 이철우는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이 한순간에 무너짐을 느겼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상식을 알기 위해 여러 서적을 탐독하였고 그 새로운 사실이 자신에게 들어왔다.

87년 그는 전대협 결성과 함께 의장 비서실장과 정책위 위원으로 활동하며 늦깍기 대학생에서 학생운동가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첫 번째로 감옥을 다녀와야 했다.

두 번째 감옥 생활과 약속들

두 번째 감옥 생활은 93년 '민족해방 애국전선'사건으로 꼬박 4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4년이란 세월을 감옥안에서 보내면서 이철우는 새로운 배움과 삶을 약속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소년수 용선이와의 약속이다.
과거 한국사회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가 판을 친 적이 있었다. 돈많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감옥에 안가고, 돈 없는 사람들만 감옥에 가야되는 시절. 이철우는 그곳에서 한 어린 소년을 만났다.

자신의 나이도 모르고 글도 모르는 채 스물이 안된 어린 소년. 이 소년은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생을 때렸다고 죄로 감옥까지 들어와 살고 있었다. 이 소년과 같이 있던 학생들은 부모들이 데리러 와서 다 빠져가간 경찰서에서 글도 모르고 학교도 다니지 않았기에, 더구나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생활 무능력자 였다. 경찰서에서 혼자 저지른 죄로 인정되어 감옥에 온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소년이었다. 그곳에서 이철우는 이 소년의 대리인 역할을 하였다. 글도 모르던 용선이에게 글도 가르쳐 주고 감옥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챙겨주기도 하고 그런 용선이가 출소 후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철우는 일년에 두 번 그 용선이를 만나러 속초엘 꼬박고박 들르고 있다. 세상 관계가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관계속에서 용선이를 통해 이철우는 작은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해득실 보다 더 큰 무엇가가 있다는 사실을...

두 번째는 부인과의 약속이었다.
감옥에 있는 그를 매일 찾아주었고 유독 책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면회때면 가방하나 등짐을 짊어지고 책을 배달해야 된 부인. 그 부인이 어느날 약속을 안하면 더 이상 면회를 안오겠다고 말을 하였다. 그 약속은 담배를 끊는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감옥 생활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서를 하지 못할까봐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부인은 매주 면회때면 책을 가져다 주었다.  감옥 생활에서 큰소리로 약속은 하였지만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부인은 그런 남편을 믿어주었고 남편이 출소하는 날까지 한주도 거르지 않고 면회를 와주었다. 출소한 이후에 부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았고 이제 12년이 되었다고 한다.

작은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는 신용없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이철우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작은 것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출소 후 지역운동을 하면서 몸에 쌓여져 나타난 것이다.

정치가는 합창단의 지휘자

출소 후 포천에서 정착하면서 지역 일에 파묻혀 살아왔다. 한탄강댐 건설 반대를 주도적으로 실천해 왔다. 한탄강 댐은 홍수 조절을 위하여 건설해야 된다는 정부측의 주장에 맞서 지역주민들이 환경파괴와 농경지 침수, 통일 이후 발전 계획 등을 이유로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문제였다. 그리고 이 싸움을 통하여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철우는 선두에서 지역민의 의견을 대변해 왔다. 그리고 정부에서 '댐 건설 유보'라는 승리를 지역 주민과 함께 일궈내었다. 또한 지역 학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학교를 통해 삶을 배우고 생활을 하는 지역 생활 공동체로 만들어 도내 최고의 학교로 만드는데 앞장서 왔다. 그리고 그는 '한탄강 네트워크'라는 지역 주민 단체를 만들어 한탄강을 중심으로 한 포천, 연천, 철원 등 3개 군을 연결하는 지역 네트워크 활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이를 통한 주민들과 신뢰회복은 물론 현재 지역내 모든 민원을 처리하는 대표적 지역 공동체로 발전하고 있다.

이철우는 '정치가는 합창단의 지휘자'라고 말한다.
매주 두 시간 우리는 세상 모든 걸 잊고 노래한다. 합창! 그것은 단순한 합(合)이 아니다. 새로운 창조이다. 지휘자는 마음과 단원들의 마음이 일치되는 예술이다. 이 새로운 창조자가 바로 지휘자인 것이다. 여기엔 아무리 능력 있는 가수도 자신만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섞여야 한다. 각양각색이 섞여 전혀 새로운 소리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도 노래하면서...

오는 4월 15일 이철우는 경기도 포천·연천의 거물이라고 불리우는 이한동 의원과 한판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강한 재력이 있는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 그동안 함께 한 지역 주민들의 힘만으로 시작한다.

이철우 홈페이지 : http://www.echulwo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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