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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이육사, 친일 서정주보다 나을까?
이문열 ‘합법’ 발언 ‘빈약한 과거사담론’ 간파한 것, 과거사규명 철저해야
 
정문순
시인 이육사는 저항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착잡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직업적 문인이 아니었던 그가 남긴 작품은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데다 그 중에서도 괜찮은 작품을 골라낸다면 고작 몇 편을 넘지 않는다.
 
육사만큼 작가의 행적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춤추는 사례에 딱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우선 육사의 시는 앞 뒤 가릴 것 없이 몽땅 저항시로 대접받는 기이한 풍조가 있다. '모시 수건'에 '은쟁반'이니 하는 귀족적 취향이 넘치는 시도 졸지에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노래로 둔갑해버린다. 설령 항일을 암시한 시라 해도 무조건 대단한 평가를 받는 것도 마뜩치 않다. 그의 양반적 감수성과 고고한 정신주의는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분하게 미화되어 왔다.
 
나라의 독립이 육사의 신념처럼 고결한 풍찬노숙형 지사의 손으로만 얻어진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항일이라는 말에 주눅이 들어 한 시인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살피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항일은 언제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저 먼 곳에 있었고 가타부타 따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선조들의 독립운동은 우리 일상을 지배하거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육사의 시, 몽땅 저항시로 대접받아
 
그렇다고 사람들이 항일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건 교과서에서 박제화된 몇 줄 지식에 불과하며 그나마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은 거의 모른다. 항일 담론이 어설프고 엉성함을 면치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일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친일파라는 이름을 들을 때 떠오르는 감정은 막연한 경멸이나 증오 하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우리가 과거사를 얼마나 피상적으로 다루어 왔는지 새삼 일깨워준 것이 소설가 이문열의 최근 발언일 것이다. 이씨가 일제 강점이 '합법'적이라 한 발언 때문에 여기저기서 시끌시끌하다. 식민지 수탈에 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그의 속내가, 과거사를 캐겠다는 여권을 걸고넘어지는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데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몽땅 상식 이하로 치부하기에는 힘든 점이 없지 않다. 과거 청산을 확실히 한 프랑스의 경우를 그렇지 못한 우리와 비교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발언은 이문열 같은 수구 논객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프랑스의 나치 지배는 4년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그 10배에 가까운 세월을 식민지로 보낸 사정을 헤아리자는 발언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이씨는 이런 논리로 친일에 관대해지자는 수긍할 수 없는 태도로 나아가지만 그가 더없이 자신만만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 과거사 담론의 빈약함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작품으로만 평가해야
 
과거 청산을 부르짖는 사람들 중에는 항일과 친일을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항일은 더없이 숭고한 것이고, 친일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이라는 식으로만 본다면 일제 말기에 무수히 전향한 민족주의자들을 설명할 길은 없게 된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자발적 친일로 빠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문인으로서 서정주와 유치환의 부일 행적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작품마저 아무 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리는 데는 찬성하고 싶지 않다.
 
육사의 우월 의식이 서정주의 패배주의보다 백 배 나으냐는 물음에 선뜻 답하기는 쉽지 않다. 항일시라 하여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니듯 친일 문인의 작품이라 하여 사악한 언사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문열씨처럼 과거사를 조사하지 말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친일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규명은 필요하다.
 
바야흐로 과거사 청산을 주창한 여당 인사들의 가계에서도 친일 행적이 드러나는 통에 그 작업을 누가 해야 하는가. 박정희를 친일 혐의 조사에서 빼버릴 수도 있다는 여당 의장의 발언을 듣자 하니 과거사 문제를 정쟁의 난장판에 맡겨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해’심을 갖춘 시민들의 몫으로 가져와야 할 것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9월 2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04/09/03 [10:19]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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