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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의 친일 '이냐, 아니냐'를 넘어
[문학이야기] 청마 친일 산문을 둘러싼 논란, 신경림과 홍기돈의 평가
 
위지혜   기사입력  2007/10/25 [01:12]
청마 유치환(1908~1967)에 대한 친일논란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끊임없이 친일인사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근거자료 부족’으로 친일논쟁이 공전되어 왔던 청마의 친일성 짙은 산문이 발견된 것이다. 친일문학 연구가인 박태일 경남대 국문과 교수가 1942년 2월 6일자 <만선일보>에서 발견해 공개한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에는 일본의 ‘대동아전쟁’을 옹호하는 청마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박태일 경남대 국문과 교수가 1942년 2월 6일자 <만선일보>에서 발견해 공개한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 만선일보
 
“오늘 대동아전(大東亞戰)의 의의와 제국(帝國)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없이 위대한 것일 겝니다. 이러한 의미로운 오늘 황국신민(皇國臣民)된 우리는 조고마한 개인적 생활의 불편가튼 것은 수(數)에 모들 수 업는 만큼 여간 커다란 보람이 안입니다. (중략) 나라가 잇서야 산하도 예술도 잇는 것을 매거(枚擧)할 수 업시 목격하고 잇지 안습니까. 오늘 혁혁(赫赫)한 일본의 지도적(指導的) 지반(地盤)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업습니다.” -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지금까지 청마의 작품 가운데 시 「들녘」, 「전야」, 「북두성」 등이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은 있었지만 산문 형식의 친일 글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태일 교수는 “이번 청마의 산문은 그의 친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글”이라면서 “청마의 친일문학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 글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친일성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친일명단에 오르나?
 
청마 유치환의 친일문학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제시한 시 세 작품에 대한 해석이 대립되어 왔으며, 지난 2005년에는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 포함 여부를 두고 한차례 크게 논란이 됐었다. 
 
지난 2005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에 들어갈 1차 3090명의 각계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문화계 인사는 144명이었고, 또 그중 문학인은 36명이었다. 당시 청마는 근거자료 부족으로 1차 명단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자료가 더 밝혀질 경우 2차 명단에 포함이 가장 유력한 인물로 지목됐었다.
 
당시까지 밝혀진 자료와 내용으로는 그를 친일인사로 규정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세 편의 시를 두고도 해석이 각기 달랐다. 당시 박태일 교수는 <컬처뉴스>와 인터뷰에서 “현재 알려진 3편의 작품과 그가 만주에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얼빈협화회 등이 그를 친일파 문학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이번 산문에는 그의 친일성이 명확히 드러나 있어 2차 명단에 포함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 교수는 이번 산문을 공개하면서 “대표적인 부왜(附倭) 문인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형 유치진과 함께 청마도 친일문학인이 분명해진 셈”이라고 말했다.
 
친일과 문학적 업적
 
▲청마의 친일산문이 공개되면서 그의 고향 통영과 거제에서 추진 중인 기념사업의 파장도 예고되고 있다.     © 컬처뉴스
청마의 이번 산문을 계기로 그의 고향 통영과 거제에서 추진 중인 기념사업의 파장도 예고되고 있다. 청마의 대표적인 시 「깃발」을 모티브로 깃발축제와 ‘청마가 만주로 간 까닭은’이란 주제로 퓨전드라마를 계획 중인 통영과 연말 청마기념관 개관을 앞두고 있는 거제가 혼란에 빠진 것이다.
 
통영시의 사업은 시의 행정지원으로 예총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통영시의 경우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공개로 대외적으로 통영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행정이 공개 지원하는 것은 다소 어렵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거제의 경우 시비 28억5천만원을 들여 2000년 5월 청마 생가를 복원하고 사유지를 매입한 데 이어 청마기념관 준공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 임진왜란 영웅인 이순신 장군 관련 성역화 사업을 벌이고 있는 통영과 거제에서 이번 산문으로 친일인사가 확실해진 청마 관련 기념사업은 후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편 유치환의 문학성을 기리는 ‘청마문학상’과 관련 논란도 제기됐다. 문제가 된 것은 올해 제8회 청마문학상심사위원장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을 지낸 바 있는 신경림 시인이 맡았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신경림 시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친일산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많이 썼으며, 친일시는 없다”면서 “전체 문학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친일 부정하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경림 시인은 이번 유치환 친일논란과 관련해 “서정주와는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서정주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친일 논쟁이 한창 일던 2006년 1월 문예아카데미 강좌 ‘나의 고전 읽기’에서 “친일한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니 역사적으로 짚어야 하는 문제이지만 친일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문학적 업적까지 모두 사장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 홍기돈 문학평론가는 “정치가 예술화되면 파시즘이 되고 예술이 정치화되면 사회주의가 된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며 “결국 정치의 논리나 삶의 논리 속에 예술이 있는 것인데 그것을 별개의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또한 그렇게 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홍기돈 문학평론가는 "이번에 공개된 유치환의 산문은 시의 해석의 여백을 넘어 그의 친일논리를 확대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일문학 연구가 친일 '이냐', '아니냐'를 넘어 좀 더 발전적인 논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료 발굴작업이 더욱 확대되어야 하며 더불어 친일문인들의 작품 전체에 깔린 사유구조나 내적 논리에 대한 연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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