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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 만세운동의 주역 유관순 아닌 김구응 열사
[책동네] 전해주 성공회대 신부가 쓴 '김구응 열사 평전'
 
김철관   기사입력  2023/04/19 [14:08]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병천) 장터 만세운동 주역은 유관순 열사가 아닌 진명학교 교사였던 김구응 열사였다.”

 

 전해주 성공회신부 글·김구응열사기념사업회, 천안역사문화연구회, 김구응열사유족회가 기획한 <4.1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김구응 열사 평전>(틈새의 시간, 2022년 4월)에서 강조한다.

 

▲ 전해주 성공회신부 글·김구응열사기념사업회, 천안역사문화연구회, 김구응열사유족회가 기획한 <4.1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김구응 열사 평전>(틈새의 시간, 2022년 4월)  © 틈새의 시간


이 책은 독립운동에 대해 알려진 사실 너머의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고나 할까. 우리의 역사에서 유난히 유관순 열사로만 강조해 왔던 4.1천안아우내만세운동 주역이, 실제 계획하고 주동한 사람이 진명학교 교사인 김구응 선생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일제 강제병합 국권침탈에 항거한 일본 도쿄 유학생들의 1919년(기미년) ‘2.8독립선언서’에 이어 조선 내에서 ‘3.1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전국에서 독립만세운동으로 타올랐다. 그해 4월 1일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천안 아우내(병천) 시장에서도 학생, 주민 등 조선 민중들이 집결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총과 칼을 앞세워 독립만세를 외친 민중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그 과정에 김구응 선생이 척살되고, 아들의 주검을 목격하고, 슬퍼하는 어머니 최정철 열사도 죽이는 그 현장의 실제적 진실들을 적난하게 파헤친 책이 전해주 성공회신부의 <김구응 열사 평전>이다.

 

전해주 신부는 사제로 있던 교회의 옛 자료를 정리하다, 4.1아우내만세운동에 대해 회고록을 쓴 강애단 신부의 글을 봤고, 거기에서 김구응 진명교사 선생을 접하게 된다. 전 신부는 여기에서 아우내만세운동을 주동한 사람이 유관순 열사가 아닌 김구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동안 나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이 주역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접한 새로운 사실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 본문 중에서

 

그는 김구응 열사를 연구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신문기사, 그의 공적을 알리는 역사적 사료 등의 자료를 모았다.

 

전 신부는 진입로조차 없는 김구응의 묘. 지자체와 정부에서 공을 들인 유관순 열사 묘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김구응 열사는 당시 지역의 유지로 아우내에 첫 근대식 학교인 청신의숙을 세웠다. 천안 병천 진천면에서 진명학교 교사로 재작할 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학생과 주민들을 모아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김구응 열사의 나이는 32세였다. 열사는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의 12대 손이다.

 

책은 ‘김구응, 그는 누구인가’ ‘성공회와 진명학교’ ‘그날의 함성’ ‘아우내 만세운동,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 4개의 주제로 다뤘다.

 

특히 영국의 성공회가 충정지역에 안착된 배경, 작은 지역인 아우내 지역의 상업과 근대식 교육, 유지들과 교육자들의 독립운동을 위한 상호부조 등도 상세히 다뤘다.

 

일찍이 김병조 선생이 1920년 6월에 펴낸 <한국독립운동사락>과 같은해 12월 펴낸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도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이끈 주역을 김구응 열사와 그의 모친 최정철 열사라고 밝혔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들 모자가 묻힌 이유는 뭘까.

 

당시 만세운동으로 현장에서 사살돼 재판 등 기록이 없고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다는 점과 후한이 두려워 가족마저 흩어져 쉬쉬했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이다. 하지만 왜경에 잡혀 조사만 받고 나오더라도 기록이 있어 애국지사라는 칭호를 받고 독립운동가가 되는 현실에서, 이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유관순이라는 인물에 대한 영웅화 작업과 이를 상품화한 아우내 지역의 정서로 인해 김구응 열사의 후손들은 독립유공자 가족으로서 받는 국가적 혜택은 차지하고 유관순 열사에 견주면 거의 무시에 가까운 무관심과 처우에서 비롯한 서운함과 억울함을 안고 가슴앓이를 하고 살아야만 했다.” - 본문 중에서

 

이 책 말미에 김구응 열사의 후손 김운식 선생이 쓴 글이 가슴을 저밀게 한다.

 

증조할머니(최정철 열사)와 아들 (김구응 할아버지)이 아우내 장터에서 같이 순국하면서 평화롭게 살던 일가가 풍비박산이 났다는 처절한 삶 때문이다.

 

저자 전해주 신부는 서울에서 초중고를,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늦게 성공회에 입문해 49세에 서품을 받고 사제가 됐다. 충남 병천에서 사제로 지내며 자연스레 김구응 열사를 접했다. 김구응 열사의 자료를 모아 <성공회 병천교회의 3.1아우내 만세운동에 대한 기여>(2006년 성공회대 석사논문)를 썼고, 이 작업을 인연으로 2023년 4월 1일 <김구응 열사 평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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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4/19 [14: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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