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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은 마산시의 ‘대마도의 날’ 제정
[정문순 칼럼] 식민유산 친일청산은 분노와 감정아닌 근대극복에서 시작
 
정문순   기사입력  2005/03/21 [12:03]
충남 예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의 사당인 충의사에 걸려 있던 박정희 글씨의 현판을 부순 죄목으로 한 시민단체 회원이 구속되자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법적인 처벌이 타당한가 여부는 밀쳐두더라도 이런 식의 행동을 무작정 편드는 건 마뜩찮다. 물론 만주국 장교 출신이 항일지사의 사당에 글씨를 남긴 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을 내버려둘 일이 아니라는 데는 당연히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분노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독도문제로 반일감정이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그러나 이같은 분노와 감정적 대응만이 능사가 아닌 차분하고 냉철한 이성적 대응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 인터넷 이미지


친일파의 흔적을 부수는 건 역사청산 의지의 상징은 될 수 있어도 정작 역사청산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뼛속까지 일본인이었던 독재자의 자취를 왜 굳이 없애주려고 하는가. 친일파의 글씨가 가야할 곳은 쓰레기통이 아니라 친일역사 박물관이어야 한다. 굴절된 역사에 대한 증거인멸일수록 역사청산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속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건 쉽게 잊혀지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도 조선총독부가 들어앉았던 옛 중앙청을 철거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혈세 깨나 썼지만 건물 하나 날렸다고 비뚤어진 역사가 바로 세워졌다고 믿는 바보는 없다.
 
분노와 감정 앞세우지 말아야
 
독도 문제로 들끓고 있는 요즘 한반도의 풍경 역시 차분한 대응보다 분노와 감정이 앞지르고 있어 염려스럽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고, 일장기 불태우고, 반일 정서에 불을 지르는 건 극우단체나 할 일이지 시민 사회 전체가 들썩거릴 만한 일이 못된다. 딱하게도, 독도 이야기만 나오면 정치권이든 시민들이든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중에서 뜬금 없이 '대마도의 날'을 조례 가결한 마산시의회의 대응은 단연 압권이다. '다케시마의 날'을 만든 일본 시마네현 의회에 약을 올리려는 항의성 이벤트로나 봐줄 만한 발상을 멀쩡한 한국의 지방의회가 조례까지 만들어 실천에 옮기시다니, 독도에 미친 두 나라의 지방의회 수준을 한눈에 알 만하다. 이은상, 조두남 같은 친일 경력자를 기리는 데는 아등바등하는 마산시의회가 독도 문제에 핏발을 세우는 것도 가당찮거니와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대마도를 거론하는지 모를 일이다. 시민들의 일본 혐오 감정만 등에 업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가.
 
배일 감정 못지 않게 위험한 것은, 한국이 약소국이라 식민지로 떨어진 이후 줄곧 일본에 당해왔으니 어떻게 해서든 강대국이 돼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한국이 강해지면 식민지가 될 일도, 자국의 영토를 남이 넘볼 일도 없어진다는 이런 사고야말로 전형적인 식민주의의 논리이자 일제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해주는 것일 뿐이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근대성이 일본만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
 
효율성과 합리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근대성은 남의 영토를 집어삼켜서라도 이윤을 축적하지 않으면 제 목숨을 지탱하기란 불가능하다. 봉건 질서를 벗어나지 못한 당시의 한국은 탐욕이 넘친 자본주의의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기도를 막고 우리 안에 진득하게 들러붙어 있는 과거사를 청산하는 길은, 친일파의 글씨를 없애거나 격앙된 반일 정서 따위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개발 이후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내달려온 근대를 극복하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진정 식민통치의 유산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효율성의 신화에 얽매어 끝없이 사회적 약자를 솎아내고 인간 영혼을 탐욕과 약탈의 정글로 내몬 근대성의 자리에 공존과 배려의 윤리,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연대 의식 등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기업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노동자들이 언제라도 비정규직이나 해고로 내몰릴 수 있고, 빈곤층이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것이 점점 희박해지는 세태에서 보듯 효율성의 숭배는 완고하게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버팀목이다. 이 철옹성을 건드리지 않는 한 진정한 과거사 극복도 꿈에서 현실로 내려오기 어려울 것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3월 21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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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3/21 [12: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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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뚱 2005/03/31 [02:37] 수정 | 삭제
  • 정문순씨 당신 노빠세요? 기사자체가 생뚱맞네요..ㅋㅋ
  • 생뚱맞는기사 2005/03/22 [09:29] 수정 | 삭제
  • 기사내용이 국익에 도움이 안되는 한마디로 쌩뚱맞죠!!
  • 공자님말씀 2005/03/21 [15:49] 수정 | 삭제
  • 지금은 행동을 보일 땝니다. 행동과 함께 이성도 더불어 동행해야지요.
    점잖게만 대응하는 것, 지금 이 정부가 하는 꼴이지요. 마산시에서 대마도의 날을 제정한 것이 어찌 대마도를 빼앗아올 생각으로 했겠습니까. 단순한 맞불도 아니오 성질낸 일도 아닙니다. 과거 세종이 대마도를 정벌했으면 그때 이미 우리 국민을 정착시키고 우리 땅으로 확실히 해뒀어야 하는데 그러질 않고 조공 몇푼어치 받아 자기 양반들 배만 채웠으니 이제 남의 나라가 되어버린 거지요. 독도는 일본 어부들의 요구로 지방정부인 시마네현에서 임의대로 1905년 자기 땅이라 한 겁니다. 우리 비판하는 것, 좋습니다만 공자왈 맹자왈로는 안 됩니다. 조선의 왕과 세도가들의 그런 짓으로 지금 이 나라가 이 모양 아닙니까. 그걸 노 정권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요. 다시 제 덧글을 새겨들어보시길 바랍니다.